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토비 도슨(34). 부산에서 태어나 미국 부모에게 입양돼 자랐고, 2006년 토리노겨울올림픽에 미국 스키 대표로 참가해 동메달을 땄다. 이때 친부모를 찾은 게 계기가 돼 부산에 살고 있는 친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2018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에 힘을 보탠 후 현재 한국의 스키 유망주를 가르치고 있다.
이 여자 김연지(32). 독일에서 태어나 태권도 사범이자 세계선수권자인 아버지에게 태권도를 배웠다. 사춘기 나이에 태권도를 더 배우겠다며 혈혈단신 귀국해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 대표가 됐고, 아버지처럼 세계선수권을 제패했다. 선수를 그만둔 뒤에는 스포츠 행정가 꿈을 키웠고, 평창올림픽 조직위에서 일하고 있다.
바로 이 두 사람이 부부가 됐다.
너무나 다른 환경, 너무나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둘은 놀랄 만큼 닮은 구석이 많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를 반려자로 맞는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정말 잘 어울린다"며 축복을 보냈다.
지난 8일 결혼을 앞둔 이들을 만났다. 14일 결혼식을 올린 이들은 당시 결혼을 코앞에 둔 예비 신랑·신부로서 행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김연지씨는 도슨 코치를 '오빠'라고 불렀고, 도슨 코치는 김씨를 '자기'라고 불렀다. 한국어가 아직 유창하지 않은 도슨 코치를 위해서 김씨가 섬세한 통역을 도와줬다.
둘은 모두 외국 생활을 오래 했지만, 알고 보니 '파스타 같은' 데이트가 아니라 설렁탕집에서 만나며 '구수한' 사랑을 키웠다고 했다.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기분 좋고 훈훈했다.
약속 장소 먼저 나온 '토비 오빠'에 감동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한복을 갖춰 입은 김연지씨가 "오빠, 나 예뻐?"라고 한국말로 물었다. 도슨 코치는 "응, 좋아"라며 밝게 웃었다. 서로 옷 매무새를 다듬어주고, 마주볼 때마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한복 입은 모습을 서로 휴대폰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두 사람을 이어준 고리는 '평창'이었다.
둘은 2011년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도슨 코치는 유치위 홍보대사로 활동했고, 김씨는 대한체육회 직원으로서 조직위에 파견 근무 중이었다. 둘 다 첫눈에 반한 사이는 아니라고 했다.
도슨 코치는 "스키협회에 있는 사람들한테 연지에 대해 물어보니까 '태권도 선수 출신이니까 잘못 덤비면 큰일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더군요"라며 웃었다. 도슨 코치는 그래도 용감하게 먼저 다가갔다. 그는 "살아온 배경이나 성격 등을 보면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게 되고 믿음이 생겼어요. 끊임없이 연락하고 식사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사람이 평생 함께 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라고 했다.
도슨 코치의 정성에 김씨도 마음을 열었다. "지난해 11월에 업무 때문에 늦게까지 일하고 귀가한 때가 있었어요. 그때 오빠가 맛있는 거 사주겠다면서 회사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다음날 내가 브런치를 먹자고 제안했는데 오빠가 약속 시간보다 30분 전에 미리 나와있었어요. 힘들 때 나를 위해 기다려주고, 약속도 지킬 줄 아는 성실한 모습을 보면서 '사귀어야 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음력 생일도 똑같은 천생연분
도슨 코치와 김씨는 신기할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 김씨는 "커플 게임을 한 적이 있어요.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동시에 적는 것이었는데 같은 게 너무 많이 나와서 신기했어요"라고 했다. 둘은 당시 좋아하는 음식(육류), 색깔(파란색)은 물론 동물(기린)까지 똑같이 적었다. 도슨 코치도 화답했다. "심지어 나중에 알고 보니 싫어하는 음식도 똑같더라고요. 내가 번데기, 홍어를 못 먹는데 이 친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둘은 태어난 해가 다르지만, 음력 생일(4월 9일)은 똑같다. 김씨는 "재미삼아 점을 본 적이 한 번 있어요. 음력 생일이 같은 걸 두고 점 보는 분이 '정말이냐'고 되묻더라고요.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고, 인연이 좋다고 하던데요"라면서 "둘 다 관상도 좋다고 했어요. 딸 낳으면 오빠 닮고, 아들 낳으면 나를 닮는대요"라며 웃었다.
둘은 제대로 된 데이트를 거의 하지 못했다. 모굴스키 대표팀을 맡은 도슨 코치는 해외 전지훈련이 잦다. 김씨는 평창 조직위에서 많은 업무를 소화해야 했다. 도슨 코치는 자신들의 사랑을 이어준 건 '와이파이'와 '설렁탕'이라고 했다.
해외 전훈을 갈 때마다 도슨 코치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숙소에서 와이파이(무선인터넷)가 잘 잡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 4-5시간씩 무료 모바일 통화로 김씨와 통화했다. 도슨 코치는 "와이파이가 없었다면 정말…"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호텔이든 훈련지든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틈날 때마다 연지와 연락했어요. 덕분에 매일 실제로 만난 것 같았지요"라고 했다.
한국에서 만나면 설렁탕집에서 설렁탕 두 그릇을 놓고 알콩달콩 대화를 나눴다. 김씨는 "둘 다 설렁탕을 좋아해요. 거기서 오빠가 저한테 매운 고추 한번 먹어보라면서 장난칠 때가 정말 행복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때 도슨 코치는 또 한 번 김씨에게 매운 고추를 먹이는 포즈를 취하며 장난을 쳤다.
둘은 본격 교제한 지 10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김씨는 "둘 다 바빠서 결혼 준비가 쉽지 않을 거라고들 했어요. 그래도 오빠가 중심을 잘 잡아줬죠. 정말 한번도 의견 충돌없이 매끄럽게 결혼 준비를 했어요"라고 말했다. 도슨 코치는 "양부모 아래서 함께 자란 한국 출신 남동생도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어요. 부모님께서 이제 모두 '코리안 패밀리(Korean Family)'가 됐다면서 행복해하시더라고요"라고 귀띔했다.
2세도 국가대표 선수로
둘은 신혼여행을 내년 2월(2014 소치겨울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이후로 미뤘다. 김 씨는 "오빠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많을 거예요. 아무래도 올림픽이 다가오면 더 심해질 것 같아요. 그런 스트레스가 안 생기도록 최대한 돕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겠지요"라면서 "저도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해서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오빠에게 정말 힐링이 될 수 있는 아내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런 아내에게 도슨 코치는 "아임 소 쏘리(I'm so sorry·정말 미안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2세를 갖는 것도 소치올림픽 이후로 미뤘다. 김씨는 벌써 '운동선수 2세'를 꿈꾸고 있다. "우리 둘 다 운동 신경이 좋았는데, 2세는 더 운동을 잘 하지 않겠어요? 어떤 종목이든 자질이 있다면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에 일조하는 선수로 키워보고 싶어요."
이 말에 귀가 솔깃해진 도슨 코치는 "그렇다면, 내가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던 아이스하키 선수로 키워야겠다"며 나섰다.
마지막으로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뭔지를 물었다.
"늘 웃으면서, 재미있게 살아보자. 오빠도 행복하게 잘 해줄게." (토비 도슨)
"이제 우리 가족이에요. 지금 이 마음처럼 사랑하고 아끼고 도와주고 평생 영원히 같이 잘 살아요. 토비 오빠, 사랑해요." (김연지)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사진=김진경 기자, 한복 협찬=비단빔
▶Tip 토비 도슨-김연지 부부는 누구?
토비 도슨 코치는 입양아 출신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큰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세살 때 어머니와 함께 부산 범일동 중앙시장에 갔다가 미아가 됐고, 이후 미국으로 입양됐다. 스키 강사 출신인 양아버지를 따라 스키를 배운 그는 미국 국가대표로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스키 프리스타일 남자 모굴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당시 '엄마, 아빠, 보고싶어요'라는 한국말로 주목을 끈 도슨 코치는 이듬해 2월 친부(김재수씨)를 찾았다. 그의 사연은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 영화화됐다. 그는 2011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열린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당시 직접 프리젠테이션 발표자로 나서면서 이 사연이 또 한 번 재조명됐다.
김연지씨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독일 아헨에서 태어난 김씨는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이자 사범인 아버지 김철환씨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태권도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16살에 홀로 한국으로 건너온 김 씨는 오직 실력만으로 정면 승부해 국가대표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2001·2003 세계선수권 2연패,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던 태권도 스타였다. 2005년 은퇴한 뒤에는 대한체육회에 입사해 체육 행정가의 길을 걸었고, 지난해부터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