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패닉 1집 타이틀곡 '달팽이'로 KBS 2TV '가요톱10' 등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휩쓴지 꼭 18년 만이다. "뮤직뱅크 1위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감에 진심이 담긴 이유다.
이적은 데뷔 후 패닉·카니발·긱스·솔로 활동을 오가며 대중에게 꾸준하게 사랑받았다. 하지만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는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 아이돌 음악이 가요계를 잠식하면서, 아이돌 팬덤을 넘어서는 인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정규 5집을 내놓고 '본인도 예상조차 못한 일'을 해냈다. 타이틀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로 음원 차트 1위에 이어 음악 방송 1위까지 올랐다. 7년여 만에 음악 방송에 출연해 이룬 쾌거다. 39살 이적이 아이돌이 꽉 쥐고 흔드는 음악방송에서 어떻게 1위에 올랐을까. '믿고 듣는' 음악의 힘이 역시 컸다는 평가다.
▶분위기 달라진 음원 시장
음원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올 한해를 결산하는 차트를 살펴봐도 아이돌 음원은 10위권내 몇 곡 되지 않는다.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트렌드가 다시 바뀌고 있다는 견해까지 나왔다.
아이돌 음원이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아티스트형 가수들의 음원이 힘을 받고 있다. 아이돌 음원과 싱어송라이터형 가수들의 음원이 '50대 50'의 점유율로 맞서고 있다. 1일 멜론 차트를 살펴보면 10위권내 아이돌의 음원은 2NE1의 '그리워해요'와 효린의 '너 밖에 몰라' 미쓰에이의 '허쉬'까지 단 세곡이다. 이적의 타이틀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발표된 지 보름이 넘었지만 대부분의 차트에서 10위권에 포진해있을 만큼 인기다.
이적은 신곡 발표에 앞서 음감회를 열고 가요 기자들을 불렀다. 그 자리에서 "요즘 같은 시장에서 (신곡 반응이)어떨지 모르겠다. 음원 차트에 이런 곡이 들어가 있으면 부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이어 "대단한 성적을 낼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성적이 좋으면 좋겠지만 내 곡은 시차를 두고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편이다. 이 곡도 그런 곡이 됐으면 한다"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반대였다. 발표한 뒤 하루 만에 음원 차트를 '올킬'했다. 오래간만에 발표하는 신보에 대한 기대감에 겨울 시즌 '쓸쓸한 발라드'라는 희소성이 더해졌다. 대중들이 기다렸던 음악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가요 프로그램 변화의 조짐 보이다
음원 차트에서의 인기는 음악 방송에서의 높은 순위로 이어진다.'뮤직뱅크'의 경우 음원 점수가 65%에 달한다. 물론 방송횟수 20%, 시청자 선호도 10%, 음반판매 5% 등 남은 기준은 아이돌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친 아이돌' 차트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 이유. SBS '인기가요' MBC '쇼! 음악중심'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못 넘을 벽은 아니다. 단순하지만 음악이 좋다면 가능하다. 노래에 대한 팬덤이, 가수 팬덤을 넘어서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왕' 조용필은 '바운스'로 23년 만에 음악 방송 1위에 올랐고, 이승철 역시 올해 1위 후보에 오르는 성과를 얻었다. 버스커버스커 역시 1위 트로피를 안았다. 방송 출연이 전무한 아티스트들의 반란이었다. 음악으로 승부하는 힙합, 알앤비 뮤지션들의 성과도 대단했다. 대중에게 이름도 생소한 범키가 1위 후보에 올랐다. 28일 '뮤직뱅크'에서 이적과 맞붙은 1위 후보는 보컬 듀오 다비치였다.
이적의 소속사 측은 "(이적의 1위는) 노래의 힘이라고 본다. 물론 가수에 대한 팬덤이 필요하지만 결국 노래가 오래 힘을 받으려면 뮤지션이 어떠냐를 떠나서, 정말 '노래' 그 자체에 대한 팬덤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어 "사실 데뷔곡 이후 첫 1위라는 사실에 우리도 놀랐다. 지난 18년 동안 음악 생활을 잘 해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더욱 좋은 음악으로 사랑받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