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방송계 화제작을 꼽으라면 '응답하라 1994'를 빼놓을수 없다. 종영한지 한달이 됐는데도 여운이 남아있을 정도. 정우를 비롯해 손호준·유연석·김성균 등 출연자들이 스타반열에 올라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고 고아라 역시 '재발견'이란 말을 들으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출연자들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건 아니다. 성공적인 기획이란 평가와 함께 제작진 역시 큰 박수를 받았다. 그 중심에는 연출자 신원호(38)PD가 있다. KBS 예능국에서 '남자의 자격' 등을 내놨던 인물. 버라이어티에 목숨걸던 이 '딴따라'가 CJ E&M으로 자리를 옮겨 뜬금없이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내놨으니 그 첫번째 작품이 바로 '응답하라 1997'이었다. 서인국과 정은지를 스타로 만들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2013년 '응답하라'의 두번째 시리즈 '응답하라 1994'를 내놓고 장외 만루홈런을 날렸다. 복고열풍을 일으키며 30·40대 시청자를 매혹시켰다. 90년대를 모르는 1020세대까지 TV앞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지금 신원호PD는 쏟아지는 호평과 박수 속에서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찾는 사람도 많고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신원호 PD와의 취중토크는 마포구 상암동 인근 한식집에서 이뤄졌다. 정오부터 마주앉아 얼큰하게 취할 정도로 낮술을 마셨다. 주종은 '소맥'. 힘든 드라마 촬영기간을 버텨낸뒤 오랜만에 맞이한 휴식이라 신PD의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뜨거운 관심 속에 프로그램을 마쳤어요. 이런 관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해요.
"저도 좀 당황스러워요. 이렇게 관심 받으면서 프로그램 만들어본게 처음이예요. 심지어 8살·5살 된 우리 딸들도 바깥에서 '너의 아버지가 '응사' PD라고 하시던데'라는 말을 듣고 다녀요. 덕분에 촬영기간 내내 집에 못 들어갔는데도 큰 문제가 없었어요. 딸이랑 아내가 '응사'의 열렬한 팬이었거든요. 특히 아내의 반응이 굉장했어요. '쓰레기 앓이'를 했죠. 큰 딸은 '칠봉이 빠'였어요.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해 뿌듯했죠.(웃음)"
-안 그래도 거의 집에 들어가지 못한채 촬영했다고 들었어요.
"촬영 마치고 근처 찜질방에서 씻고 잠시 쉬고 또 촬영하러 나왔어요. 후반에는 찜질방도 못 갔어요. '오늘 촬영분량 끝냈습니다'라고 말한후 '새 촬영분량 시작합시다'라고 하는 식이었거든요. 피곤해서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드라마를 찍은 이유는 뭘까요.
"다큐멘터리 PD가 1~2년간 열심히 촬영을 마치고 한 두시간 방송본 만들어내보내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예능PD들은 매주 프로그램 만들고 끝나자마자 또 회의를 해요. 드라마 PD들도 한 편을 멋지게 마친후 한동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기도 해요. 게다가 예능PD들이 바깥에서 '딴따라'라는 말도 많이 듣잖아요. 자꾸 그러다보면 안 가져도 될 열등감과 패배의식이 생기기도 해요. 그런걸 극복해보고 싶었던거죠. '있어보이는 척'을 하고 싶었다는게 아니라 예능PD의 활동영역을 확장시켜보고 싶었던 거예요. 후배들이 봤을때도 '맨날 편집실에 박혀 담배나 피며 힘들어하던 놈이 요즘 인기 드라마도 만드는구나'싶은 생각이 들거 아녜요.(웃음) 그렇다고 예능PD가 싫다는건 아닙니다. 제 직업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했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렇다면 최종목표가 영화인가요.
"과거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이젠 제 직업에 익숙해졌어요. 이 직업이 얼마나 좋은지도 알게 됐고요. 사실 우리나라에 '직업 영화감독'이라 할만한 사람이 많지는 않잖아요. 제가 과연 그 대열에 들어갈수 있을까요. 그건 자신없어요. 영화계에서도 제가 불쑥 나타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듯 해요. 또 아이들까지 있는데 투신하면서까지 앞뒤 생각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순 없죠. TV라는 매체 역시 이젠 단순한 킬링타임용의 의미로만 소비되진 않는것 같아요. 뭔가 할수 있는것도 많아졌고요."
-영화계에서 연출 제의를 받아본 적은 없나요.
"있어요. 이미 시나리오가 완성된 상태였죠. '내가 영화 연출을 하게 된다면 내 시나리오를 들고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터라 그 제안을 고사했어요.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뛰어들순 없는 거잖아요. 나중에 여건이 갖춰졌을때 꼭 한 편 정도 만들어보고 싶은 바람은 지금도 있어요."
-앞서 함께 KBS 예능국에 있다 지금 JTBC에서 근무하는 김석윤 PD님이 '올드미스다이어리' '조선명탐정' 등 영화를 만들어 호평받은 선례가 있잖아요.
"석윤 선배가 대종상 신인감독상 후보에 오르는걸 보고 '저게 가능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거예요. '예능 만드는 딴따라가 저 자리에도 갈수 있구나'라고. 굉장한 일이었죠. 그 선배가 더 대단한건 그 뒤로 쟁쟁한 영화사로부터 연출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있었는데도 '버라이어티 만들어야된다'고 또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는 거예요. 참 멋있는 선배예요. 저 역시 그러고 싶어요. 여러가지 일을 하더라도 내 이름 앞에는 꼭 '예능PD'라는 말이 붙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