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가요 순위 프로그램 트로피를 들어 올린적 없고, 음반·음원을 통틀어 차트 1위에 이름을 올린 적도 없는데 말이다. 조용필·들국화·서태지 같은 레전드와 상업적인 성공만 놓고 봤을 때는 초라할 정도. 그럼에도 록팬들과 음악 평론가들은 시나위를 레전드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시나위가 쌓아올린 27년차 음악 공력이 1위 트로피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고, 견고한 덕분이다.
1986년 데뷔해 임재범·김종서·서태지·강기영·김바다 등 거쳐간 뮤지션이 어마어마하다. 한국 록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시나위 출신 뮤지션이 한국 가요계에 미친 영향은 크다. 데뷔 초 '크게 라디오를 켜고''새가되어 가리' 등 메탈로 시작해, 중반 '은퇴선언' 등 얼터너티브록에 이르기까지 외도없이 돈 되지 않는 '록' 장르만 탐구했다는 점도 높게 평가 받는다. 유현상·김도균 외에는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하지 못한 백두산이나, 말랑말랑한 록으로 성공을 거둔 김태원의 부활 보다 록 애호가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시나위를 레전드로 꼽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의 음악적 변신과 성취에 있다. 시나위가 7년 만에 발표한 신보 '미러뷰'는 21세기 록 음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의 록은 전혀 나이 들지 않았다. 기타 플레이는 더욱 빠르고, 강렬하고, 묵직해졌다. 록을 기반으로 일렉트로닉 등 최신 장르와의 교합을 통해 앨범 전체에 트렌디한 느낌을 가져왔다.
신대철은 "지난 앨범을 발표하고 창작 의욕도 생기지 않고, 음악과도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내 안에 응축했던 것들이 폭발한 앨범이 나왔다"고 밝혔다.
-새 앨범이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네요.
"스스로도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생각해요. 나이가 먹으니 사고가 죽어서 그런지, 사실 창작의욕도 잘 생기지 않았고요. 근데 열매를 맺기까지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양분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그 동안 응축했던 것들이 폭발한 앨범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새 앨범을 계획할 만한 계기가 있었나요.
"방송을 하면서 신선한 기운을 얻었어요. 지난 앨범을 발표하고 갑자기 밴드 음악이랑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근데 KBS 2TV '톱밴드'에 출연하면서 많은 후배들을 알게 됐고, '내가 있을 자리는 이 자리(심사위원)가 아닌, 저 자리(연주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MBC '나는 가수다'도 계기가 됐어요. 어떤 음악을 할 것이냐, 그런 부분에서 정리가 된 것 같았어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나는 가수다'에서는 좀 더 보고 싶었는데, 아쉽진 않았나요.
"그런건 없었어요. 공중파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굉장히 행복했어요. 음악을 자유롭게 편곡하고, 해보지 않았던 스타일에 도전도 해보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단기간 내에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중하느라, 한 동안 잊었던 감각들도 찾게 된 거 같아요."
-갑자기 방송 욕심이 났던 건가요.
"방송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기회가 와서 응했던 것 뿐이에요. 근데 이건 분명해요. 뮤지션들이 연예인을 하겠다고 예능에 출연하다보면 음악하고 멀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거리를 둬야 할 때도 있는 거죠."
-이번 음반이 진보적이고, 젊다고 느꼈어요. 확실히 이전 음악과는 느낌이 달랐어요.
"4인조 밴드 활동을 오래 하다보니, 악기 3개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한계를 스스로 정한 것 같아요. 스스로 표현의 한계를 정해놓고 자학을 하는 거죠. '우린 건반이 없으니까, 대신 기타로 표현해야 해'. 그게 우리의 정체성일 수도 있지만, 넘어설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은 거에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는 새롭게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서 흉내를 내는 건 그만하고 싶었죠. 새로운 구성으로 도전하고 싶었어요. 다양한 색깔을 내보고 싶었고, 조합도 다양하게 해봤어요. 음악은 마치 연금술과 같아서 금을 만들기 위해 열을 가하면서 뜻하지 않게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기도 하거든요. 음악의 역사도 항상 그런식으로 발전해 왔어요. 우린 그런 노력들이 부족했고, 지금부턴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죠. 똑같은걸 하는 건 재미가 없잖아요."
-타이틀곡인 '슬픔의 이유'는 '힐링'을 테마로 잡은 것 같아요.
"힐링 록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의 성질 중에 힐링도 전제에 있어요. 록 음악에도 좀 그런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시대엔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아파하기도 하잖아요, 근데 잘 표현을 못해요. 최근에 힐링이 트렌드라고 하는데, 얼마나 그런 부분이 충족되지 못했으면 이제와서 트렌드가 됐겠어요. 사람들이 다 필요로 하는거지. 세상도 많이 변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우울증 그러면 정신병 취급했잖아요. 요즘엔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질환으로 생각하죠. 우리도 그런 부분을 음악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벌써 세 번째 다시 부르고 있네요.
"데뷔곡이자나요. 상징성도 있고. 한 밴드가 한 곡을 가지고 10년 단위로 버전을 달리해서 부르는 것도 재미있게 느꼈어요. 첫 번째 버전은 임재범, 두 번째는 김바다가 불렀고, 이번에는 피아 옥요한, 로맨틱펀치 배인혁 등 여러 후배들에게 참여를 부탁했어요. 전화를 했더니, 흔쾌히 도와주더라고요."
-새로운 보컬이 들어왔어요.
"지난해 말에 오디션을 했어요.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아서 진행을 했는데 모험이었죠. 신청자가 없을 수도 있고, 그 중 내가 찾는 보컬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결승 무대에 10명이 올라왔는데 이 친구는 떨지를 않더라고요. 평소 모습 그대로 같았어요. 그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록페에서도, 전혀 쫄지 않더라고요. 10년 정도한 베테랑 같았어요."
-시나위를 함께한 아티스트가 많잖아요. 이들과 다시 뭔가 해볼 생각은 없나요.
"그런 기회가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근데 쉽지는 않을 거 같아요. 일단 다 같이 만나는 것 자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