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긱이 야구 마니아 여러분의 질문을 받습니다. 우리는 까다롭습니다. 평소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자주해 긱(GEEK, 괴짜)이라 손가락질 받던 여러분! 세상 누구도 묻지 않았던, 살아있는 질문만 받습니다. 엄격한 질문 선별 과정을 거쳐 긱(GEEK)의 시각에서 진지하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베이스볼긱은 일간스포츠가 만든 최초의 모바일 야구신문입니다.
Q. 야구팬이자 야구게임 유저입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시점을 설정할 수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타자 시점이 훨씬 박진감 넘치고 실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국내 야구중계에서는 타자 시점에서 중계를 시도하는 방송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파격적으로 시도해 볼만 하지 않을까요? (PC방 이대호)
A. 저도 야구게임 참 좋아하는데요. 90년 대 초반 야구게임의 원조 하드볼 시리즈부터 최근까지 사랑받는 PC와 콘솔용 야구게임을 두루 섭렵했죠. 그런데 이 질문을 보니 새삼 당연하다고 여겼던 야구게임의 시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군요. 야구게임에서 타자를 조정할 때 포수가 투수 쪽을 바라보는 포수 시점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투수의 공이 현실감 있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난이도가 높은 경우 공의 빠르기가 너무 빨라서 단지 키보드나 조이스틱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될 뿐인데 그 손가락 ‘까딱’ 조차 쉽지 않습니다. 갑자기 커브라도 들어오면 한참 빨리 누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타이밍 싸움에서 진 타자의 멍한 표정처럼 유저도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됩니다. 커브뿐 아니라 슬라이더나 투심 패스트볼의 경우 공이 휘는 것도 포수시점 화면에선 생생하게 확인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공을 쳤을 때의 재미도 배가됩니다. 실제로 포수 시점의 화면이 아니라면 홈런과 같은 잘 맞은 타구에서 느껴지는 손끝에 짜릿함을 구현하기가 힘들죠. 실제로 키보드나 조이스틱이 촉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까요. 화면에서 전달되는 느낌이 이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특히 스포츠 게임에서의 현실감 전달은 가장 효과적인 앵글이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되기 때문에 가능하죠.
게임에서도 느껴지는 박진감을 왜 실제 야구중계에서는 느낄 수가 없을까요? 우선은 가장 일반적인 중계 화면인 ‘배터리샷’의 한계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투수의 피칭과 타자의 타격 포수의 포구, 그리고 심판의 콜까지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앵글이 바로 배터리샷입니다. 이미 많은 야구팬이 가장 익숙한 화면입니다. 그런데 이 배터리샷의 경우 공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을 담기 위해서 카메라 앵글을 다소 비스듬히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각도를 정면이라고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히 왼손투수의 변화구는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류현진 선수의 슬라이더의 경우 그저 멀리 벗어나는 것처럼 보일 뿐이죠. 오른손 투수의 공도 낙차가 큰 공을 제외하면 역시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변화구뿐 아니라 직구의 볼 끝도 포수 시점에서 보는 것에 비해 밋밋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공의 빠르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구장을 처음 찾은 김영민(26)씨는 야구장에서 TV 시청 때에 비해 투수들의 공이 훨씬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전광판 밑에 자리하고 있는 카메라가 70m 뒤에서 화면을 당겨서 중계하는 것이 배터리샷입니다. 화면으로 구속의 차이는 확인 할 수 있어도 실제 야구장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카메라 설치의 어려움
야구중계에서 포수 시점의 화면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더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한 방송국 중계진들의 노력은 다양한 시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포수시점의 중계화면이 메인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고 있을 뿐이지요. 실제로 포수 시점의 중계에는 어떻게 쓰이고 있고, 촬영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MBC 스포츠플러스의 이정천 PD와 중계 촬영 전문가인 김덕호 촬영감독을 찾았습니다.
우선 중계를 위해 포수 뒤쪽에 카메라를 설치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투수와 포수의 일직선상에 카메라를 설치한다면 심판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부감샷으로 찍어야 합니다. 카메라 설치를 위해서는 높이 올릴 장치가 필요하게 되죠. 그러나 이 경우 아무리 백스탑(홈플레이트 뒤쪽 스크린) 근처에서 촬영을 해도 파울타구가 나오거나, 공이 뒤로 빠질 경우 경기진행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중계를 위해 경기 진행에 방해를 줄 수는 없는 일이죠. 물론 더그아웃 바로 위에 관중석에서 촬영하는 카메라도 있습니다. 내야 전체를 찍을 수 있죠. 그러나 실제 중계에서 많이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물망 때문이라고 합니다. 카메라 렌즈가 그물망 공간보다 더 크기 때문에 선명한 화질을 보장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피칭캠의 도입
그런 이유로 심판과 포수에 가리지 않고 좌우타자 모두를 촬영할 수 있도록 무인 소형 카메라 ‘피칭캠’이 개발됐다고 합니다. 시청자들이 투수의 공 움직임, 궤적 등을 배터리샷에서 중계된 화면보다 훨씬 생동감 있게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피칭캠은 소형 카메라이기 때문에 설치에 경기를 방해하지도 않고, 공의 실밥까지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바로 광고판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광고판을 글자를 가려서는 안되기 때문에 글자가 없는 여백 부분에 카메라를 설치한다는 군요. 실제로 좌타자의 몸쪽으로 오는 공에 대해선 포수와 타자에 가려 제대로 보여줄 수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2대의 카메라가 설치돼야 하지만 경기장의 환경에 따라 적절하지 못한 자리에 카메라가 설치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김덕호 촬영감독은 사람이 직접 이동할 수 있다면 타자나 투수의 습성에 따라 적절한 위치에서 촬영이 가능할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꼭 심판 뒤에서만 촬영해야 할까요? 심판이나 포수의 마스크에 소형 캠을 장착하면 더욱 생생한 투구화면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에 대해서 이정천PD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선 포수의 마스크에 캠을 장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공 하나하나가 승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순간에서 집중력을 잃을 수 없는 게 특히 포수라는 포지션입니다. 거추장스러운 장비로 선수의 플레이에 지장을 줘선 안 되겠죠. 심지어 포수는 견제 동작에서 마스크를 벗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카메라 손상의 위험성도 항상 존재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경우에는 불가능한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구장의 전파 간섭을 감안했을 때 무선인 캠 카메라의 화면을 중계차에서 활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투자 대비 낮은 효율성을 가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잠시 유행했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아직은 ‘배터리샷’
지난 시즌 처음 1군에 들어온 NC 다이노스 구단에서는 마산구장의 개보수를 통하여 왜곡 없는 배터리샷을 구현할 수 있도록 카메라 설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즌 초 NC의 홈경기를 시청한 팬들 사이에서는 왠지 불편함 느꼈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다시 왜곡된 배터리샷으로 회기 했다고 합니다. 반드시 문법적으로 옳고 그름이 시청자들의 원하는 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처음 피칭캠을 도입한 MBC 스포츠 플러스에서도 경험했다고 합니다. 도입 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범 촬영을 한 뒤 피칭캠을 리얼 속도로 보여주게 되면 눈에 다소 부담을 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시즌 중계에서 기본적인 화면은 배터리샷으로 놓고 피칭캠을 활용하여 결정적인 순간에서 슬로우 화면을 통해 공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메이저리그도 어느 정도는 왜곡된 위치에 놓고 피칭캠을 사용한 일자라인 화면은 슬로우 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아직은 배터리샷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포수시점의 중계화면 활용도 투수시점보다 훨씬 낮은 비율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정천PD는 “포수시점에서의 중계가 현장의 박진감과 투수의 공 움직임을 리얼하게 전달하는 반면 쉽게 피로해 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비율로 섞어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진화를 위한 시도는 계속된다
프로야구 초창기 중계화면은 대부분 포수시점이었다고 합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더 좋은 화면을 야구팬에게 전달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배율이 높은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었고 지금의 배터리샷이 구연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김덕호 감독은 “야구게임과 같은 시점을 중계화면으로 구연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가 아니겠느냐”라며 자신만 갖고 있는 생각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의 앵글들도 과거를 비교하면 상상도 못했을 앵글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며 게임처럼 화면을 담기 위해 땅속에 박혀있는 카메라가 포지션 별로 설치가 될 수도 있다”며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이정천PD도 동의했습니다. 포수시점의 화면이 주요 화면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어떤 기술력과 아이디어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다” 며 새로운 시도 앞에서 어떤 변화가 올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야구중계의 트렌드는 과거 다양한 화면을 활용하는 데서 현재는 선명한 화질을 전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야구팬들이 또다시 어떤 화면에 주목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의 중계화면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야구팬에게 전달되고 있는 화면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더 좋은 화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 게임 화면도 현장 중계팀에겐 잠재적인 넘어서야 할 존재입니다. 이들이 야구팬의 높은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야구팬들과 시청자들도 다양한 목소리로 소통하며 함께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