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대기)줄이 짧으면 긴 줄에 서 있던 사람은 옮겨간다. 당연한 이치다. 프로야구에 우투좌타가 늘고 있다. 말 그대로 오른손으로 던지는 좌타자들이다.
지난해 프로야구 등록 선수 553명 중 71명(12.8%)이 우투좌타였다. 1군 경기에 출장 기록이 있고, 타석에 1회 이상 들어선 선수(투수 포함 251명 · 이하 모든 기록 같은 기준) 중에 우투좌타는 46명으로 18.3%에 이르며 좌타자(82명) 중에서는 54.8%로, ‘순수 왼손잡이’의 숫자를 넘어섰다. 1989년에 우투좌타로 기록된 선수가 단 한명 (김상우·당시 롯데) 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증가다.
전문가들은 1997년 프로 출신 지도자들의 아마 야구 진출이 허용되면서 이런 움직임이 더욱 늘었다고 보고 있다. 많은 경기를 뛰면서 좌타자의 장점을 체감한 지도자들이 학생 선수들에게 좌타 전향을 권유했다는 분석이다.
야구에서 좌타자가 장점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오른손투수가 70%에 달하는 리그에서 좌타자로서의 이득을 갖는 점이다. 왼쪽 타석에 서면 오른손 투수들의 공이 시각적으로 잘 보이기 때문에 강할 수밖에 없다. 1루와의 거리가 두걸음 정도 가까워 내야안타 생산에 다소 유리한 점과 스윙 후 자연스럽게 몸이 1루로 향하게 되어 스타트가 빠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왼손잡이(좌투)는 1루수를 제외한 내야수와 포수는 될 수 없어, 수비 포지션으로 따지면 등용문이 비교적 좁다. 2013시즌 좌투좌타 내야수 7명은 전원 1루수였다. 결과적으로 우투좌타는 타격과 수비, 양쪽의 이점을 모두 취할 수 있는 희소가치에 양다리를 걸친 셈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리그엔 우투우타가 많다. (62.4%)
시계반대방향의 메커니즘을 가진 야구에서 좌타자라는 ‘유리함’을 선택한 오른손잡이들. 그런데 이러한 우투좌타의 증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혹자는 우투좌타의 증가를 ‘불편한 진실’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그림자’라는 표현도 쓴다. 이유가 뭘까.
▶ 우투좌타 권유가 ‘성적 지상주의’?
아마야구 지도자들은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장기적 육성보다는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 (기록, 개인성적, 학교성적) 를 위해 우투좌타라는 ’똑딱이‘(컨택위주의 간결한 스윙을 하는 타자)를 무수히 양산하며 우타 거포의 씨를 말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해 열린 제 47회 대통령배고교야구대회에서 공주고를 우승으로 이끈 오중석(41) 감독은 이에 대해 “기록과 성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야구계 시스템에서, 기록과 성적을 중요시한 당연한 선택이 ‘성적지상주의’라고 비난받는 게 도무지 이해 되지 않는다” 라고 반박했다. ““이 선수는 (기량이)올라오고 있는 선수이니 잘 봐주십시요”라고 하면 누가 우리 아이들을 뽑아주겠는가? 안타를 치고 타율을 높여 ‘이미 올라온 모습’을 숫자로 명백히 보여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라도 명백한 기록 없이는 프로에 진출하기 어렵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토익 성적이 필요한 취업준비생과 같은 경우다. (2013년 기준) 고교야구에서 전·후반기 주말리그와 황금사자기, 청룡기, 대통령배와 전국체전 봉황대기, 대한야구협회장기를 통합하여 1년에 100타수 이상을 기록하는 선수는 7명에 불과했다. 1년 평균 6~70번에 불과한 기회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나무배트 사용으로 홈런 양산이 가뜩이나 힘들어진 상황에서 ‘큰 스윙’을 하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출루와 안타 생산이 유리한 우투좌타를 선택·권유하게 되는 이유다.
▶ 우투좌타는 과연 똑딱이들인가?
통산 249홈런을 기록하고, 한국 프로야구 최초(94년)의 좌타자 홈런왕 김기태(45·현 LG 감독)는 오른손잡이지만 초등학교 시절 좌타자로 전향했다. 2011년 홈런왕(30개)에 오르고 2013시즌에도 29개의 홈런으로 2위를 기록한 최형우 (31·삼성)와 ‘장사’라고 불리는 이성열(30·넥센)도 우투좌타다. 2013년 우투좌타 타자들은 장타율에서 다른 유형의 타자들에 앞섰다.(표 참조) 홈런은 143개로, 타수 당 홈런 생산 비율이 0.021이다. 이는 좌투좌타의 0.016보다 높으며 우투우타의 0.022와 비슷한 기록이다. 컨택 위주의 가벼운 스윙으로 단타를 만들어내는 ‘똑딱이 타자들’ 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 홈런타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프로 지도자들의 몫
오중석 감독은 ‘본격적인' 거포 육성이 (아마 지도자가 아닌)프로 지도자의 몫이라고 본다. 아마에서 컨택능력과 기본기를 다지고, 프로에서 얼마든지 홈런타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근력 등 신체적 성장이 완전하지 않은 아마 선수들에게 홈런 생산을 위한 본격적인 훈련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며 ‘아마야구의 거포 실종’은 필연적이라고 믿는다. 오감독은 “대학시절 2년 선배였던 유지현 선수(43·현 LG코치)가 기억난다. 방망이에 재능이 있었으나, 홈런은 1년에 1개 칠까말까 한 선수였다. 그런데 프로에 들어가 육성을 받으니 첫해에 15개를 치더라”고 말하며 “예전에는 아마야구 선수들이 대학을 거쳐 프로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그 점을 감안하여) 초중고시절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에 입단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프로구단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고교직후부터 완성형 타자를 원하는것이다.”고 전했다.
▶ 우투좌타 전향은 우투좌타, 우투우타 모두에게 ‘기회’. ‘손해’아니야
프로에 우타자 거포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우투좌타로의 전향 증가 때문이라고 볼 수 는 없다. 오중석 감독은 “현장 경험상으로 가장 중요한것은 우투좌타로 전향한 타자들이 우타를 친다고 해서 장타를 친다는 보장이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타자로서 장타자의 싹이 보이는데 왜 우투좌타를 시키겠는가. 그런 지도자는 없다” 라고 말했다. 이어 “오른손 거포는 줄었지만, 왼손 교타자를 얻었다”라고 표현한다. ‘오른손 거포’만이 육성의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다. 우타자의 좌타자로의 전향 역시 ‘육성’의 한 방법이며, 그로 인해 우타자에 남아있는 선수들에게도 더 넓어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덧붙혔다.
▶ '똑딱이' 이치로, '고질라' 마쓰이
스즈키 이치로(41·뉴욕 양키스)는 대표적인 ‘똑딱이’ 타자로 불린다. 메이저리그 (MLB) 데뷔 후 10년 연속 200안타 기록에 일·미 통산 4020개 (통산타율 0.329)의 안타를 기록한 그는 우투좌타이다.
일·미 통산 507홈런에 2009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기록한 홈런으로 시리즈 MVP에 오른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40·은퇴) 역시 우투좌타이다. 우투좌타는 전설적인 교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되며, 전설적인 홈런타자도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오른손잡이의 좌타자 전향, 우투좌타는 '불편한 진실'이 아닌 야구라는 생태계가 낳은 '진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