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를 무겁게 하는 막중한 책임감. 신생팀의 최고참이자 주장이다. 그리고 '해결사'가 돼야 하는 4번타자. 그러나 이를 무색게 하듯 NC 이호준(37)의 시계는 거꾸로 흐르고 있다.
30일 현재 그의 타율은 0.247로 전체 43위에 그친다. 하지만 베테랑에게는 '클러치 히터' 능력이 있다. 득점권에서의 타율은 0.377로 5위다. 특히 타점은 39개로 SK 최정(42개)에 이은 2위다. 홈런은 8개로 KIA 최희섭 등과 함께 공동 4위에 올라있다. 홈런·타점·득점권 타율 모두 팀내 1위다. 타율이 낮지만 중요한 순간 해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숭용 XTM 해설위원은 "4번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타점이다. 타율이 좀 떨어져도 괜찮다"며 "이호준이 4번타자 역할을 정말 잘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까지 성적만 보면 나이를 잊은 페이스다. 그는 2003년 타율 0.290·36홈런·102타점, 2004년 타율 0.280·30홈런·112타점으로 최고의 성적을 냈다. 이후 홈런과 타점에서 하향 곡선을 그리다 지난해 타율 0.300·18홈런·78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프리 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신생팀 NC로 이적한 첫 해, 그는 이보다 훨씬 빠른 페이스로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지명타자이긴 하지만 김종호(29)와 함께 30일까지 NC가 치른 44경기에 모두 출장했다.
베테랑의 향기는 경기 시작 전후 그라운드 안팎에서 더 진하다. 시즌 초반 팀 연패 기간에는 삭발까지 했다. "주장이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라며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는 후배들에게는 이발 금지령을 내렸다. 선수들이 다 삭발을 하면 자칫 팀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책임감의 표현이자 팀 성적 부진 탈출에 대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이호준은 또한 선수단 미팅에서 선발승, 홈런, 홀드, 안타 등 선수들의 작은 기록들을 일일이 챙기고 축하해준다. 시즌 초반에는 1군 무대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단 내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홍보대사 역할도 자처했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은 '주장' 이호준을 배우고 동경한다. 내야수 지석훈(29)은 "이호준 선배는 대부분의 선수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난다. 하지만 항상 재밌는 분위기를 만들면서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며 "대한민국 레전드급 선수인데 보고 배우는 것이 많다"고 손을 치켜세웠다. 그의 FA 영입 당시 "팀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다"라는 김경문(55) NC 감독의 기대와 평가 그 이상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호준도 신생팀에서 어린 후배들과 함께해 행복하다. 그는 "이 팀은 내게 행운이다. 서른 일곱인 나를 발전시키는 팀이다"며 "내가 발전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NC는 내가 리더로서, 야구선수로서 더 성숙할 수 있도록 만드는 팀이다"고 웃었다. 이호준은 날이 갈수록 맹활약하며 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고, 신생팀 NC는 날이 갈수록 경험을 쌓으며 점점 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