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상자 박승화(44)를 떠올리면 추억이 있다. 90년대 초중반 박학기·김광석 등과 FM 라디오에 출연해 통기타 하나로 서정적인 음악을 들려줬다. 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이세준과 유리상자를 결성했다. 당시 발표했던 '순애보''사랑해도 될까요' 등은 노래방에서 빼놓지 않고 불렀던 애창곡이었다.
90년대부터 가요를 좋아했던 리스너라면 잊지 못할 이름이 바로 유리상자 박승화다. 서태지·H.O.T처럼 10대를 열광하게 한 것은 아니었고, 김동률·유희열처럼 20대 여성팬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장소, 시간 속에서 꾸준하게 들리는 음악으로 대중을 울리고 웃긴 것이 바로 박승화다. 튀진 않았지만 꾸준했고, 묵직하게 대중 속에 파고 들었다.
박승화가 올해로 솔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묵묵히 한 길을 걸은 자신을 위해 선물도 준비했다. 바로 20주년 기념 앨범이다. 타이틀곡 '다시 한번'은 경괘한 모던록이다. '삶의 시련과 고단함에 좌절하지 말라'는 긍정의 메시지가 박승화의 지난 20년을 대변하는 듯 들린다. 잠시 유리상자에서 벗어나 솔로 1집을 발표한 1993년으로 ‘타임슬립’한 박승화를 만났다.
-솔로 정규 앨범을 냈다.
"유리상자를 하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마음속에는 솔로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싱글은 몇 번 내봤지만 큰 노력을 하지 않게 되더라. 이번 정규 앨범 제작 기간은 총 1년, 녹음만 3달 정도 걸렸다. 특히 녹음을 하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내게는 녹음 기간이 축제다. 음반의 성패를 떠나서 '내가 지금 음악을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솔로 앨범은 철저하게 유리상자에서 좀 나오자는 생각이 있었다. 예전 모습, 내 껄 한 번 다시 가져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유리상자 박승화와 솔로 박승화는 어떻게 다른가.
"쉽게 생각해서 난 기타 메고 서서 노래하는데 유리상자는 무조건 앉아서 한다. 음악을 둘이서 하다보면, 서로의 의견이 다른 곡은 무조건 접게 된다. 그렇게 골라내고 남는 곡들이 유리상자의 음악이 되는 거다. 이번에는 좀 탈피해 보고자 타이틀곡도 모던록으로 잡았다."
-밝은 곡을 타이틀로 정했다.
"라디오 진행을 하다 보니 사연을 많이 읽게 됐다. 그러다 보니 또 여러 사람들의 인생이 보이더라. 라디오는 사실 삶에 찌든 사람들이 듣고 있는 거다. 그들이 겪은 힘든 일들이 사연이 되면 난 그들의 삶을 배우게 되고, 가사로 승화했다. 김광석의 '일어나'를 모티브 삼아서 쓰고 싶었다. 작사하는 친구에게 곡을 써서 줬더니 맘에 드는 가사가 나왔다. 희망적인 곡이다."
-가장 의미있는 곡을 꼽자면.
"1번 트랙의 '노을'이라는 곡이다. 노을이 지는 모습을 창밖으로 보면서 내가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는 거다. 박학기 선배가 곡을 썼고, 세준이가 가삿말을 붙였다. 세준이와는 한 곡이라도 함께 하고 싶었다. 학기 형의 곡을 부르는 것도 의미가 남다르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고, 이번 앨범에 작은 부분이라도 함께 하고 싶었다."
-귀 기울여 들어봤으면 하는 곡은.
"마지막 트랙에 하모니카 연주곡이 있다. '수선화'라는 곡인데 직접 연주했다. 예전에 강산에 씨가 '포크 가수에게 하모니카와 기타는 필수'라는 말을 하더라. 그 소릴 듣고 바로 낙원상가에서 하모니카를 구입했다. 그 이후 엄청 불렀고,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곡이 애착이 간다. 내 숨소리가 노래할 때 보다 살아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곡이다."
-다양한 장르의 곡을 수록했다.
"앨범이 다채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트랙 리스트를 공연 리스트를 짜는 것처럼 해봤다. 자평을 하자면 기가 막히게 잘 들어간 것 같다. 싱글만 하면서 이런 재미를 다 잊어버리고 산 것 같다.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제작은 내가 직접 해야 했다. 많이 까먹었지만 만족 한다."
-어떤 점이 그렇게 즐겁던가.
"솔로 작업을 하면서 짜릿함을 느꼈다. 계약서를 새로 쓴 신인 가수가 된 느낌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던데 실제로 여기저기서 콜이 많이 오고 있다. 지방에 가는 행사는 피곤했는데 지금은 즐겁다. 울산에 행사가 잡히면 하루 전날 혼자 출발한다. 휴게소에 다 들러 가며 천천히 내려가고 숙소 잡고 하루를 보내면 그게 즐겁더라."
-마지막 질문이다. 대중에게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나.
"늘 꾸준하게 노래하는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 곡도 쓰고 하지만 번외고, 내 직업은 가수다. 내 아들이 자라서 '우리 아빠 가수였어'라고 자랑스러워했으면 한다. 조용필 선배 같은 진짜 가수 말이다. '박승화는 노래 정말 잘했어. 진짜 가수야' 그런 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