'삼국지' 최고의 용사는 누구였을까? 답은 장요다. 장요가 최강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포가 '사람 중에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을 때 장요는 여포의 부하였다. 조조의 군중에서 장요는 관우의 부장이었다. 이런 점에서 무공만 따진다면 여포나 관우가 한 수 위였다. 그러나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이 병사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장수의 용기와 기백이라고 본다면 장요야말로 '삼국지' 최고의 용사였다. 용기와 기백만을 놓고 따진다면 장요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합비대전에서 그의 활약상을 보자.
손권이 10만명의 대군으로 합비성을 포위하자 장요는 결사대 800명을 모아 급습에 나섰다. 동이 트기 전 새벽녘이었다. 장요가 맨 앞에 서서 오군의 보루에 뛰어 올라 앞을 가로막는 적장 두 명과 수십 명의 병사들을 쳐 죽였다. 방어벽을 돌파한 장요는 손권의 영채를 향해 곧바로 돌진했다. 장요가 오군의 진영을 뚫고 바로 장막 아래까지 전진하자 손권은 매우 놀라 허겁지겁 도망쳤다. 손권을 호위하고 있던 장수들이 손권을 데리고 벌판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장수와 호위무사들은 손권을 에워싸고 *장극을 빽빽이 세워 방어했다. 장요가 바로 언덕 아래까지 쫓아와 손권을 바라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내려와 나와 일전을 벌이자!" 평소에 담대하던 손권은 겁에 질려 꿈적도 하지 못했다. 이때 손권 주변에는 여몽·감녕·능통·장흠·진무·반장 등 동오가 자랑하는 용사들이 다 모여 있었다. 이들조차도 장요의 대담함에 기가 꺾여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날이 밝았다. 장요의 병사들이 수가 매우 적었다. 흩어졌던 오군 병사들이 모여들어 장요와 그의 결사대를 겹겹이 포위했다. 장요가 병사들을 불러모아 밀집대형으로 만든 후 앞으로 돌격하자 포위망이 바로 무너졌다. 미처 따라 나오지 못한 수십 명의 병사들이 구원을 요청하자 장요가 다시 포위망을 향해 돌격해 병사들을 모조리 구해냈다. 손권의 장수와 병사들 중 그를 제지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 전투 결과 조조군은 사기가 크게 올랐고 오군은 기가 꺾였다. 손권은 성을 함락시킬 수 없음을 알고 회군을 결정했다. 손권은 후퇴하다가 다시 장요의 습격을 받고 크게 패했다.
장요가 용맹을 뽐낸 것은 합비대전에서의 일만은 아니었다. 유성에서 오환·선우·답돈과 싸울 때, 조조의 모든 장수들이 대규모 오환 기병대를 보고 두려워 떨었다. 장요만이 용감하게 나서 선봉을 자청했다. 장요가 우금·장패·장합 등 조조의 맹장들과 함께 첨산의 도적들을 공격할 때 산이 높고 길은 좁고 험했으므로 다른 장수들은 감히 진격할 생각을 못했지만 장요는 달랐다.
"이것은 소위 일대일 싸움이라 하는 것이오. 용감한 자가 이기게 되어 있소."
최고의 용사답지 않은가. 손권은 합비대전의 트라우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했다. 장요가 죽기 일 년 전 병든 몸으로 동포싸움에 참전하자 손권이 휘하의 여러 장수들에게 특명을 내렸다.
"장요가 비록 병이 들었다 하지만 그를 당해 낼 수는 없다. 정말이다!"
[영웅의 이면] 포로 출신 장요를 장기말로 쓴 조조의 놀라운 혜안
손권의 10만 대군이 공격해 왔을 때 합비성을 지키는 위군 병사는 단지 8000명이었다.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한중을 정벌 중이었으므로 지원군을 보낼 수 없었다. 조조는 원정 기간 중에 손권이 배후 지방의 요충지인 합비를 공략하리란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세워 놓은 대비책이라고는 달랑 비단주머니에 넣은 명령서 한통뿐이었다. 겉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적이 도착하면 꺼내 볼 것." 당시 합비성을 수비하던 장수들은 장요·악진·이전 세 사람이었다. 이 세 사람은 출신 배경과 성향이 달라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악진은 조조의 친위병 출신답게 조조군의 핵심 인맥이었다. 합비에 주둔하기 전까지는 장요보다 계급이 높았으므로 그는 장요에게 지휘통제 받기를 싫어했다. 이전은 독자적인 군소군벌 출신이었지만 학문을 좋아하고 유학자를 존경하는 등 얌전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이에 비해 장요는 일개 포로 출신이었다. 조조는 장요가 첨산에서 진란과 매성을 토벌한 공을 인정해 그를 합비성의 주장으로 삼았다. 원래부터 조조의 장수였던 악진과 이전은 벼락출세한 장요를 시기했다.
손권의 대병이 도착하자 장요 등은 황급히 조조가 준 비단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지시는 간단했다. "손권이 쳐들어오면 장 장군과 이 장군은 나가 싸우고 악 장군은 성을 지키고 나가 싸우지 마라."
장요가 이전과 함께 성을 나가 공격해 손권의 예봉을 꺾어놓자 대병에게 포위당해 술렁거리던 성 중의 병사들이 안정을 되찾았다. 성의 수비가 굳어지자 손권은 곧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장요가 추격에 나서 소요진에서 거의 손권을 사로잡을 뻔했다.
처음 여러 장수들은 조조가 무슨 이유로 이런 지시를 내렸는지 의심스러워 했다. 가뜩이나 병력이 부족한 형편에 부대를 안팎으로 나누라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조조는 손권이 대군을 이끌고 오면 병사들의 마음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보았다. 조조는 군심을 바로잡으려면 초전에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고 보고 평소에 용맹을 자랑하던 장요에게 적을 맞아 싸우도록 했다. 다만 장요가 너무 용기만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성격이 조심스러운 이전을 붙여주어 만일에 대비하게 했다. 장요와 악진은 특히 사이가 나빴으므로 어차피 한 성 안에 있어봐야 분란만 생길 것이 분명했다. 합비대전은 조조의 앞을 내다보는 혜안 하나로 손권의 대병을 간단히 쳐부순 사건이었다.
[거짓말 벗겨보기] 심심하면 금낭지계?
'삼국지연의'에는 *금낭지계가 여러 번 등장한다. 합비대전만 제외하고는 모두 제갈량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제갈량이 미리 예측하고 비단주머니에 계책을 밀봉해 내려주면 일이 생길 때마다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는 이야기이다. 사서를 샅샅이 찾아보아도 제갈량이 금낭지계를 썼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금낭지계는 조조가 쓴 것이 유일했다. 멋져 보이는 것은 다 제갈량이나 유비 측의 사람들이 했다고 조작하는 것이 '삼국지연의'의 고질적 병폐 중의 하나이다.
[풀이]
*합비대전=A.D 209년 중국 동부 안휘(安徽)성 합비(合肥)에서 벌어진 조조와 손권 군의 전투. *장극=담장으로 막은 간격. *금낭지계=계책이 적힌 종이가 담긴 비단주머니를 현장의 장수가 위기 시 펼쳐보도록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