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방송가엔 유독 표절 의혹을 받는 드라마가 많았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단편 추리소설 '악마의 증명'을, tvN '나인'은 기욤 뮈소의 작품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표절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야왕'은 극본을 집필한 이희명 작가는 표절의혹을 받아 한국방송작가협회로부터 제명당하기도 했다. 대부분 올해 시청률이 잘 나오거나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이라 파장이 더 컸다.
SBS 수목극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 역시 마찬가지다. 전지현·김수현이라는 호화캐스팅에 2회만에 20%(닐슨코리아)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 최근 만화 '설희'의 강경옥 작가는 '별그대'가 자신의 작품과 너무 많은 부분이 겹친다며 블로그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별그대' 제작사와 박지은 작가는 지난 22일 "강 작가가 문제삼은 부분은 누구나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소재와 캐릭터 설정"이라며 반박했고, 강 작가는 23일 이를 재반박하며 구체적인 유사점을 조목조목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두 작품은 어느 부분에서 닮아 있을까. 또 이를 표절로 봐야할 지 전문가와 법조계에 물었다.
▶기준1: 소재의 일치, 표절일까? 전문가 의견은
관계자들은 "드라마의 표절은 단순 설정이나 캐릭터의 유사성만 가지고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가요처럼 '8마디 이상 유사하면 표절' 등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표절방지 가이드 라인'은 "대사와 등장인물, 플롯, 사건의 전개과정, 작품의 분위기, 전개속도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단순히 비슷한 대사나 인물 설정 한 두가지로 표절을 판단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유사하다는 개념 자체가 주관적이라 판단이 쉽지 않다.
우선 '별그대'의 제작사와 박지은 작가 측은 "같은 역사적 사건이 모티프가 된 작품이라 오해가 발생한 것 같다"고 밝혔다. 두 작품은 모두 광해군일기에 기록된 '1609년 조선 하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나타났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에 제작사 측은 "두 작품은 줄거리에서 인물의 성격, 구성과 글의 흐름, 주제 의식, 배경까지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에 표절의혹을 제기한 강경옥 작가는 '별그대'와 '설희'의 유사점으로 총 8개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그는 "요새는 대부분의 소재들이 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것들"이라며 "하지만 역사적 사건 인용·불로·외계인·피로 인한 변화·환생·같은 얼굴의 전생의 인연·연예인 톱스타 등 8개의 클리셰가 우연히 한꺼번에 몰리기는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결국 표절 판단 기준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디까지가 '클리셰'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고유한 창작인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벌2세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사랑'부터 시간여행, 환생 같은 것은 클리셰라고 해도, 조선시대부터 살아온 외계인이나 피(타액)로 인한 변화 등의 설정에 대해서는 유사성 판단이 애매하다는 것.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귀신보는 사람이든, 시간 여행이든 한 경향이 여러 작품에서 나타날 때가 있다. 이를 한 작품의 고유한 것으로 봐야할지는 어려운 문제"라며 "같은 장르일 경우엔 또 비슷한 작법이 등장한다. 이를 무조건 표절로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상속자들'과 '가십걸'은 같은 흐름에서 나온 작품일 뿐, 표절은 아니다. 반면 대중문화평론가 윤석진 충남대교수는 “모티프는 같을 수 있지만, 에피소드나 구체적인 인물 설정등 유사점이 계속 발견된다면 문제"라고 전했다.
▶기준2: 법적 판단도 애매모호…"절대기준 없다"
업계에서 자정이 되지 않으면 결국 법에 기대게 된다. 강작가도 현재 법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그는 "1월달에 변호사들을 만나서 자문을 받고 향후 행동을 결정할 예정이다. 저작권에 대한 환기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경 대응 의지를 보였다. 이렇게 되면 드라마를 내보내고 있는 방송국과 제작사, 두 작가가 한데 얽혀 공방을 이어나가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매한 판단 기준 때문에 법적인 해결도 쉽지 않다. 법정에서 다루는 것은 소재나 아이디어의 표절이 아닌 동일한 대사, 같은 장면의 연출 등 여부이기 때문이다. 이에 조면식 변호사는 "과거 '여우와 솜사탕(01)'과 '사랑이 뭐길래'(92), '구미호: 여우누이뎐(10)'과 임충 작가의 '전설의 고향' 정도가 소송에서 표절을 인정받은 경우"라며 "저작권이 보호하는 것은 '표현'이지 '아이디어'가 아니다"고 밝혔다. 같은 대사나 장면 배치 등 누가봐도 베낀 것이 분명하다면 몰라도, '환생' '외계인' '불로' 등 주관적인 아이디어가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 변호사는 "다만 법원에서는 과거 판례들을 기준으로 해서 개개 사건의 표절 여부를 판단한다.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의적이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외에도 드라마는 알고 베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 저작권협회 관계자는 "드라마 표절은 특허 개념과는 다르다. 특허는 모르고 베껴도 저작권 침해지만, 드라마는 아닐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박지은 작가 측은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면서 '설희'를 본 적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호연 기자 bittersweet@joongang.co.kr
■ 결국 표절 가리는 건 '대중의 엄격함'
결국 표절을 가리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에 대중들의 안목 향상과 업계 자체의 자정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또한 여러 방송국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것만을 요구하기도 힘들다. 한 방송국 관계자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 보다는 유에서 또 다른 유를 만드는 것이 요새 영화나 드라마의 추세"라며 "대중들이 계속해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스스로 기준을 더 명확히 하는 방법 밖에는 없지 않겠나. 사실 법적 판단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방송국과 작가, 원작자 등이 모두 표절 논란을 악용할 수는 있지만, 한 쪽이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 조 변호사는 "어떤 사람들은 거대 방송국이 힘을 이용해서 표절을 남용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며 "원작자 입장에서 일단 소송을 걸면 합의를 이끌어내기 쉬운 면도 있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해외판매 등을 진행해야 하기에 왠만하면 합의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덕현 평론가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더라도 계속 문제제기는 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의심이 있을 경우 그냥 넘어가지는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문제 제기가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선이 마련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