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울산 현대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정운(24)이다. 그는 2012-2013시즌 겨울 이적시장에 크로아티아 1부 리그의 이스트라1961로 이적했다. 올해 1월에 입단한 그는 지난 시즌 12경기를 뛰며 주전을 꿰찼고, 올해는 16경기를 소화하며 팀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왼쪽 날개 공격수와 수비를 모두 볼 수 있는 그는 리그 최고의 왼쪽 날개로 떠올랐다. 크로아티아 리그 역시 1월에는 휴식기를 갖고 겨울 이적시장이 열린다. 다음 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리예카(2위)와 하이두크(3위)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 경쟁이 붙었다. 이 소식은 크로아티아의 메인 스포츠 신문인 ‘SN’의 1면을 장식할 정도로 크게 화제가 됐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기대주…그러나
180cm, 76kg의 단단한 체구를 갖고 있는 정운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울산 현대중과 현대고를 거치며 주목 받았다. 연령대별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고, 명지대 시절에는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빠른 발에 정교한 왼발 킥을 갖고 있어 미래가 밝은 선수로 꼽혔다. 그러나 프로 무대는 만만치 않았다. 2012년 우선지명으로 울산에 입단했지만, 선수층이 단단한 울산에서 출전기회를 잡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정운은 “탄탄대로만 달리다. 프로에 와서 좌절했다. 울산 유스를 통해 자랐기 때문에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며 “결국 1월 말에 구단과 협의해 계약해지를 했다”고 떠올렸다.
상황은 암담했다. 1월 말에 팀을 나와 다른 K리그 구단들은 선수단 구성을 마치고 전지훈련을 떠난 것이다. 새로 뛸 팀도 구하기 어려웠다. 정운은 “어디서 뛰어야 할 지, 축구를 계속해야 하는지도 정하지 못했다”며 어둡던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 이경원 에이스밸리 대표가 그에게 크로아티아 행을 제안했다. 정운은 “솔직히 경기에 뛰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제안을 받고 하루 만에 짐을 싸서 크로아티아로 떠났다”고 말했다.
타지 생활은 쉽지 않았다. 시작부터 자존심을 접고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한국 K리그 무대에서 보여준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 1부 리그의 2~3개 구단을 돌았다. 그리고 이스트라의 이고르 파미치(44) 감독의 눈에 띄어 크로아티아에 입성할 수 있었다. 데뷔 전은 입단 후 꼭 한 달 만에 치렀다. 2월 23일 오시예크 전에 후반 22분 교체돼 들어갔다. 정운은 “예상은 했지만 굉장히 거칠었다. 처음에는 몸을 부딪히는 것도 무서웠다”고 말했다. 첫 선발 경기였던 3월 하이두크 전에서는 전반 종료 직전 퇴장까지 당했다.
크로아티아 NO.1이 되기까지
주변 동료들은 실력이 빼어난 정운을 빠르게 인정했다. 정운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친절했다”며 “특히 동갑내기 룸메이트인 산디 크리츠만(24)이 적응에 큰 힘을 줬다”고 했다. 감독의 믿음에 그는 꾸준히 주전으로 경기를 뛸 수 있었다. 그는 “경기장에 설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한국 선수 특유의 스피드는 그대로 살렸고, 몸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운동했다”며 “이를 악물고 적응했더니 이제는 크로아티아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 시즌에는 멀티 자원으로 변신했다. 왼쪽 날개 공격수부터, 측면 수비수, 중앙 수비수까지 모두 봤다. 파미치 감독은 발이 빠르고 몸싸움이 좋은 정운에게 상대 주요 공격수를 막는 역할을 종종 맡겼다. 정운은 “가장 자신 있는 자리는 왼쪽 공격수지만 팀이 원하면 어디에서든 뛸 수 있다”며 “다 적응이 되더라. 팀에 헌신하는 자세도 배웠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정운의 주가는 한창 치솟고 있다. 크로아티아 리그 내에 리예카와 하이두트 외에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중위권팀과 이탈리아 세리에A 구단이 꾸준히 정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왼발을 잘 쓰고 발까지 빠른 측면 자원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1년 만에 인생역전을 이룬 정운은 “크로아티아에서 경기할 때마다 수 많은 스카우트가 온다. 더 동기부여가 잘 된다”며 “1년 전만 해도 벤치만 달구던 내가 크로아티아에서 성공할지는 상상도 못했다. 내년 유로파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