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포항의 더블을 이끈 황선홍(34) 감독의 말이다. 평소 무덤덤한 황 감독도 이명주(23)의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밝아진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이명주가 포항의 에이스다. 난 명주의 플레이에 만족한다. 그러나 명주는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에 이명주는 "감독님이 평소에는 그런 말씀은 안해 주신다"며 쑥스러워했다. 2일 황 감독을 만나 이명주가 전술적으로 놀라운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포항-바르샤 닮은 꼴 포진, 다른 전술운용
올 시즌 내내 포항은 바르셀로나 축구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4-3-3을 기본으로 제로톱(0-Top)을 썼다. 전방에서는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공격을 풀었고, 경기 운영을 짧은 패스 위주로 했다. 이 때문에 축구 팬들은 스틸러스와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탁구 치듯 패스를 주고받는다는 의미)를 합쳐 '스틸카타'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황 감독은 포항과 바르셀로나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황 감독은 "포항은 변형 제로톱이다. 바르셀로나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의 설명을 빌리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사이드 풀백(아드리아누-다니 알베스)이 공격에 깊숙하게 가담한다. 바르셀로나는 좌우 풀백이 공격 깊숙한 지역까지 올라와 폭을 좁혀놓고 상대를 압박한다. 기술이 뛰어나 공을 내주는 경우도 적고, 뺏겼을 경우 전방 압박도 빠르다. 역습을 내주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포항은 이런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 황 감독의 설명이다. 황 감독은 "수비 안정도 생각했다. 포항은 좌우 풀백이 공격가담을 바르셀로나 만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측면에서 공격은 고무열과 노병준 등 측면에 배치된 공격수가 맡는다. 때문에 전방 공격진의 폭이 오히려 넓어진다. 황 감독은 "미드필더에 부하가 많이 걸리는 전술이다"고 설명했다.
◇ '철인 29호' 이명주의 힘
이런 포항의 전술운용은 '철인' 이명주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명주는 포항이 공격할 때 바르셀로나의 메시-산체스-사비가 하는 역할을 혼자 다 해낸다. 공격 지역의 공간이 많고, 포항 선수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이명주 홀로 1인 3역을 하는 것이다. 그는 슈팅도 51개로 팀 내에서 가장 많이 때렸다. 메시처럼 마무리 역할도 했다. 또 산체스처럼 전방 침투도 했고, 사비처럼 후방에서 패스를 찔러주기도 했다. 이명주는 올해 7골 4도움을 기록해 팀내 공격포인트 3위에 올랐다. 황 감독은 "이명주는 대체 불가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2년 차 징크스가 없는 꾸준함도 돋보인다. 이명주는 K리그 34경기를 포함해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6경기와 FA컵 5경기, 국가대표팀 6경기까지 총 51경기를 소화했다. 과부하가 걸리는 자리에서 시즌 내내 부상 없이 뛴 것이다. 이명주는 "솔직히 힘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형들에 묻혀서 가는 경우도 있다"며 엄살을 피웠다. 그러나 이명주는 한층 농익은 플레이로 포항의 더블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