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72)가 또 한번 은퇴를 선언했다. 세번째 은퇴선언인데다 여느 때보다 결심히 확고한 것으로 전해져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끄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호시노 고우지 사장은 1일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장편영화 제작일선에서 물러난다. 오는 6일 일본 도쿄에서 하야오 감독이 이와 관련해 직접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침 하야오의 신작 '바람이 분다'가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상태. 세계 영화인들과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해 놀라움을 줬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선언은 이번이 세번째다. 1997년 '원령공주'를 발표한후 은퇴를 선언했다가 4년만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감독으로 복귀했다. 이후 또 한번 '연출은 하지 않겠다'고 은퇴를 선언했지만 다시 한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하야오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후계자 양성 과정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선언 이후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게드전기'를 내놨지만 혹평 속에 흥행에도 참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또 다른 후계자로 꼽혔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마리 밑 아리에티' 역시 기대만큼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일본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도가 높은만큼 후계자들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어쩔수없이 하야오가 은퇴를 번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벌써 수년간 은퇴준비를 해왔던데다 하야오의 동반자인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까지 "'바람이 분다'는 하야오의 유언"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미 두 차례 은퇴를 번복했고 72세로 나이까지 많아 두번 다시 은퇴번복은 없을거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가미가제 특공대의 폭격기로 쓰인 제로센의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바람이 분다'를 발표한후 논란에 휩싸이고 심신이 피로해져 또 한번 은퇴를 고려했을 뿐 명확하게 결정을 내린건 아니라는 추측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현재 일본 내에서는 각 매체들이 하야오의 은퇴선언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1963년 다카하타 이사오 등과 토에이에 입사하면서 애니메이션계에 발을 디뎠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미래소년 코난' 등의 작품을 통해 애니메이션 연출을 익혔고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히트시키며 스타감독이 됐다. 1985년 지브리 스튜디오를 세우고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화제작을 내놓으며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의 거장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