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심판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경마 심판도 마찬가지다. 경마 심판위원은 경주가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종 반칙을 짚어내 선수에게 제재를 가하고 경주 중 이상을 보이는 경주마에 대해서 출전취소 처분을 내리는 등 전반적인 경마진행을 총괄하는 사령탑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이로인해 관객과 선수, 마주 모두에게 욕을먹는다.
대쪽 같은 판정으로 ‘경마 포청천’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광호(55) KRA한국마사회 심판위원장이 5일 은퇴했다. 1987년부터 27년 동안 경마 심판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광호 전 심판위원장을 일간스포츠가 만났다.
-은퇴 소감은.
“시원섭섭하다. 심판 결정에 따라 이해관계가 명확하게 갈리는 경마에서 심판들이 갖는 심리적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부담감을 내려놓으니 후련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명감으로 심판실을 지켜 온 만큼 섭섭한 마음도 크다.”
-경마 심판의 애환이라면.
“선수나 감독들은 늘 제재가 많다고 하고, 경마 팬들은 항상 제재가 적다고 한다. 악천후 시 안전을 위협받는 기수들은 경주 취소를 원하고, 상금을 받는 마주나 감독·고객들은 경주를 강행하길 원한다. 모두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만큼 경마 심판은 절대적으로 고독하고 외로운 직업이다.”
-심판생활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1990년 도착순위 변경 제도(경주 도중 반칙행동이 벌어졌을 경우 도착순위를 바꿀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된 후 1991년 제주경마장에서 1·2위로 들어온 경주마 두 마리를 주행방해로 판단해 도착순위를 변경하자 항의가 거셌다. 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직접 관람대로 내려가 설명을 했다. 그러자 고객들이 나를 둘러싸고 더욱 격렬히 항의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내 멱살을 잡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한참을 설명하고 심판실로 돌아와 보니 와이셔츠 단추가 다 떨어져 있더라.”
-한국경마가 노력해야 할 점이 있다면.
“경마의 질을 높여야 한다. 강한 말이 많이 있어야 한다. 경마는 결국 말이다. 강한 말이 많아져야 경주가 재미있어진다. 기수는 기승술로 말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역할이다. 경주마 간의 능력차가 크기 때문에 부담중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결국 좋은 말이 높은 부담중량으로 망가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