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드래곤' 이청용(26·볼턴)은 박지성(32·에인트호번) 이후 한국 축구팬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선수다. 2011년 정강이뼈가 부러져 1년간 공백을 가졌던 이청용은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스위스와 평가전에 첫 주장 완장을 차고 결승골을 넣어 2-1 역전승을 이뤄냈다. 대한축구협회가 실시한 팬투표에서 2776표 중 1369표를 받아 손흥민(22·레버쿠젠)을 제치고 2013년 한국 축구를 빛낸 최고 선수로 선정됐다. 언론과 팬들은 "'캡틴리' 이청용에게 박지성의 향기가 난다"고 찬사를 보냈다. 지난달 30일 영국 맨체스터 한 호텔에서 '박지성의 후계자' 이청용을 만났다.
-직접 만나니 박지성의 향기가 더 진하게 나는 것 같아요.
"지성이 형이 2011년 대표팀에서 은퇴하기 전 자주 룸메이트였는데 저와 다른 향수를 쓰던데요. 형과 굉장히 이미지와 안 어울리는 향수를 쓰더라고요(웃음). 저와 성격·생활 패턴이 비슷하고, 같은 포지션에 뛰면서 보고 배운게 많아요. 닮아가려고 노력 중인데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경력 등을 따라 가려면 한참 멀었어요."
-박지성이 축구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나요.
"지성이 형이 맨유에서 뛸 때 볼턴과 차로 30분 거리에 살았어요. 자주 전화통화하며 생활비·세금 문제부터 상대팀 장단점·경기장 분위기 등을 조언해줬어요. 제가 다쳤을 때 굉장히 안타까워하며 위로해줬어요. 근데 (김민지 아나운서와) 연애를 시작한 뒤 연락을 잘 안 받아요. 저도 에이전트도 열애 사실을 몰랐거든요. 저한테 이야기하면 하루만에 소문 날까봐 그랬나봐요(웃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청용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우연찮게도 박지성이었다.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은요.
"여름에 결혼하잖아요(웃음). 돌아온다면 큰 힘이 될텐데. 근데 제가 아는 지성이 형은 한 번 결정하면 절대 바꾸는 선수가 아니에요."
-브라질월드컵 주장으로 거론되고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시작한 뒤 스위스전에 처음으로 주장완장을 찼어요. 제 플레이 뿐만 아니라 경기를 읽으려고 노력했는데 하루 아침에 되지는 않더라고요. 이 팀은 아시안게임·올림픽에서 많은 선수들과 코치진이 올라왔어요. 스타일을 잘 알고, 코치진과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구)자철(25·볼프스부르크)이가 최고의 주장감이에요. 전 주장 욕심 없어요. 이번 경험을 통해 주장이 보지 못한 부분을 옆에서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브라질월드컵에 러시아·알제리·벨기에와 같은조에 편성됐어요.
"버겁다는 생각은 안들지만 까다로운 건 사실이에요.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평가전에서 1-2로 졌지만 스위스보다 해볼만한 상대였어요. 특유의 조직력과 경험 많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무시할 수 없어요. 알제리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TV로 봤는데 중동 이라크와 비슷한 축구를 펼쳤어요. 벨기에 벤테케(24·애스턴빌라)는 제가 겪어본 상대 중 손꼽을 선수에요. 절대 볼을 안 뺏겨서 얼마 전까지 브라질 선수인줄 알았어요."
-대표팀 내 소신발언으로 별명이 '미스터 쓴소리'에요. 소속팀 주전경쟁에서 밀린 박주영(29·아스널)의 대표팀 재발탁에 대한 생각은요.
"제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 뿐이에요. 대표팀 발탁은 제 권한이 아니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워요. (한참 생각하더니) 선수가 아무리 경기에 못 나간다더라도 클래스는 변하지 않아요. 물론 장기간 경기에 못나간다면 경기 감각을 끌어 올리는데 시간이 필요할거에요. 주영이 형이 지금 당장 경기에 못나가고 있지만 능력과 경험은 무시 못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6개월이란 시간이 남은 만큼 그 안에 경기 감각을 끌어 올려 월드컵에서 같이 뛰길 바라고 있어요."
-지난해 6월 기성용(26·선덜랜드)과 대표팀 불화설 기사가 나왔어요.
"지난해 3월 카타르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는 소문이 돌았다던데요, 당시 한 팬이 둘이 사이좋게 지내는 사진을 모아 인터넷에 올린게 있어요. 중요한 시기에 경기 내용과 결과가 나빠 안 좋게 비춰졌던걸까요. 대표팀에 국내파와 해외파가 나눠져 있다는 말도 있는데, 그렇게 본다는 자체가 바보 같아요. 저희는 그렇게 수준 낮은 선수들 아니에요. 소속팀보다 중요한 대표팀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면 프로 선수도 아니에요."
-부상 트라우마는 완전히 지웠나요.
"부상 전과 똑같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어요. 다리에 금속핀이 3개 박혀 있어요. 현재 큰 지장이 없어 제거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껴요. 뼈는 한 번 부러지면 더 단단해진데요. 경기 중 몸이 반응하는건 부상 당하지 않으려는 제스처니깐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이제 더 이상 큰 부상은 없을거에요."
-대표팀 에이스가 챔피언십(2부리그)에서 뛴다고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아요.
"저도 이해해요. 2012년 강등당한 시즌에 팀 자체가 운이 안 따랐어요. 저도 큰 부상을 당했고, 주축 미드필더 무암바와 홀든도 전열에서 이탈했어요. 막상 강등되니 올라가기 쉽지 않네요. 챔피언십을 한국에서 TV로 시청할 수 없지만 프리미어리그 못지않게 좋은 축구를 하는 팀도 있어요. 압박이나 피지컬적인 부분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라 공부가 돼요. 볼턴은 제게 너무도 고마운 팀이에요. 팀과 승격하는게 최상의 시나리오에요.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 마지노선인 6위와 승점 9점차라 가능성은 있어요. 하루 빨리 좋은 리그로 가서 세계적인 톱클래스 선수들과 경쟁해야죠. 좋은 기회가 온다면 이적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어요."
-영화 '어바웃타임'처럼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초등학교 때 동네에서 애들하고 축구했을 때가 진짜 행복했어요. 만약 그 때로 돌아간다면 지금처럼 되려고 엄청 노력을 해야겠죠. 근데 축구선수 직업을 갖고 높은 곳에 있다면 더 노력해야 되는 부분이 많아요. 실은 그 때는 제 마음대로 됐거든요(웃음)."
-2011년 톰 밀러에게 살인태클을 당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부상 후 경기장 밖에서 큰 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제 축구 인생에 있어 충분히 도움될만한 시간이었어요."
-지난해 7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트위터에 '내년에 이청용이 웨딩마치를 울릴 수 있다고 하네요'란 글을 남겼어요.
"결혼 발표는 제가 해야하는데(웃음). 중학교 동창인데 스물살 안팎부터 잘 만나고 있어요. 항상 밝고 제게 큰 힘이 되주는 사람이에요. 시기가 언젠지 모르겠지만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