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단에 모기업과 프런트가 있다면, 고교 야구부에는 총동문회와 학교(재단)가 그 역할을 한다.
정윤진(43) 덕수고 감독은 “야구부 운영이 잘되려면, 선수와 감독, 총동문회, 학교가 제자리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사위(四位)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총동문회의 화끈한 지원
덕수고 총동문회는 야구부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다. 총동문회 산하에 야구 후원회(회장 김병희)가 별도로 조직돼 있을 정도다. 매년 후원금을 정기적으로 내는 동문이 150여 명 정도 된다. 여기에 야사모(야구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단체도 있어 경기가 있을 때마다 대규모 응원전을 펼친다.
총동문회는 야구부 운영위원회의를 거쳐 1년에 2억 원 정도를 야구부에 지원한다. 여기에는 정윤진 감독과 코치 1명의 월급이 포함돼 있다. 또 겨울에 해외 전지훈련 비용의 일부도 총동문회에서 지원한다.
덕수고 총동문회는 2008년 3억 5000만원을 들여 합숙소 리모델링을 마쳤다. 성동구청에서도 2012년 구내 유일한 고교 야구팀을 위해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고 조명시설을 해줬다. 덕수고에는 실내 연습장과 웨이트 트레이닝장도 갖춰져 있다. 프로에 버금가는 시설 덕분에 프로 선수들도 겨우내 몸을 만들기 위해 덕수고를 자주 찾는다. 지난 시즌 LG에 입단해 12승을 거둔 류제국(31)은 LG와 계약하기 전 모교에 나와 준비했다. 박찬호(41·은퇴)와 봉중근(34·LG), 최희섭(35·KIA) 등 전직 메이저리거들도 국내에 있을 때면 덕수고에서 운동을 했다. 또 덕수고에는 야구부 선수들을 위한 별도의 영양 코치와 급식 시설이 갖춰져 있다. 5000칼로리 이상 고칼로리 식단을 섭취해야 하는 선수들을 위해서다. 이 비용은 학부모들이 회비를 걷어 충당한다.
대신 학부모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원칙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정윤진 감독은 일 년에 한 번 신입생 환영회 겸 송년회에서 학부모들에게 인사를 하는 정도다. 정 감독은 “학부모회같은 별도 모임은 없다. 3학년쯤 돼야 학부모 얼굴을 알 수 있을 정도다”고 말했다. 김병희 후원회장은 “(정윤진 감독이) 학부모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생각과 철학대로 야구부를 잘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감독 월급은 학부모의 몫?
덕수고의 경우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지만, 다른 고교 야구부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총동문회가 잘 조직돼 있는 학교는 그런대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감독, 코치 월급에서부터 모든 비용을 학부모의 지갑에 의존해야 한다. 정윤진 감독은 “교육청이나 국가에서 학교 운동부 운영을 위한 별도의 재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운영을 학부모들의 회비에 의존해야 된다”며 “학부모들은 ‘내가 당신의 월급을 책임진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감독의 운영에도 간섭을 하게 된다. 만약 대학이나 프로 진출에 실패할 경우 감독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생기게 되는 것이다”고 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지난해 10월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학교 운동부 운영경비 회계자료’에 따르면 구기 종목 운동부가 있는 전국 1015개 초·중·고교의 운영비에서 학부모가 부담한 비용은 631억원이었고, 학교는 92억원에 그쳤다. 그중 120개 학교는 학교 지원금이 아예 없었다.
정윤진 감독은 “고교 체육 특기자의 경우 수업료를 전액 면제해주고 있다. 만약 모든 체육 특기자가 수업료를 내고 이를 학교 예산으로 편성한다면 감독, 코치 월급은 충분히 나오지 않겠나. 감독, 코치의 고용도 안정되면서 학부모들의 실질 부담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진짜 덕수고 시대가 열린다
“2014년에는 더 강해질 겁니다.”
정윤진 감독의 목소리는 힘찼다. 한주성(19·두산)과 임병욱(19·넥센) 등 팀의 주축이던 3학년들이 곧 졸업하지만, 2학년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정 감독의 믿는 구석은 바로 포수 김재성(18·2학년)과 투수 엄상백(18·2학년)이다.
김재성은 2013년 주전 마스크를 쓰고 덕수고 투수들을 진두지휘했다. 포수의 기본이 되는 강한 어깨와 블로킹 능력을 두루 갖췄다. 우투좌타인 김재성은 작년 타율 0.294를 기록했다. 파워는 아직 부족하지만, 공을 갖다 맞추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정 감독은 내년 4번타자로 김재성을 낙점해놓은 상태다. 한 프로구단 스카우트는 “고교 야구 포수 자원 중에서는 김재성이 가장 주목할 만한 선수”라고 밝혔다.
호리호리한 체격(183cm, 65kg)의 엄상백은 빠른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다. 정 감독은 “지금 시속 142km의 직구를 던진다. 날씨가 풀리면 구속은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에는 팀에서 4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엄상백은 선배들이 나간 덕수고 마운드의 새로운 에이스가 될 전망이다.
정 감독은 “올해 청룡기 3연패에 도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0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9회말 투 아웃까지 이기고 있었다. 내 잘못으로 대통령배 3연패를 눈앞에 두고 놓친 것이 한이 된다. 작년에는 운이 많이 따랐는데, 그 기운을 받아 올해도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