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두목곰’ 김동주의 상황? 이사람에게 물어보면 안다
김동주(37·두산). 일명 '두목곰'으로 불리는 그다. 2013시즌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대공황을 겪었던 두산팬들에겐 만감이 교차하는 플레이어다. 김선우(LG), 임재철(LG), 이종욱(NC), 손시헌(NC), 이혜천(NC) 등 썰물처럼 팀을 빠져나간 노장 선수들 속에서 김.동.주. 만이 유일하게 남았다.
1998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당시 역대 신인 야수 최고 계약금(4억5000만원)을 받고 OB(두산 전신) 유니폼을 입은 김동주에게 2014년은 두산 유니폼을 입은 지 16번째 시즌이 된다. 2013시즌은 김동주에겐 기억하기 싫은 해다. 데뷔 후 최악의 1군 기록을 남겼다. 고작 28경기 출전에 그쳤다. 5월 중순 햄스트링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고, 이후 한국시리즈까지 1군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2군에서 재활을 계속했지만, 김진욱 전 감독과의 불화설, 2군에서 불성실한 태도 등 소문이 돌았다.
2014시즌은 김동주와 두산의 3년 FA 계약 마지막 해다. 몸은 건강하다고 한다. 사령탑은 김진욱 감독에서 송일수 감독으로 교체됐다. 과연 김동주는 두산에서 명예회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영예롭게 은퇴할 수 있을까. 신인 시절 그를 직접 4번 타자로 기용하며 '잠실 홈런왕'으로 키운 김인식 베이스볼긱 콘텐트 프로바이더와 김동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베이스볼긱은 일간스포츠가 만든 최초의 모바일 야구신문이다.
- 신인 때 이야기부터 듣고 싶다. 김동주가 1998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당시 OB에 입단했다. 햇병아리 신인에게 대뜸 4번을 맡겼다. 파격 아닌가. (1990년 백인천 LG 감독은 서울고를 졸업한 신인 조필현을 4번으로 기용했다가 실패했다. 김응용 해태 감독도 1990년 광주상고를 졸업한 홍현우를 4번으로 기용했으나 역시 실패, 홍현우는 3년 뒤 1992년에서야 4번 자리를 잡게 된다.)
"그걸 설명하려면, 동주가 고려대 1학년 때인 1994년 이야기를 먼저 하자. 동주는 배명고까지 투수도 하고 내야수도 하고 양쪽으로 다 뛰었다. 내가 쌍방울 창단 감독을 맡았다가 1993년 잘리고 놀고 있었다. 이듬해 2월 고려대 사이판 전지훈련에 조두복 당시 고려대 감독의 부탁으로 인스트럭터로 갔었다. 조 감독이 신입생이던 김동주를 놓고 투수를 시킬지, 타자를 시킬지 고민하더라."
- 투·타 테스트를 하고서 타자를 시킨 것인가.
"아니다. 당시 고려대 투수로 조성민이 3학년, 손민한이 2학년으로 있었다. 투수진이 좋아 조 감독은 공격을 강화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타자로 쓰라고 권했다. 사실 동주는 양쪽 다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고등학교까지 투수하다가 내야수로 왔다갔다 했다. 동주와는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 인스트럭터로 있으면서 동주의 타격을 보니 기존 3학년, 4학년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파워와 정확성을 갖고 있었다. 당시 심재학, 조경환, 김종국이가 4학년이었다. 뭐랄까 어느 정도 타격 기술적인 면도 갖추고 있었다."
-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OB에서 다시 만나자 4번을 맡긴 것인가.
"1998년은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한 첫 해였다. 트라이아웃에서 타자로 타이론 우즈를 뽑았다. 김동주를 4번으로 놓고, 우즈를 3번으로 마음먹었다. 주위에선 신인을 4번으로 기용한다고 말들이 많았다."
- 그런 말들에 어떻게 대응했나.
"대응이랄게 있나. 내 느낌엔 옳은 판단이라고 느꼈다. 어느 정도 경기를 치르고 나니깐 '감독의 생각이 맞구나' 하는 거 같았다. 나는 처음에 갸우뚱한 거는 우즈가 너무 못한 거였다. 5월까지는 죽쒔으니깐. 요즘 같아서는 퇴출됐을 것이다.(웃음) 우즈의 타율이 낮으니 점수가 안 나는 상황이 계속됐지만, 계속 밀어붙인 것이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우동수 트리오'(우즈-김동주-심정수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딴 중심타선 별명)가 탄생했다."
- 김동주는 처음부터 잘 했나.
"동주는 처음부터 그런대로 쳤다. 개막전 4번으로 나서 홈런 2방도 치지 않았나. 아마 신인 타자가 개막전에서 그렇게 친 것은 처음 아닐까."
(김동주는 98년 4월 11일 광주구장 해태와의 개막전에서 6타수 3안타(2홈런) 5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이후 삼성과의 3연전까지 4경기 연속 안타를 쳤다)
- 신인으로서 김동주의 장점은 뭐라고 봤는가.
"동주의 큰 장점은…, 어릴 때부터, 고대 1학년 때부터 변화구를 쉽게 쳐내는 것이 기가 막혔다. 공을 보는 집중력도 좋고, 투수를 해서 3루수로서 어깨도 좋았다. 이후 나이를 먹어가면서 덩치가 커졌지만 몸집에 비해 유연했다. 많은 것이 갖춰져 있었다."
- 김동주는 1998년 타율 0.266 24홈런 89타점을 기록했다. 첫 해 성적이 기대 이상이었나.
"신인이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홈런을 24개나 때렸다. 타고투저였다고 하지만 요즘에도 안 나오는 기록이다. 홈런은 20개 미만으로 생각했는데 그 이상 쳤다. 타율은 0.270 이상으로 예상했는데 조금 낮은 편이고, 타점 수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타점은 영양가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봐야 하는데, 당시 기억으론 영양가도 많았다. 신인으로서 아주 잘한 기록이다. 데뷔 시즌 기록이 모두가 아니지 않았나. 그 다음해부턴 곧장 전성기였다."
(김동주가 기록한 신인 타자 24홈런은 1998년 이후로는 여전히 최다 기록이다. 김태균(한화)이 2001년 20홈런을 친 바 있다. 하지만 1998년 신인왕은 현대의 고졸 신인 투수 김수경이 차지했다. 12승4패, 승률왕(0.750)까지 안은 김수경은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기도 했다)
신인 4번타자 김동주는 곧바로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우타 거포로 각광받았다. 그는 데뷔 시즌인 1998년부터 2003년까지 6시즌 동안 144홈런(평균 24개)을 기록했다. 24개-22개-31개-18개-26개-23개. 가장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김동주만이 유일하게 잠실구장 100홈런을 넘어서, '잠실 홈런왕' 애칭도 얻었다. 김동주는 통산 273개 홈런 중 잠실에서 131개를 기록했다. 우즈(잠실 90개-통산 174개), 심정수(잠실 76개-통산 328개)가 뒤를 이었다. 무엇보다 두산팬은 2000년 김동주의 잠실구장 장외홈런 사건을 잊지 못할 것이다.
김동주의 전성기와 하락세
- 김동주의 장외 홈런을 더그아웃에서 봤겠다.
"기억나지. 홈런공이 떨어진 장소에 기념판을 붙였다. 경창호 당시 사장, 김동주, 나랑 셋이서 기념 사진을 찍은 기억도 난다. 잠실구장 좌측 꼭대기를 넘어갈 때 '과연 넘어갔나' 했는데, 정말로 넘어가더라. 힘도 좋고. 타격 기술도 좋은 결과다."
(김동주는 2000년 5월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에밀리아노 기론으로부터 좌월 홈런을 뽑아냈는데, 비거리가 150m가 넘는 장외 홈런이었다. 1982년 잠실구장 개장 이래 최초의 장외 홈런이다. 현재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5번 출구 옆에는 김동주가 기록한 잠실구장 첫 장외 홈런을 기리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 김동주의 전성기 파워라고 봐도 될까.
"김동주는 신인 때부터 잘했고, 2년차 징크스도 없이 쭉 잘 했다. 전성기라…. 음, 1999년, 현대와 한국시리즈를 했던 2000년, 삼성과 다퉈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01년까지 3년 동안 무시무시했다. 개인적으론 2000년이 제일 무서웠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동주는 2000년 타율 0.339와 31홈런 106타점으로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30홈런-100타점'은 이때가 유일하다. 그해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 김동주는 타율 0.429 2홈런 9타점으로 4번 해결사 노릇을 했다. 그러나 오른손 중지 부상에도 진통주사를 맞고 계속 출전하다 악화, 한국시리즈에는 출장하지 못했다. 두산은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3승4패로 패했다. 4번 김동주가 있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김동주는 2008년 104타점으로 개인 통산 2번째 100타점을 넘었다. 2009년에는 개인 최고인 타율 0.353을 기록했다.)
-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김동주와 우즈의 쌍포는 정말 대단했다.
"10승 투수 한 명 없이 우승했으니. 준플레이오프부터 타자들이 잘 때려줬고, 투수들도 잘 했다. 타선에선 김동주와 우즈가 홈런포를 펑펑 쳤지. 잊지 못할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김동주는 2001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385(26타수 10안타) 1홈런 8타점 6득점으로 맹활약했다. 우즈의 성적은 타율 0.391, 4홈런 8타점 7득점. 특히 김동주는 4차전(18-11 승리)에서 두산이 3회말 12득점을 몰아칠 때 만루 홈런을 쏘아올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1982년 김유동(OB)에 이은 한국시리즈 사상 두 번째 그랜드슬램이었다.)
-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포로 손색이 없다고 보는가.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대표팀에서는 이승엽이 3번, 김동주가 4번을 치지 않았나. 왼손하면 이승엽, 오른손은 김동주가 대표 타자였다.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이대호가 중심 타선으로 들어왔고."
(김동주는 신인이던 98년 10월 방콕아시안게임 드림팀 1부터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4번타자였다)
- 옆에서 본 김동주는 어땠나.
"다들 알다시피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과묵하지만 살갑게 후배를 잘 챙기는 편이랄까."
- 가정사, 이혼으로 이후에 고생했다.
"2000년도부터 슬슬 그런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 2004시즌이 끝나고 연봉 협상 도중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하는 해프닝도 이혼 위자료 때문이었다.
"내가 2003년까지 두산 감독을 하고 물러났다. 그때는 어떤 사정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대만전에서 1루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어깨 부상을 당했다. 그때 심정은 어땠나.
"큰 부상을 당한 동주가 안 됐고, 두산에도 미안하고 그랬지. 너무 안 됐지. 그 순간 선수가 대표팀에 출전해 사고가 나거나 부상 당했을 때, 한국야구위원회(KBO)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더라. 언제 어느 선수가 다칠 지 모르는 문제 아닌가. 앞으로 대표팀 차출에 이런 문제들, 보험이나 치료, 보상 문제를 확실히 해야한다."
- 부상 상황이 평소 안 하던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그랬다.
"선수가 뛰다가 오죽 했으면 그랬겠나. 힘이 빠지니, 마지막에 급하게 쓰러지는거다."
김동주는 2006년 WBC에서 선수 생활 중 가장 큰 부상을 당했고, 수술 및 재활로 그해 43경기 출장에 그쳤다. 그러나 2007년 곧장 3할 타자로 복귀했고, 2008년엔 104타점으로 개인 통산 2번째 100타점을 넘었다. 2009년에는 개인 최고인 타율 0.353을 기록했다.
2011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김동주는 3년 32억원(두산 역대 FA 최고 금액)에 두산과 재계약을 했다. 계약기간과 금액을 두고 난항을 거듭하다 그 해 FA 자격 취득 선수 중 가장 늦게 계약했다. 2012년부터 김동주의 방망이는 무뎌졌다. 2012시즌 8월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66경기(2홈런)만 뛰고 시즌 아웃 됐다. 2006년을 제외하곤 최소 경기다. 2013년 재기를 노렸으나 5월 18일 대전 한화전을 마지막으로 또 햄스트링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곤 시즌 끝까지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고작 28경기 출장, 타율 0.256 1홈런이 김동주의 2013시즌 성적이다. 두산이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지만, 포스트시즌에서도 김동주의 이름은 볼 수 없었다.
- 김동주가 최근 2년간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나이 탓인가.
"나이가 많아지면서 몸이 불어나면 출장 경기 수 조절을 해줘야 한다. 젊을 때야 많은 경기를 뛰고 해도 피로누적이 쉽게 오지 않는데, 나이 먹으면서 조절을 안 하면 부상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경기를 하다가 플레이를 보면 '몸이 좀 무겁네, 피로가 온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들면 선수를 빼주고 그랬다."
- 과거 감독 시절에 경기 타석 수 조절로 주전의 부상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모든 주전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몸집 작고 빠른 선수들은 괜찮다. 김동주처럼 체중이 100㎏ 넘는 거구들은 적당한 시점에서 교체해주면서 조절해야 한다. 그게 선수 관리다."
(한편 김동주는 최근 당뇨라는 지병이 있는데, 식이요법을 통해 조절 중이다)
- 김동주가 2군에서 정상 컨디션인데도 김진욱 전 감독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기회를 못 잡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난 9월 확대엔트리 시점에서, 김진욱 전 감독은 "지금 상태로는 김동주를 1군에 부를 수 없다. 팀이 필요한 선수는 언제든지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컨디션과 정신력을 지녀야 한다. 포스트시즌 합류도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황병일 두산 수석코치도 "이름값으로 쓸 수는 없다. 1군에 오기 위해서는 누구든 노력과 결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김동주는 스스로에게 반문해야 한다"고 했다.)
"글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독과 선수 사이는 그래서는 안 돼.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에게 야구 기술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하냐면, 잠깐 그럴 것이 아니라 김동주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자. 오랜만에 통화 한번 해 볼까."
김인식 전 감독이 전하는 김동주의 올시즌 각오. 김동주가 스스로 말하는 몸 컨디션은? 일간스포츠 최초의 모바일야구신문 베이스볼긱 앱에서 모든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한용섭 기자 orange@joongang.co.kr
콘텐트 제공=베이스볼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