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3사의 월화극이 뚜렷한 강자 없이 '2중-1약'의 구도를 보이고 있다. KBS 2TV '직장의 신'과 MBC '구가의 서'가 큰 격차 없이 1·2위를 다투는 가운데,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가 한참 뒤로 쳐진 상황이다. '직장의 신'은 '구가의 서'와 '장옥정'이 첫방송된 8일,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꼴찌로 시작한 '구가의 서'는 다음날(9일) '장옥정' 뿐 아니라 '직장의 신'까지 누르며 1위에 올라섰다. 이후 23일 방송까지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젊은 감각의 판타지 사극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구가의 서', 일본스러운 과장된 웃음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김혜수의 연기력을 앞세운 '직장의 신', 그리고 김태희의 궁궐 성장기로 막판 뒤집기를 노리고 있는 '장옥정'. 이들이 월화극 시간대의 확실한 강자로 치고나가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긴급처방전을 받아봤다.
▶'직장의 신'
-현재: 역시 김혜수다. 경쟁작의 수지와 미모 대결은 되지 않지만, '연기자는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노래방 탬버린 신공'에 '홈쇼핑 180˚ 다리찢기 시연'까지 하며 무서운 내공을 보여주고 있다. 파마머리에 찌질한 캐릭터로 변신한 '조각미남' 오지호(장규직)와의 러브스토리가 슬슬 기대된다. '구가의 서'와 매회 소수점 접전을 벌이고 있다.
-증상: 극 초반 '슈퍼갑 계약직' 김혜수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위해 투우사, 해녀, 홈쇼핑 완판녀 등 너무 센 장면을 쏟아냈다. 맥가이버가 돼 고장난 복사기를 수리하고, 버스까지 모는 등 '슈퍼우먼'의 모습이 너무 자주 등장해 이젠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통쾌함이 식상하다는 느낌을 준다.
-진단: 독한 러브라인 등 정체기를 뚫고나갈 한방이 필요하다. 비인간적으로 완벽한 김혜수의 캐릭터에 이젠 인간적인 매력이 더해질 때. 또 '직장의 신'에는 김혜수 말고도 다른 연기자가 있단 걸 알릴 시점이다. 김혜수'원우먼쇼'에서 벗어나 다른 캐릭터에도 힘이 실려야 드라마가 산다. '직장의 신' 관계자는 "최근 김혜수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며 '슈퍼갑 계약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또한 오지호나 이희준과의 러브라인이 막 형성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구가의 서'
-현재: 1위로 한발 앞서기는 했지만, 2위 '직장의 신'을 멀찌감치 따돌리지는 못하고 있다. 수십번 우려먹은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반인반수로 재해석한 신선한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사극이지만 역사에 치우치기 보다는 가끔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감초처럼 꺼내며 극의 재미를 북돋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은 "'구가의 서'의 가장 큰 장점은 이야기의 힘이다. 옛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혀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전개하며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면서 "구미호 소재는 외국의 뱀파이어·늑대인간과 같은 변신 코드에 해당한다. 이런 괴수들이 인간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질성을 찾아가는 세계적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고 밝혔다.
-증상: 이승기·수지 등 젊은 배우들, CG등의 판타지적인 비주얼과 독특한 이야기 전개는 장점인 동시에 한계라고도 볼 수 있다. 정통 사극에 익숙한 40대 이상의 시청자들은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자체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
-진단: 지난 22일 방송에서는 유동근(이순신)이 등장해 임진왜란이 임박했음을 알리며 실제 역사와의 접점을 만들며 흡인력을 높였다. 이승기는 엄효섭(무솔)의 죽음 때문에 반인반수의 본성을 드러냈다. 자신의 정체성을 각성한 이승기가 임진왜란 에피소드에서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장옥정'
-현재: '인간적인 장희빈'을 보여주려던 작가의 의도에 전혀 설득력이 없다. 22일 방송에서는 시청률이 6%까지 추락하며 다른 두 드라마와 격차가 벌어졌다. 주연배우인 김태희의 연기력도 도마에 올랐다. 현대극에서도 겨우 '보통'연기력을 평가 받았는데, 사극까지 도전한 건 과욕이었나 보다. 톤과 발성·표정 등 모든 것이 어색하다.
-증상: 김태희(32)와 유아인(26)이 연인이 아니라 이모와 조카처럼 보인다. 역사적으로 보면 장옥정이 숙종보다 두 살 나이가 많다. 하지만 제 나이에 비해서도 한참 어려 보이는 유아인과 30대 김태희의 조합이 너무나 어색해 극몰입을 방해한다. '구가의 서'의 이승기-수지 커플과 유난히 비교된다.
-진단: 주연 배우를 갑자기 교체할 수 없으니 유아인을 나이들어 보이게 하는 게 급선무. 또 설득력이 없는 드라마 내용에 빨리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정통'도 아니고 '퓨전'도 아닌 애매모호한 설정이 제일 문제. 한 방송전문가는 "'장옥정'은 사극이 갖는 매력을 모두 놓쳤다. 정통 사극의 힘도 없고, 퓨전사극의 이야기 힘도 없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다. 또 장희빈이 '패션 디자이너'라는 유일한 신선한 설정을 밀어붙이지도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