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과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 클래식 28라운드에서 서울의 선발 명단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서울이 '배수지진(背水之陣) 선발'을 내놨기 때문이다.
서울은 대표팀에 차출됐던 데얀(32), 하대성(28), 고요한(25), 윤일록(21)을 모두 선발로 내세웠다. 몬테네그로 대표팀에서 활약한 데얀은 며칠 전 귀국했다. 하대성과 고요한은 10일 전주에서 열린 크로아티아 평가전에 나서지 않았지만 윤일록은 이 경기에서 후반 25분 여를 뛰었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일록이와 면담해보니 컨디션에 크게 문제가 없다고 했다. 포항전은 선두권 도약을 위한 분수령이다. 이기려면 반드시 베스트11을 내보내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서울은 이날 경기 전까지 올 시즌 포항에 1무1패로 열세였다. 또 전반기 서울이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포항은 승승장구하며 1위를 유지했다. 선수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던 '독수리' 최용수 감독과 '황새' 황선홍 포항 감독의 자존심 대결도 팽팽했다. 포항에 설욕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던 최 감독은 그래서 최정예 멤버를 모두 투입했다.
서울은 이날 몰리나(33)와 고명진(25)의 골에 힘입어 2-0으로 포항을 눌렀다. 서울은 12경기 무패(9승3무) 기록을 이어갔고, 승점 3점을 추가해 3위(14승8무6패·승점50)로 한 계단 올라섰다. 포항은 졌지만 선두 자리는 유지했다.
서울은 전반에만 볼 점유율이 67%로 포항(33%)에 비해 크게 앞섰고, 포항의 골문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하지만 후반에 들어서면서 선수들이 다소 지친 듯했다. 데얀은 후반 3분 좋은 기회에서 공중으로 슈팅을 날린 후, 한참 제자리에 서서 숨을 골랐다. 하대성도 실수로 라인 밖으로 공을 내보낸 후, 피곤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포항 역시 후반에 대표팀에서 뛰고 온 이명주(23)를 투입했고, 이후 공격력을 점차 살려 갔다. 그러자 서울 선수들이 다시 바짝 긴장했다. 몇 번이나 넘어졌던 윤일록은 후반 15분 아크 정면에서 돌파하며 재치있게 포항 노병준(34)의 태클을 유도해내기도 했다.
그리고 후반 23분 최정예 멤버들이 일을 냈다. 후반 23분 고요한과 데얀의 환상적인 2대1 패스가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고요한이 페널티 박스 우측에서 데얀에게 짧은 패스를 한 후, 바로 앞으로 뛰어들어가자 데얀이 고요한에게 다시 패스했다. 고요한은 그대로 드리블하면서 골문 앞에 있는 몰리나에게 크로스를 올려줬다. 몰리나는 왼발로 골을 만들어냈다. 이 골로 몰리나는 K리그 최초로 4년 연속 공격포인트 20개(7골·13도움)를 달성했다. 서울은 후반 43분 고명진의 쐐기골까지 보탰다.
최 감독은 "반드시 승부를 봐야하는 경기였다. 선수들에게 리그에서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뛰라고 했다. 일부 선수들이 대표팀에 다녀와서 힘들었겠지만 더 많이 뛰어줘서 고맙다"고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