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달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을 속여먹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의 겉모습과 말솜씨는 매우 훌륭했다. 늘 여유 있는 태도에 아취가 가득한 풍모를 지녔고 언변과 기지가 매우 뛰어났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신실함이 없었고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는 전형적인 반사회적 성격이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남을 이용하고 속일 때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며 세상의 이목이나 윤리쯤은 가볍게 여긴다. 이런 맹달에게 군주에 대한 의리, 충성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결과 맹달은 '삼국지'에서 가장 많이 군주를 배신한 사람이 되었다.
맹달이 언변이나 기지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다. 군사적 지휘능력도 탁월했다. 그는 혼자 힘으로 형주와 한중을 잇는 군사적 요지인 상용 지방의 점령에 성공했다. 이때 맹달은 일전에 방릉태수 괴기를 죽이기도 했다. 괴기는 저 유명한 괴량·괴월 형제의 동생이며 제갈량의 매형이었으니 그리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맹달은 방릉·서성·상용 3개 군을 평정해 촉의 중요한 번진세력의 하나가 됐다.
맹달은 실무 능력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다. 가무와 음곡 등 기예에도 뛰어났다. 맹달이 촉을 배신한 것은 그가 관우의 도움을 거절해 유비의 분노를 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공들여 키운 군악대를 유봉에게 빼앗긴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맹달은 위나라에 귀순하는 과정에서도 조비를 상대로 흥정을 벌이며 자신의 주가를 높였다. 그는 *번진으로서의 준독립성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맹달의 능수능란한 수작에 말려든 조비는 그에게 상용 지역 3개 군의 통치를 다 맡겼을 뿐더러 오래된 측근과 다름없이 신임하고 총애했다.
위나라 사람들은 맹달의 화려한 재능을 높이 평가해 장수와 재상의 능력을 겸비했다고 칭찬했다. 이는 촉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갈량을 비롯한 많은 사인들이 맹달을 당대의 일류로 평가했다. 다만 인물의 허실을 살피는 일에 탁월했던 유비만이 그를 꺼리고 중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유비는 맹달을 믿지 않았기에 그가 상용 지방을 평정했을 때에도 양자인 유봉을 보내 그를 감시, 통제하게 했다. 위나라 조정에서도 유엽과 사마의 같은 사람은 맹달의 위인됨을 사특하게 여겨 좋지 않게 보았다.
조비가 죽고 조예가 즉위하자 맹달을 경계하던 사마의와 유엽이 정권의 실세가 됐다. 신변안전이 우려된 맹달은 제갈량에게 서신을 보내 다시 촉에 귀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관우가 형주에서 실패해 외원 세력이 아쉬었던 제갈량은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맹달은 다시 재주를 피기 시작했다. 상용의 위치가 위오촉 삼국의 경계에 접했으므로 이중·삼중의 줄타기를 시작했다. 제갈량은 물론 손권과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거사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결국 맹달은 사마의의 신속한 조치에 의해 제거됐다. 촉의 제갈량은 물론 오나라도 군대를 내어 적극적으로 맹달을 돕지는 않았다. 신의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맹달의 행태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었으리라. 남을 속여먹기 좋아하던 맹달은 재주만 믿고 까불다가 결국 일신이 패망했다. 거짓말쟁이 배신자의 말로였다.
[미화된 영웅] 맹달 부친 맹타, 환관 장양의 노예들에게 재산 바쳐 출세
맹달(?~A.D 228년)의 화려한 술수와 임기응변은 그의 부친 맹타에게서 물려받았다. '삼보결록(三輔決錄)'이란 책에 맹달의 부친 맹타에 관한 일화가 전하여 온다. 당시 장안과 우부풍·좌풍익을 일컬어 '삼보(三輔)'라 했는데 '삼보결록'은 이 곳 출신의 인물들에 대한 전기를 기록한 책이다.
맹타는 우부풍 출신으로 출신 성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한나라 영제 시절 매관매직이 판을 치자 훌륭한 선비들은 벼슬을 버리고 떠났지만 협잡꾼들과 야바위꾼들은 크게 한탕을 칠 기회를 잡았다고 여겨 관직매수에 뛰어들었다. 그런 인물들 중 대표적인 자가 맹타였다.
당시 조정의 실세는 중상시 장양이었다. 장양은 자신의 집안일을 우두머리 노예에게 일임했다. 벼슬 길에 나선 맹타는 곧바로 가재를 털어 장양의 우두머리 노예에게 바치고 또 그 휘하의 여러 노비들과도 깊은 친교를 맺었다. 로비에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갔으므로 불과 몇 년 만에 맹타는 가산을 다 탕진해 빈털터리가 되었다. 미안한 마음이 든 장양의 노비들이 맹타에게 무엇을 도와줄 것인지 물었다. 맹타가 대답했다.
“조정 대신에 임명되길 원할 뿐이다.”
노비들은 오랫동안 맹타의 은덕을 입어왔으므로 모두 맹타의 계획에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수많은 빈객들이 장양을 만나보기 위해 찾아오곤 했으므로 장양의 집 문 앞에는 늘 수백 대씩 수레가 늘어서 있었다. 어떤 사람은 며칠이 지나도 장양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어느 날 늦은 시간에 맹타가 장양의 집을 찾아갔다. 정상적인 차례대로라면 맹타의 면담순서가 가장 늦었으나 그가 도착한 것을 본 장양의 노비들이 다 나와 절을 하면서 맞아들였다. 맹타의 수레는 곧바로 장양의 집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를 본 여러 사람들이 다 크게 놀랐다. 맹타가 장양과 절친한 관계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제는 맹타의 환심을 사고자 다투어가며 보화와 재물을 선물했다. 맹타는 재물을 얻으면 다 장양에게 뇌물로 바쳤으므로 장양이 그를 매우 좋아했다. 장양과 친해진 맹타는 얼마 후 장양에게 포도주 한 섬을 선물로 바치고는 당일로 량주자사에 임명되었다.
이 일화를 보면 맹타라는 자는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가나 투기성이 매우 강할뿐더러 도대체 윤리 관념이라고는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맹달은 맹타의 이런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다만 좀 더 훌륭한 교육을 받았을 뿐이라고나 할까.
[거짓말 벗겨보기] 제갈량, 맹달 거사 사마의에 제보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맹달의 거사음모가 탄로 날까 걱정해 사자를 두 번이나 보내 기밀유지를 신신 당부한다. 맹달이 이를 무시하고 태평하게 굴다가 금성태수 신의의 밀고를 받은 사마의의 습격에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그러나 사실 맹달의 거사음모를 위나라에 귀띔해준 장본인은 바로 제갈량이었다. 맹달이 겉으로만 귀순의사를 표시하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갈량은 맹달의 거사를 촉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곽모라는 사람을 시켜 위나라에 음모를 흘려주었다. 제갈량은 다른 한편으로 음모가 탄로났음 알려주었으나 맹달은 사마의의 속임수에 넘어가 대비를 하지 않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맹달의 배신을 둘러싼 음모와 모략에서 사마의가 제갈량에게 완승을 거두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