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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220.반 고흐의 미래
만약 반 고흐가 오늘날까지 살아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네덜란드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반 고흐는 화가로 활동하던 생전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다. 그의 유일한 후원자는 아트 딜러를 하는 동생 테오 뿐이었다.
그러나 동생 테오마저 형의 그림을 팔 수 없었다. 한 번은 고흐가 왜 자기 그림을 팔아주지 않느냐며 투덜거리자 테오는 형의 그림이 너무 어둡고 요즘 유행하는 인상주의 그림이 아니어서 팔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반 고흐가 생전에 그린 1500점의 그림 중 유일하게 팔린 작품은 '붉은 포도밭'이었다. 이 그림도 팔 목적이 아니었다고 한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선물한 그림이었다. 테오는 이 그림을 한 전시회에 걸었고 마침 벨기에의 여류화가가 400프랑에 그림을 사게 된다. 그것이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1890년 고흐는 거듭되는 우울증과 예술적 좌절감에 시달리다가 37세의 나이에 권총자살을 시도한 뒤 이틀 후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현재 고흐의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목록에 당당히 올라와있다.
1987년 3월 30일 영국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3990만 달러(약445억원)라는 놀라운 가격으로 한 그림이 팔려나갔다. 바로 고흐의 '해바라기'였다. 3년 후인 1990년에는 '의사 가셰의 초상'이 일본 사업가 료에이 사이토에 의해 8250만 달러(약 993억원)에 팔렸다.
한때 료에이 사이토가 '내가 죽으면 수집한 미술품을 같이 묻어 달라'고 말해 전 세계 미술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만약 그의 유언대로 고흐의 작품이 사이토의 시신과 함께 매장된다면 큰일이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정도로 미술 수집가들에게 고흐 작품은 최고의 콜렉션으로 손꼽힌다.
때문에 고흐의 작품은 경매장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1990년 경매 이후 고흐의 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만약 고흐의 작품이 경매에 나온다면 현재 가장 비싼 미술품으로 기록 중인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이 기록한 1억 416만 800달러(약 1200억원)을 호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반 고흐가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면, 그리고 그의 모든 작품이 최고가에 팔리고 있다고 가정하다면 그의 재산은 어느 정도일까. 고흐의 유작은 약 1500여점. 여기에 20년 전 경매가로 가늠한다면 한 작품 당 1억 달러로 1500여점을 모두 판다면 약 1500억 달러, 한화로 150조원 재산을 가진 거부가 된다. 이 정도면 세계 3대 부자 안에 들 정도다.
살아있을 때는 가장 가난했지만 죽은 뒤 세계인이 사랑하는 화가로 거듭난 반 고흐. 역사 속에는 반 고흐 같은 위인이 많다. 모딜리아니·르느와르·이중섭처럼 당대에 큰 부를 누렸던 예술인보다 생계를 위협받는 가난 속에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 세계를 살았던 예술인들의 작품이 더 오래, 더 아름답게 빛나는 건 왜일까.
8.15 광복절이 다가온다. 일제 강점기 조선에는 반 고흐처럼 살다 간 독립투사들이 수없이 많다. 그 중에는 세계 최고의 첩보수준을 자랑하는 이스라엘 모사드나, 본부의 위치가 어디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M16 요원들보다도 더 강하고 민첩했던 조선의 비밀요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 모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누구나 반 고흐처럼 예술혼을 불태우며 살 수는 없다. 다만 청소미화원이든, 대통령이든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그 일을 즐기며 살 때 삶은 예술이 되며,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최고 부자가 될 수 있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