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궁민(35)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옷을 입혀놔도 어색하지 않고 꼭 맞게 소화하는 것이다.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11)에서 주인공 김재원을 비열하게 괴롭히는 악인의 이미지로 인상을 남겼고, 앞서 '부자의 탄생'(10)에선 누구보다 선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첫 사극 도전에서도 전혀 어색함 없이 극에 녹아들었다. 방송 중인 MBC 일일 사극 '구암허준'에서 유도지로 출연 중이다. 아버지 유의태(백윤식)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면서 사랑하는 여자(박진희)의 마음까지 빼앗은 허준(김주혁)을 미워하며 악인으로 전락하는 캐릭터. 초반 자애로운 모습에서 점점 추락해 가는 유도지의 고뇌를 그린다. 감정의 폭이 깊은 배역인데다 첫 사극 출연이지만 남궁민의 사극 연기는 호평받고 있다. 사극 대사톤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는 "사극 연기를 통해 기본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발성과 발음이 연기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되새기며 신인처럼 연기한다"고 말했다.
-첫 사극 연기치고는 평가가 좋다.
"자신감 있게 연기해서 그렇지 자세히 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마치 영어나 사투리로 연기하는 기분이 들더라. 덕분에 연기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미니시리즈나 영화를 했을 땐 발성이나 발음보다 '얼마나 캐릭터에 몰입해서 연기하느냐'에 중점을 맞췄다. 사극을 하니 발성·발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다. 신인의 자세로 '구암허준'을 찍고 있다."
-9시 뉴스 시간대에 파격 편성돼 기대를 모았다. 시청률은 10% 아래서 맴돌던데.
"새로운 시간대를 개척하니 쉽지는 않다. 연기자에겐 시청률만 중요한 건 아니다. 고두심·백윤식·이재용·김미숙 선배 등 훌륭한 분들과 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또 120부작 중 이제 절반 정도 찍었다. 아직 갈 길도 많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도 있는 거 아닌가. 비난도 칭찬도 모두 귀기울여 듣고 있다. 배우뿐 아니라 시청자들이 만족해야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 드라마 '허준'(99)을 참고했나.
"유도지 섭외를 받고 캐릭터를 완전히 잡기 까지는 보지 않았다. 당시엔 김병세 선배가 유도지를 맡으셨다. 혹시 그 연기를 따라갈까봐 걱정돼 보지 않았다. 나만의 유도지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마냥 나쁜 인물로 부각되는 게 아니라 왜 나쁘게 변했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연출자 유현종 PD도 새로운 유도지를 원했다. 2회가 방영된 후에야 원작을 봤는데 내가 연기한 유도지와 정말 다르더라. 원작에서는 절대악으로 그려졌다면 '구암허준'에서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달리는 인물로 표현되고 있는 것 같다."
-드라마 '도시정벌'이 결국 공중에 떴다. 촬영도 꽤 진행됐다던데.
"일본 촬영까지 마치고 돌아왔는데 결국 편성이 불발되면서 제작 자체가 중단됐다. 그래도 '도시정벌' 덕분에 김현중·정유미·양윤호 감독님 등 좋은 동료들을 얻었다. 연예인 친구가 별로 없고, 스타들과는 좀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이셨다. 교육자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라서 아직도 배우들을 보면 '특별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 같다. '도시정벌'을 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많이 깨졌다. 현중이는 대단한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소박했고 유미는 여배우인데도 진짜 털털하더라. 같이 MT도 가고 대화도 나누면서 '함께 하면 든든한 사람들이 동료'라는 걸 알게 됐다. 짧게 촬영했지만 얻은 게 많다."
-연애는 하나.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 이후 2년 만에 작품을 하는 거라 여유가 없다. '구암허준'을 촬영장에서 (김)주혁 형이 연인 김규리의 자랑을 하는 걸 보면 정말 부럽다. 하지만 작품을 쉰 공백기를 메우려면 더 열심히 달려야하니까 참는다. 내 계획은 6년간 연기만 계속 하는 거다. 연애나 결혼은 그 이후에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