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47)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이 파안대소했다. "한국 야구장에는 개가 들어온 적은 거의 없을 겁니다. 몇 년 전 제가 주심으로 봤던 경기에 고양이가 들어온 적은 있었어요. 그나마도 프로야구 역사에 몇 번 꼽을 정도입니다."
느닷없는 동물 타령은 최근 미국의 한 대학 야구장에 난입한 개 때문이었다. 지난 2일(한국시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풀러턴 캠퍼스에서는 애리조나 주립대학 야구팀과의 '미국대학체육협의회(NCAA) 토너먼트' 경기가 열렸다. 2회 말, 경기 도중 관중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가 그라운드에 난입했다. 회색 빛깔의 개는 "이리 오라"고 손짓하던 우익수에게 다가가 꼬리를 흔들더니 1루와 좌익수 쪽까지 그라운드 곳곳을 뛰어다녔다. 관중들은 휘파람을 불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고, 중계를 하던 캐스터와 해설자도 폭소를 터뜨렸다. 애리조나 스포츠는 "약 90초 정도 경기가 중단됐다. 다행히 개가 사람을 물거나 헤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2008년 9월4일 추신수(30·신시내티)가 클리블랜드 시절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홈경기를 치르던 중 다람쥐를 만나기도 했다. 추신수는 중견수 그래디 사이즈모어와 함께 1루 파울라인을 따라 달려가는 다람쥐를 잡기 위해 뛰기도 했다.
한국 야구장에도 동물이 나타났던 적이 있다. 2011년 6월17일 잠실구장. LG-SK전이 막 시작하려던 1회 초에 하얀색 고양이 한 마리가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LG 선발 벤자민 주키치와 타석에 서 있던 SK 정근우의 사이를 달려간 고양이는 3루 불펜 담장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볼보이에게 잡힌 고양이는 조용히 밖으로 퇴장했다.
당시 잠실구장을 지켰던 경비원은 "티켓이나 아이디 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야구장 내로 들어올 수 없다. 그러나 작은 고양이나, 강아지같은 경우는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풍기 심판도 그 날을 기억한다. 그는 "당시 주심이 나였다. 심판 생활을 하면서 동물이 야구장에 들어온 건 처음이다. 주변에서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날 1분 정도 경기가 중단됐는데, 나보다도 고양이가 더 당황한 것 같았다. 생각해 보라. 그냥 들어왔는데 수 만명이 지켜보고 있으니 오죽 놀랐겠는가"라며 웃었다.
만약 고양이 때문에 경기가 방해된다면 어떻게 될까. 김풍기 심판은 "일단, 경기가 자동으로 중단된다. 만약 타자가 타격을 했거나, 1루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고양이 때문에 방해가 됐다면 다시 원상태로 복귀 시킬 가능성이 크다. 상대 팀도 '수비에 방해가 됐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른 심판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