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2개 상장사의 주주총회가 일제히 열린 지난 22일. 언론과 재계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주주총회는 단연 현대상선의 주주총회였다. 2년만에 다시 ‘시동생’과 ‘형수’가 맞붙었기 때문이다.
이날 현대상선 주총에서는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건을 놓고 현대중공업과 현대그룹이 표 대결을 벌인 것이다. 현대그룹과 범(汎) 현대가가 현대상선 주주총회에서 힘겨루기를 한 것만 해도 10년간 6차례에 달한다. 양측은 2년 전인 2010년에도 똑같은 안건을 놓고 맞붙은 적이 있다. 당시 현대그룹이 내놓은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 방안은 현대중공업과 범현대가의 반대로 좌절됐다.
그러나 올해 주총 결과는 2년전과 달리 현정은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현대그룹이 제안한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가 현대중공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안대로 통과된 것이다. 이날 주총에서는 우선주 발행한도를 2000만주에서 6000만주로 늘리는 내용의 정관 변경안에 대해 주주 67.35%가 찬성표를 던졌다. 정관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의결권이 있는 주식 중 과반이 의결에 참여하고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날 주총에는 의결권이 있는 주식 1억5246만주 중 82.77%(1억2619만3381주)가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8499만2549주는 찬성 의사를 밝히고 4120만8302주(32.65%)는 반대와 기권표를 던졌다.
이밖에 이날 통과된 정관변경안에는 이사회 결의만으로 제3자에 신주를 배정할 수 있는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포함해 신주인수권,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조항도 개정돼 증자를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주총 결과는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인 현대그룹과 2대 주주인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싸움에서 주주들이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상선 지분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27.7% 가량을 갖고 있고 우호 지분까지 합하면 45% 가량이 된다. 현대중공업은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과 함께 23% 가량을 갖고 있고 범 현대가인 현대건설이 7.7%, KCC가 2.6%, 현대산업개발이 1.4%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상선이 마찰을 무릅쓰고 정관 개정에 나선 것은 시급한 자금 조달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해운업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지난해 1조35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부채도 7조292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이미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회사채 발행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우선주 발행 확대는 생존을 건 선택이었다.
더불어 현대그룹은 이번 정관변경으로 증자를 통해 경영권을 안정화할 수 발판도 마련했다.
증시의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우선주를 새로 발행하고 우호적인 제3자에 이를 배정한다면 현대상선에 대한 현대그룹의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대상선 경영권에 대한 위협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범현대가의 현대상선 지분은 현재 35.4%로, 이 지분이 유지되는 한 분쟁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2년 전과 달리 현대상선이 우호적인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경영권 지분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며 “10년 넘게 진행된 분쟁에서 현대그룹이 승기를 잡았으나 현대중공업과 현대차 등 범현대가가 3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한 범 현대가의 현정은 회장에 대한 견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이 주총이 끝난후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중공업 등은 빠른 시일 내에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그룹에 넘기고 현대상선 경영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올해 주총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현정은 회장이 범 현대가의 견제에 어떻게 대응할 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