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는 1987년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 2집으로 데뷔한 한국을 대표하는 로커다. 당시 영국의 밴드 레드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솔로 가수로 '겨울비''지금은 알수없어''대답없는 너' 등을 히트시켜 록발라드의 대명사로 꼽혔다. 복장 규제가 엄격하던 시기, 긴머리를 휘날리며 '추락천사''플라스틱 신드롬' 등의 하드록으로 록 음악의 명맥을 이어간 것도 김종서다. 비틀즈의 아날로그 선율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구속'은 아직까지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애창곡 중 하나.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원인 모를 긴 침체기에 들어갔다. 아이돌의 공습 속에 히트곡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2001년 발표한 8집 '스테리 나잇'이 예상 밖으로 부진했고, 9집 '별'(2005)도 히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김종서는 음악적 방황에 들어갔다. 싱글 '별 이야기'를 발표하는 실험을 해봤고, 록밴드 레이를 결성해 초심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자신이 존경하는 조용필·들국화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음악적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도 있었다. 그래도 과거의 영광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김종서가 2년5개월 만에 신곡 '아프다'를 발표했다. 최근 홍대에서 만난 김종서는 신곡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의 해답을 찾은 듯, 상쾌한 미소로 반겼다. 긴 머리 휘날리며 카리스마 넘치던 20세기 김종서를 다시 만난 듯 했다.
-굉장히 오랜만이다.
"해우소(사찰에 딸린 화장실)에 다녀온 후련한 기분이다. 워낙 오래간만이라 녹음한 기억도 가물가물 했다. 그간 심적 부담감이 엄청났다. 홍보·프로모션은 어떻게 해야할지, 대중이 내 음악을 알아줄지 걱정이 많았다. 나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가수라면 누구나 그런 부담감이 클 거다. 트렌디한 음악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신곡을 내기 까지 어떤 마음가짐이 있었나.
"뭐든 가볍게 하자고 결심했다. 지난 10년 동안 변화를 모색했고 좌충우돌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거다. 심지어 살아남기 위해 드라마는 물론 예능에도 출연했다. 근데 정작 난 점점 불행해지더라. 이젠 내가 행복한 일을 찾자는 생각을 했다."
-유키스·빅스타 등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큰 회사와 계약했다.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홍보·마케팅까지 염두에 두고 활동하려니, 힘에 부치더라. 혼자서 음악을 하며 홍보적인 면에서 여러 가지 실험들이 있었지만 실패에 가까웠다. 역시 매니저들이 있으니 든든하다. 이번에는 회사에서 하자는 방송은 다 할 생각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도 계획돼 있다."
-신곡을 소개하자면.
"100명중에 99명이 '겨울비' 같은 곡을 원했다. 근데 1993년에 나온 곡을 따라갈 수는 없지 않나. 김종서 음악의 기본은 가져가돼 트렌디한 느낌을 살렸다. 고전적인 발라드는 편곡이 장황한데, 이번에는 목소리와 어울리는 선에서 가볍게 했다. 편곡과 작사를 다른이에게 맡긴 점도 데뷔 이후 처음이다. 내가 모든 걸 하는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난 곡만 쓰고 노래에 집중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유니크한 사운드가 나왔다."
-보컬 공부에 열중했다고 들었다.
"나 자신을 리셋하고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데뷔 이래로 한 번도 내겐 보컬 선생님이 없었다. 근데 지난해 tvN '오페라스타'에 출연하면서 성악을 접했고, 이후로는 공부를 놓지 않았다. 현재 한국영상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근무 중인데 우리 학교 학과장이 유명한 테너다. 그 분한테 딱 붙어서 배웠다. 이번 노래도 잘 들어보면 성악적 느낌이 있다. 록과 성악의 결합으로 봐도 된다."
-최근 서태지와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다.
"이번에 나온 신곡을 축하하는 겸해서 서태지 부부와 스키장에 다녀왔다. 늘 내 음악을 모니터 해주는 친구다. 이젠 가족 같다. 서태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처한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이야길 주변에 아끼는 것도 친분을 유지하는 비결인 거 같다."
-기러기 아빠다. 외롭지 않나.
"오래 됐지만 늘 외롭다. 이 세상이 내게 모든 걸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외로울 땐 창작활동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인간 김종서에게는 힘든 일이다."
-올해 가요계가 표절 때문에 시끄러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 표절하는 경우가 있다. 이젠 멜로디, 코드 진행이 나올 수 있는 건 다 나왔다고 하지 않나.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게 없는 거다. 난 레퍼런스 보다는 빈 공간에 멜로디를 그리는 편인데도 비슷한 곡이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수차례 검증이 필요하다. 작곡가들의 양심이 중요하다."
-김종서에게 대중 가수란.
"대중 가수는 언제나 눈과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 심지어 아이돌 음악에도, 듣고 배울 점이 있다. 자기를 개발하고 노력하는 사람들만 결국 살아남는다. 절대 강자라는 건 없다. 흐르는 강 위에 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냥 배 위에서 멍하니 있으면 떠내려간다. 끊임없이 노를 저어야 된다. 그래도 안 되면 모터라도 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