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야구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 다음으로 중요한 포지션으로 유격수를 꼽았다. 전체 타자의 75%가 우타자이고, 어느 야수보다도 많은 타구가 몰리기 때문이다. 유격수는 수비수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기 때문에 타격에서는 어느 정도 ‘용서’를 받기도 한다. ‘수비 잘 하는 유격수는 타격은 평범해도 좋다’라는 관대한 인식까지 있다. 바꾸어 말해, 수비도 잘 하는데 타격도 좋은 유격수는 팀의 보물이 된다.
유격수 [short stop, 遊擊手]
강정호는 2013시즌 2할9푼1리의 타율을 기록하고 홈런은 22개를 쳐냈다.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타율과 홈런 OPS(출루율+장타율) 세 개 부분에서 모두 박병호에 이은 팀 내 2위다. 예년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기록이지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 여파와 팀 내 사정으로 인한 무리한 출장을 감안하면 훌륭한 성적이다.
수비를 살펴보면, 2013년 프로야구 정규시즌 넥센은 1146⅓이닝을 수비하고, 잡아 낸 아웃카운트 3439개다. 강정호는 이중 1072이닝을 소화하면서 자살 249개, 보살 355개를 기록했다. 팀 투수들이 기록한 삼진 860개를 제외하면, 강정호는 상대 배트에 맞은 공 중 4분의 1 정도의 아웃 카운트에 관여한 셈이다. 상대 공격의 맥을 끊고, 팀 사기를 끌어올리는 호수비까지 포함하면 넥센 수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수비에 능하지만 공격은 ‘그럭저럭’인 다른 유격수를 ‘반쪽자리 선수’로 느끼게끔 하는 유격수, 강정호. 그에게 있어서 ‘수비’란 무엇인지 들어보고자 한다.
- 공을 빼는 속도가 무척 빠르고, 글러브 핸들링이 매우 좋다. 포수에서 내야수로 전향했는데도 두 가지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었던 계기가 무엇인가?
"다른 방법은 없다. 무조건 연습하는 것 뿐이다. 내가 공을 빨리 뺀다는 말을 듣는 건 아는데, 오히려 너무 공을 빨리 빼는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 공을 빨리 빼는 것이 단점이라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래도 공을 빨리 뺀다는 건 공을 제대로 잡는 것에는 방해가 된다. 공을 제대로 쥐지 못했을 때 송구 실책이 나온다."
- 오버핸드 송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송구를 오버핸드로 던질 때, 언더핸드 송구보다 더 정확한가? (편안한가?)
"3-유간 깊은 곳으로 오면 강하게 오버스로로 던져줘야 한다. 다만 베이스쪽으로 붙으면 언더로 던지는 것이 편안하다."
- 런닝스로에 매우 강한데, 노하우와 자신만의 트레이닝 방법은?
"내 생각에 런닝스로는 자신감이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으면 송구가 이상한 곳으로 날아간다. 그저 자신을 믿고 던지는 게 가장 큰 노하우다."
수비 콤비, 상대 타자
- 프로에 들어와서 키스톤 콤비를 맞춰본 선수들 중 가장 편한(믿음직스런) 선수가 누구인가? 이장석 구단주가 '서건창이 2루수로 들어서면 강정호의 수비도 좋아진다'라고 말한 적이 있던데?
"건창이와 콤비를 맞추면 마음이 아주 편안하다. 고등학교때부터 맞춰와서 그런지,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플레이를 할지 잘 알고 있다."
- '1루에 최희섭같은 거구가 있으면 내야 수비들이 편안함을 느낀다'라고들 한다. 내야 수비에서 1루수가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
"1루수가 덩치가 크면, 아무래도 타구를 잡은 뒤에 ‘아무데나 던져도’ 잡아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면적이 넓으니까 잘 보이기도 한다."
- 다가오는 타구의 형태에 따라 자신 있는 부분과 자신 없는 부분이 있는가?
"그런 것 보다는 타자 성향에 따라 다르다. 타자에 따라 타구가 날아오는것도 다르다. 타자마다 특징과 개석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발이 빠른 타자는 수비수 입장에서 마음이 급하고, 느린 타자는 편안하게 잡을 수 있다."
- 타석에 들어선 타자 중에 유난히 내야안타가 신경 쓰이는 선수는?
"정수빈이다. 유난히 빠른 느낌이다. 잠시만 방심하면 안타가 된다. (이)대형이형도 말할 것도 없다. 아주 빠르다."
- 반대로 가장 편안한 선수는 누구인가?
"각 팀 포수들은 모두 편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진갑용 선배는 정말 편하다. 여유있게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 2013년 7월 10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7회초 2사 만루에서 손아섭의 땅볼 타구를 놓쳐서 2점을 준 실책, 기억이 나는가?
"기억난다. 어떻게 기억이 나지 않겠는가."
- 그날의 실책은 특이했다. 타구가 평범했고, 불편한 자세도 아니었는데 실책이 나온 원인이 무엇인가?
"손아섭은 타격도 좋은 선수지만 1루로 가는 발이 매우 빠른 타자 중 하나다. 타구가 평범하게 보였을 수 있는데, 단지 바운드가 좀 높았다. ‘빨리 잡아서 죽여야겠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급했던것 같다."
- 그 실책을 포함하여, 2013년 WBC 네덜란드전 실책,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2차전 연장 10회 송구실책등 2013년 자기 수비 중 최악의 플레이가 있다면?
"NC전 실책이 최악이었다. 아무래도 신생팀이니, NC에 대해서 안일하게 생각하는게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NC는 절대 만만한 팀이 아니다. 다른 때보다 방심했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때가 많았다."
강정호는 2013년, NC와의 경기에서 공격과 수비면에서 모두 본인의 평균 성적보다 밑도는 기록을 보였다. NC와의 경기에서 시즌 전체 실책의 40%를 범했으며, 공격에서도 타율과 OPS가 현저히 낮았다.
실책에 대하여
- 강정호는 잡기 힘든 타구를 무리하게 잡으려다 실책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잡아서 죽인다'라는 욕심이 있긴하다. 어떤 타구든지 잡아내고 싶어서 달려든다. 반성해야 한다. 의욕이 앞서고, 자연스럽게 플레이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렇지만 유격수라면 용감하게 달려드는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경기중 그라운드 재정비 작업이(넉가래질, 돌 고르기) 유격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사실 내야수에겐, 특히 유격수에겐 단지 중요하다기보다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구장 상태에 아주 많이 신경이 쓰인다. 조그만 돌멩이 하나에도 실책이 나오니까. 불규칙 바운드로 튀어오르면 정말 수비하기 힘들다."
- 유격수로서 그라운드 상태가 가장 만족스러운 구장과 가장 불안한 구장을 꼽아달라.
"사직은 타구가 튀어오다가 공이 잘 파여서 공이 느려지고 예상하기 힘든 점이 있다. 잠실은 타구가 빨라서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목동은 인조잔디라서 (타구가 빨라) 조금 불편하긴 한데, 괜찮은 편이다."
- 시즌 막판에 실책이 12개로 2012년과 같았는데, 마지막 5경기에서 3개의 실책을 범했다. 원인이 무엇이었나?
"너무 수비에 과집중하고, 잘하려고 했던게 문제였던것 같다. 편하게 해야 되는데. 쫒기는 것 같은 심정이 있었고, 아무래도 시즌 막판이다보니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3개의 실책 모두 너무 아쉽다."
강정호는 2013 시즌 수비이닝에서 2위 오지환(LG)보다 70이닝 가량 많이 뛰었다. 9개 구단 유격수중 세 번째로 많은 실책을 범했으나, 더 많은 실책을 기록한 오지환이나 삼성 김상수보다 훨씬 많은 이닝을 수비했다. 강정호의 체력 안배를 위해 2군에서 올라 온 신현철이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는 바람에 강정호는 백업 유격수를 잃었다. 이어 김지수가 1군으로 올라왔지만 서건창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2루수를 먼저 채워야했다. 6월 중순 이후 강정호는 한 경기도 쉬지 못했다.
- 수비실책이 나오면, 본인에게 거는 마인드콘트롤이나, 주문 같은것이 있나?
"‘잊어먹자’라고 계속 생각한다. 실책을 해도 그것에 너무 빠지면 다음 플레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시즌이 기니까, 마음 편하게 먹자고 생각한다."
롤모델은 이종범
- 현역 중에 ‘아 저 유격수의 이런 점은 참 배우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무엇보다 손시헌 선배의 안정감은 최고다. 어깨도 강해서 못 잡을 것 같은 주자도 잘 잡아낸다. 박진만 선배는 특유의 여유 있는 수비가 최고다. 왠지 쉽게 쉽게 잡아내는 것 같다. 김상수는 발이 빨라서 수비 범위가 넓은 점이 가장 부럽다. 순발력도 아주 좋아서 타구를 잘 따라간다."
- 김재박, 류중일, 이종범, 유지현, 박진만 등 역대 유격수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이종범 선배다. 롤모델로 생각하고 있다. 타자로서도 공격적이지만, 수비도 아주 공격적이다. 화려하고, 멋지다. 우리 염경엽 감독님도 훌륭한 유격수지만, 너무 마르셔서, (하하) 좀 불안해 보였다."
(이종범은 위의 6명중 가장 높은 통산 타율을 기록했고, 강정호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타수 대비 통산 홈런은 강정호가 99개로 1위, 이종범이 194개로 2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