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왼손투수 유희관(28)은 누구보다 행복한 2013년을 보냈다. 5월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승승장구하더니 10승7패 평균자책점 3.53을 기록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두자릿 수 승수를 거뒀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팀의 좌완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넥센과 치른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7이닝 동안 1피안타 9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의 기틀을 마련했다. 시즌을 마친 뒤 그의 연봉은 수직상승했다. 26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라 무려 285%의 인상률을 기록했다. 2013년은 그에게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가진 해'였다.
정순주 아나운서는 유희관을 만나 지난 시즌 활약의 뒷얘기와 야구 인생, 앞으로 목표까지 깊은 대화를 나눴다. 베이스볼긱은 일간스포츠가 만든 모바일 야구신문이다.
야구 인생 시작 그리고 편견 깨기. "느린 공은 통하지 않을 거라는 말에 오기가 생겼죠."
정순주(이하 정) : 형제 관계는 어떻게 돼요?
유희관(이하 유) : 저 외아들이에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정순주 아나운서와 유병민 기자는 동시에 ‘진짜?’를 외쳤다) 무려 2대 독자인 걸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들 믿지 않아요. 다들 누나나 동생이 있을 거라 예상하시는데, 외아들이에요. 사람들이 저를 만나고 추측을 하는데 다 틀려요. 활발한 성격이라 혈액형도 O형으로 짐작하시는데 저는 A형이거든요.
외아들이다 보니까 부모님이 오냐오냐 키웠으면 제가 버릇없고 혼자만 생각하기 십상인데, 저희 부모님은 그렇지 않으셨어요. 초등학교 시절 유니폼도 제 스스로 빨고, 부모님 계시지 않으면 밥도 혼자 차려먹고 그랬어요. (정 :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나요?) 아뇨. 굳이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저녁에 모임을 나가시면 혼자 있잖아요. 그럴 때 저는 알아서 밥 차려 먹고 그랬죠.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면서 단체생활, 합숙을 하니까 습관이 몸에 벤 것 같아요.
정 : 외아들을 운동 시키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보는데요. 어떻게 야구를 하게 된 거에요?
유 : 처음에는 반대를 하셨죠. 야구는 초등학교 5학년 끝날 때 시작했어요. 어떻게 보면 조금 늦게 시작했는데.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어요. 동네서 항상 하고. 그런데 어느 날 야구부 모집 종이를 받았어요. 그래서 시켜달라고 졸랐죠. 부모님은 걱정하실 수 밖에 없는게 집안에 야구는 물론 운동을 한 분이 없었거든요. 괜히 잘못될 수 있을까봐 걱정하신 거 같아요. ‘그냥 공부 열심히 해서 평범히 살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울고 불고 ‘공부도 하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해서 승낙을 받아냈죠. 자식이 하고 싶다는 데 어떻게 시키지 않겠어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로 약속을 하고 야구를 시작했죠. 그런데 운동을 하면 공부가 되겠어요?(웃음) 힘들고 공부할 시간도 없고.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야구 인생을 살게 됐죠.
정 : 처음에는 반대 아닌 반대를 하신 거네요. 이후에는 부모님이 잘 지원해주셨나요?
유 : 네 이왕 시작한 거 잘하길 바라셨죠. 지원을 잘 해주셨어요. 시합이 있으면 지방에도 오시고,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죠. 더 잘해서 효도 해야죠.
정 : 이번 겨울 벌써 효도 했잖아요. 연봉이 많이 올랐죠. 부모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유 : 처음에는 200% 정도 기대했어요(유희관의 지난 시즌 연봉은 2600만원. 200% 인상은 7800만원). 그 이상은 힘들 걸로 봤어요. 많이 받아야 8000만원 정도? 그런데 주위에서 1억원이라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하지만 얘기 안하고 다녔어요. 괜히 기대했다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실망감도 클 것 같고. 최대한 설레발을 자제했죠. 처음에 사무실을 들어갔는데 9000만원을 부르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제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9000만원과 1억원은 1000만원 차이지만, 상징하는 게 크잖아요. 그래서 1억1000만원을 달라고 얘기했죠.
정 : 중간에서 합의점을 찾았네요.
유 : 그런 셈이죠. 두 번째 들어가니까 1억원을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생각을 관철시키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구단에서 엄청 신경 써 준거잖아요. 더 이상 질질 끌고 싶지 않고, 빨리 계약해서 홀가분하게 올해를 준비하고 싶었죠. 그래서 그냥 1억원에 도장을 찍었죠.
정 : 사무실 문 닫고 나왔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날아갈 것 같았나요?
유 : 제가 억대 연봉자가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런 얘기는 신문에서 보던 다른 선수 얘기인 것 같았어요. ‘참 인생 다시 살고 볼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병민(이하 민) : 군 제대 후 1년 만에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네요. 그때 뭐든 할 수 있다고 의욕을 불태웠었죠?
유 : 네. 저도 의욕을 불 태웠지만, 제가 첫 해 만에 이렇게 잘할 거라 예상 못했어요. (민 : 나도 반신반의 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1군에서 잘할 때도 ‘몇 게임 잘하면 들통 날 거다’ 이런 소리가 많았어요. 전반기 잘 마치고 후반기에 부진했는데, 언론에서 ‘힘이 떨어졌다’ ‘읽혔다’ ‘분석이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죠. 그렇게 포스트시즌을 갔는데, 다시 거기서 엄청 좋았으니까 좋은 얘기만 나오고. 사실 제가 후반기 때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어요. 나타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근데 그 모든 게 결과론인 거 같아요. 포스트시즌에 잘했으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지. 포스트시즌에 못했으면, ‘후반기 때 부진했는데 왜 내보냈나’ 이런 얘기 나올 거고. 어떻게 보면 선수 입장에서 아쉬워요. 과정은 보지 않고, 결과만 생각하니까. 그래도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정 : 본인 기사가 엄청 나왔잖아요. 댓글도 많이 봤겠어요.
유 : 네. 댓글을 보면 정말 재밌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정말 상상력이 기발한 것 같아요. 별명 같은 거 지어내고 하면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정 : 본인 별명도 많이 생겼잖아요. 어떤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유 : 원래 유희왕은 있었는데, 뒤에 ‘왕’자가 있어서 최고라는 의미인 것 같아서 좋아했어요. 신조어로 느림의 미학이 처음 나왔다는데, 괜찮았고. 아! ‘모닥 불러’라는 단어는 정말 신선했어요. 파이어 볼러가 아닌데 그걸 모닥 불러라고 생각을 하디니 정말 기발해요. 요즘에는 몸매 때문에 빙그레 우유라는 별명도 생겼어요.
정 : 다시 학창시절 얘기를 해보죠. 처음부터 투수를 했어요?
유 : 처음에는 중견수를 봤어요. 근데 왼손이 드물다 보니 투수와 외야수를 겸업했죠. 제가 공은 왼손으로 던지지만, 글씨는 오른손으로 써요. (정 : 머리가 좋겠어요) 좋죠(웃음) 계속 투수와 외야수를 같이 보다가 고등학교로 가서 투수로 완전히 전향했어요.
정 : 투수 전향은 본인의 의지였나요. 아니면 주위의 권유로?
유 : 감독님의 권유도 있었고, 제가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왼손 투수가 희귀성이 있잖아요. 이점이 많죠. 사실 제가 왼손 투수가 아니라면 지금도 야구를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왼손 투수라는 혜택을 누구보다 잘 본 케이스 인 것 같아요.
정 : 학교도 두 차례나 옮겼더라고요. 초등학교 때는 야구를 시작하려고 전학갔는데, 고등학교 때는 왜 옮긴 거에요?
유 : 남성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아까 얘기한 그 전단지를 받고 방배초등학교로 전학했죠. 이수중을 거쳐 배재고에 진학했는데, 1학년을 마치고 장충으로 옮겼어요. 중학교 감독님께서 장충 감독님이 되셔서 현택이 형이랑 같이 장충으로 갔죠. 당시 배재고 신입생 대부분이 장충으로 전학했어요. 학교 안에서 일어난 문제라 제가 자세한 사정은 몰라요.
정 : 장충고에서 그렇게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는데, 팀 내에서 위치가 어땠나요?
유 : 그냥 고만고만하게 했어요. 저 뿐만 아니라 동기들이 모두 고만고만했어요. 이용찬이 2년 후배인데, 그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전력이 괜찮아졌죠. 용찬이는 1학년 때부터 등판했을 정도니까요. 제가 1~2학년 때는 장충고가 그렇게 잘 하지 못했어요.
정 : 그렇게 장충고를 졸업하고 프로 지명을 기다렸는데, 결국 받지 못했죠. 당시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요.
유 :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명 날짜가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조금은 기대하는 부분이 생기잖아요. ‘내가 되지 않을까?’ 이런 거. 그런데 고졸로 프로에 가려면 즉시전력감이 돼야 하니까 선택받지 못했어요. 제가 경기 운영은 좋다는 평가를 예전부터 받았지만, 공이 빠르지 않으니까. 거기서 편견이 있던 것 같아요. 프로에 가도 통하지 않을 거다. 실제로 그런 얘기도 들었죠.
정 : 지금은 그 편견을 깬 거네요. 당시 오기가 생겼나요?
유 : 오기도 오기지만, 좌절을 많이 했죠. ‘남들 다 공이 빠른데 왜 나는 느릴까.’ 고민 아닌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야구를 하면서 항상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공이 느린 것에 대한 고민과 공이 느려서 통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 그러다 여기까지 왔죠.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제가 올해 활약을 하면서 그 편견을 조금이나마 깼다는 것에 뿌듯함은 느꼈어요.
유희관의 유쾌한 입담, 그의 진솔한 모습 등 나머지 인터뷰 내용은 일간스포츠가 만든 모바일야구신문 베이스볼긱 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폰 다운로드] [아이폰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