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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합니다] 일양약품 리베이트 수사의 전말은?
검찰이 병·의원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중견제약업체인 일양약품의 수사에 나섰다.
수원지검 특수부(부장 이주형)는 일양약품이 병·의원 등 관계자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포착하고 2008년 7월 이후 일양약품과 대표이사의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 검찰은 지난달 19일 경기도 용인의 일양약품 본사와 일부 지점을 압수 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 관련 각종 자료를 확보했다.
제약업계에서 일양약품의 리베이트 사건에 매우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양약품이 그동안 제약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인 리베이트 논란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업체로 꼽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과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식약청 등이 2011년부터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합동 리베이트 전담 수사반'을 설치해 집중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제약업계 1위인 동아제약을 비롯해 많은 업체들이 리베이트 사건에 휘말렸지만 일양약품은 한번도 수사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이와관련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양약품은 매출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조직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제약업계에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것으로 알려진 일양약품의 리베이트 사건은 어떻게 수면위로 떠오르게 됐을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양약품 기획실장 고 아무개씨가 자신의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고씨의 죽음을 자살로 판명했다. 가족과의 연락을 끊고 사무실에도 나오지 않은 지 3개월여 만이었다.
고씨는 일양약품뿐 아니라 관계사 자금 관리까지 맡을 정도로 정도언 일양약품 회장의 높은 신뢰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고씨가 회사 공금을 몰래 빼내 잠적했다가 자살한 것이다.
회사측은 고씨가 채무 압박을 못 이겨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양약품의 한 임원은 “고씨가 잠적하고 뒤늦게 공금 8억원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다. 어렵게 고씨를 만나 확인한 결과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모두 잃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고씨가 직접 작성한 확인서도 받았다고 했다. 공금을 관리하면서 인출한 금액을 전액 변제한다는 내용이다. 이 임원은 “신변이 정리되면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갔다”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유족의 입장은 달랐다. 고씨의 유족은 그가 회사에서 리베이트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고, 검은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자살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유족은 일양약품에서 작성한 내부 문건을 제시했다. '2011년 영OO 만료 거래처 미집행 요청’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주요 거래처와 미집행 금액 등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2010년 5월부터 2011년 1월까지 7개월 동안 집행되었거나 집행 예정인 리베이트 액수는 4억7천여 만원. 수도권과 대구, 창원, 제주 영업점만 계산한 것이다. 나머지 지역까지 합할 경우 금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 돈은 주로 거래처의 식당 결제나 결혼식 비용, 전자제품 구입 용도로 책정돼 있다. 일부 거래처의 경우 X-레이 도입이나 원내 소파 구입 비용, 골프세트 구입 등으로 처리할 예정이라고 문건에 나와 있다.
이 문건에 대해 고씨의 유족은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내부에서 작성한 문건이 발견됐다. 이는 동생이 회사 리베이트 업무에 동원됐다는 명백한 증거다”라고 주장했다.
유족이 지난 2월22일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씨 누나는 “동생에게 부당한 일을 지시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회사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양약품측도 문건의 존재에 대해 인정했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실적 악화가 지속되면서 영업점에서 리베이트 제공 의사를 타진해왔다. 고씨가 가지고 있던 서류는 이런 요청을 모아놓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본사 차원에서 리베이트를 조성했거나 거래처 제공을 지시한 적은 없다”며“문건을 자세히 보면 집행 여부에 ‘미집행’으로 표시되어 있다. 내부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문건에 언급된 거래처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문건을 보면 대구나 창원 지역 영업점은 ‘미집행’으로 표시돼 있다. 하지만 수도권은 공란으로 남겨져 있어 리베이트가 집행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대구나 창원 역시 ‘거래처에서 3월 중 완납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라거나 ‘약속 미이행 시 처방 중단 압력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 표시돼 있다. 이미 집행된 상황에서 잔금을 주지 않아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국 문건의 내용을 보면“본사 차원에서 리베이트 제공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회사측 해명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일양약품은 2000년대 들어 매출이 정체 상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회사는 매출을 기준으로 업계 2위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급격히 꺾였다. 2011년 말 일양약품의 매출은 1412억원으로 10년전인 2001년에 비해 불과 37%증가하는 데 그쳤다. 매출이 정체되면서 일양약품의 업계 순위도 40위권으로 추락했다.
제약업계에서는 메출정체에 빠진 일양약품이 리베이트로 무리하게 매출증대를 꾀하다 이같은 사단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양약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떻게 결론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형구 기자
▶Tip
리베이트란?
판매자가 지불받은 액수의 일부분을 구매자에게 환불하는 행위 및 그 금액을 말한다. 장기계약이나 대량계약을 한 구매자에 대한 특별한 할인제도의 하나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흔히 있는 상거래이자 계약에 명문화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국내 제약업계는 병·의원이 특정약품을 구매하는 대가로 과도한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하는 것이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이같은 불법 리베이트 수수 관행은 약가상승으로 이어져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고 더불어 국민 의료비 증가를 초래시키는 한편 제약사의 R&D 투자 의욕을 저하시켜 제약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정부는 2011년 4월 검찰, 보건복지부, 경찰청, 식품의약품안전처,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망라한 ‘정부합동 리베이트 전담 수사반’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전담 수사반 설치이후 업계 1위 동아제약을 비롯해 수많은 제약회사들이 리베이트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1000명이 넘는 의사가 소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