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사파리, 하면 대번에 에버랜드(www.everland.com) 사파리를 떠올린다. 37년 전 에버랜드(당시 ‘자연농원’)가 국내에 처음 선보인 사자 사파리의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사자가 득실대는 커다란 방사장에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관람하는 형태였다. 차창까지 바짝 다가와 거칠게 포효하는 사자를 보며 버스에 탄 관람객은 몸서리를 쳤다. 방사장을 황야처럼 꾸며 밀림을 탐험하는 효과도 냈다. 발상의 전환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후 호랑이 사파리, 곰 사파리, 초식 사파리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에버랜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동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맹수 사파리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파리월드’는 오픈 이래로 한 번도 에버랜드 최고 인기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순위가 바뀐 건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지난 20일, 에버랜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사파리를 선보였다. 이름하야 '로스트밸리'(Lost Valley)', 세계 최초로 수륙양용차(40인승)를 타고 초·육식동물이 어우러진 탐방로를 여행하는 사파리다. 공사 기간만 19개월, 자그마치 500억 원을 투자했다. 에버랜드 테마파크 사상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다. 개장 이틀째인 지난 21일 로스트밸리에 다녀왔다. 아프리카의 진짜 사파리 투어에 한 걸음 다가선 기분이었다.
로스트밸리는 이웃한 사파리월드와 일부 구역(백사자·갈색사자)을 공유하고 있지만, 나머지 환경은 전혀 달랐다. 4만 1000㎡의 너른 초지에 동물 20종 150마리를 풀어놨다. 개울·협곡·초원·늪·바위산 등 자연에 가까운 지형을 만들어놓고, 맹수를 제외한 동물들이 저마다의 원서식지에 맞는 생태환경에서 자유롭게 어우러져 뛰놀도록 했다. 동물들이 정해진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돼있던 기존 사파와의 확연한 차이다.
특히 치타와 코뿔소가 한 영역에서 산다. 초·육식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스웨덴의 한 동물원에서 치타·코뿔소가 한 데 노니는 걸 보고 착안했다고 한다. 치타는 빠르지만 몸집이 작고 코뿔소는 느린 대신 크고 힘이 세어 서로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야생의 생태계를 최대한 재현하기 위한 에버랜드의 묘안이다. 수륙양용차를 도입한 것도, 육로와 물길을 최대한 활용해 동물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야생동물이 뛰노는 대초원을 자동차로 누비는 진짜 아프리카 사파리처럼, 동물이 사는 공간을 인간이 둘러본다는 개념이다. “우리나라 동물원의 터닝포인트가 될 겁니다.” 권수완(53) 에버랜드 동물원장이 힘주어 말했다.
대기 동선 따라 아프리카 동물원 꾸며 지난 21일 로스트밸리로 향했다. 오픈 첫 날인 20일은 하필 폭우가 내려 나들이객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21일은 사실상 로스트밸리의 정식 데뷔일이나 다름없었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새파랬다.
오전 9시 45분, 에버랜드 입장이 시작된 지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로스트밸리 앞엔 긴 줄이 늘어섰다. 에버랜드 입구에서 리프트를 타고 로스트밸리가 있는 테마존 ‘주토피아’까지 곧장 달려온 것이다. 인파가 몰리는 오픈 초기 한동안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로스트밸리를 타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로스트밸리 입구부터 대기동선을 따라 작은 동물원이 꾸며져 있어서다. 토끼·염소 등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동물로 대강 채운 게 아니라 대부분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로만 엄선했다. 기니피그를 닮았지만 유전자상으로는 코끼리에 가깝다는‘바위너구리’처럼 우리나라에서 최초 공개되는 희귀동물도 있었다. 수륙양용차를 타기 직전까지 모두 9종 100여 마리의 동물이 전시돼 있다.
덩치 큰 고슴도치처럼 생긴 ‘포큐파인’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새끼 돼지 정도의 크기인데, 등뼈 쪽 가시가 유난히 길어 모히칸족을 연상시켰다. 스마트폰으로 안내판에 삽입된 QR코드를 찍어보니 자세한 설명이 나왔다. 포큐파인의 가시는 근육과 연결돼 있어 위급한 순간에는 사자·표범·하이에나도 죽일 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사막의 파수꾼 미어캣, 꼬리에 희고 검은 줄무늬가 있는 알락꼬리원숭이, 바윗덩이 같은 엘도브라 거북이 등을 지나자 작은 움막이 나왔다. 백사자 ‘타우’가 인간의 욕심에 의해 파괴된 초원을 떠나 동물들을 이끌고 비밀의 계곡 ‘로스트밸리’로 찾아들었다는 이야기가 움막 곳곳에 애니메이션·안내판 등으로 제법 실감 나게 구현돼 있었다. 신기한 동물 구경과 로스트밸리의 전설에 빠져 줄을 서는 내내 칭얼대는 아이가 거의 드물었다.
짜릿한 아프리카 야생 체험 수륙양용차에 올랐다. 바퀴가 달린 작은 여객선을 연상하면 된다. 차 양쪽 가에 앉아 관람하게 돼있는데 창문이 크고 유리가 없어 바깥 공기까지 고스란히 차 안으로 들어왔다. 이윽고 작은 돌문이 나오자 동승한 탐험대원(가이드)이 말했다. “여러분이 ‘나쿠펜다(Nakupenda)’ 하고 외치면 동물들이 문을 열어줄 거예요. 아프리카어로 ‘사랑해’라는 뜻이지요!” “나쿠펜다!” 아이들의 외침과 함께 비밀의 계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맨 처음은 바위협곡이었다. 털갈이가 한창인 쌍봉낙타와 유니콘 전설의 모델이라는 흰 오릭스, 바바리양, 산양 등을 지나자 수륙양용차가 작은 강(수로)으로 미끄러졌다. 쿨렁, 아주 약간의 흔들림만 느껴졌다. 로스트밸리 전체를 관통하는 수심 1.8m의 이 강은 초식동물들이 다가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에버랜드의 스타인 말하는 코끼리 ‘코식이’가 나타났다. ‘런닝맨’에서 유재석이 죽자 사자 “좋아요~”라고 말하게 시켰던 바로 그 코끼리다. 코식이의 나이는 무려 23세. 에버랜드에서 20년간 동고동락한 사육사의 말을 흉내내면서 ‘좋아’, ‘누워’ 등 일곱 개 단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새로운 동물이 나올 때마다 자칭 ‘수다쟁이’ 탐험대장의 신속한 해설이 이어졌다.
조금 더 가자 왼쪽으로 로스트밸리의 전설 속 동물, 백사자 여섯 마리가 벚나무 아래에 우아하게 노닐고 있었다. 백사자는 전 세계 300여 마리뿐인 희귀 동물이다. 사파리월드에 비해 맹수를 다소 멀리서 봐야 했지만, 아쉬움은 초식동물 영역에서 만회할 수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열두 마리의 기린 무리를 지나는 코스였다. 탐험대장의 손에 들린 먹이를 먹기 위해 기린이 차 안으로 고개를 디밀자, “눈이 엄청 예뻐!” “혀가 진짜 길다!” 하며 아이들이 즐거워했다. 관람시간은 12분 정도로 짧았다.
에버랜드는 로스트밸리 동물원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들은 올해 하반기에야 시작된다고 한다. 출구로 나서자 어느새 탑승 대기시간이 4시간에 육박할 만큼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타볼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을 끄는 구석이 로스트밸리에는 있었다. 아프리카 야생의 대자연을 조금은 맛본 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