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겨울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노메달에 그쳤다. 그 모습을 보며 분통을 터뜨렸던 팬들도 많다. 그러나 '세계 최강 한국 빙상'이라는 허울 아래서 한국 빙상의 인프라가 얼마나 취약한지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과연 이런 현실에서 '세계 최강'을 기대하는 게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졌는지 깨달아야 한다.
지난 26일 민간통신사 뉴스1은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2관왕 박승희(22·화성시청)가 소속팀에서 푸대접을 받았다는 실상을 보도했다. 화성시청 선수들의 부모들은 "화성시청 쇼트트랙팀이 제대로 된 선수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박승희 역시 이런 현실 때문에 팀을 옮기는 것을 고려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화성시청 쇼트트랙팀은 파행 운영을 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겨울체전에 출전한 화성시청 쇼트트랙팀 소속 선수는 박승희가 유일하다. 운영난을 이유로 다른 선수들을 모두 내보냈기 때문이다. 감독 자리도 공석이다.
화성시청 빙상팀은 지난 해 예산 고갈을 이유로 경기복, 스케이트화 등 필수 장비조차 선수들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물의를 빚었다. 지난해 연말에는 박승희를 제외하고 계민정·김혜경·최정원 등 여자팀 선수 세 명을 한꺼번에 내보냈다. '재계약 불가' 통보 또한 타 팀이 사실상 선수단 구성을 마친 지난해 12월29일에 했다. 화성시청은 이들의 계약기간을 1년에 살짝 못 미치도록(지난해 1월10일부터 12월30일까지) 설정해 해당 선수들이 퇴직금은 물론, 실업수당조차 받지 못하게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계민정의 부친은 27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의욕을 잃어 '죽고 싶다'는 말까지 하는 내 딸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더 이상 내 딸처럼 불쌍한 선수는 나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네티즌들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마저 소속팀에서 푸대접을 받는 게 한국 빙상계의 현실"이라면서 "제2·제3의 안현수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팎의 비난이 이어지자 화성시청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빙상팀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했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빙상팀을 조속히 정상화 할 예정이다. 5월까지는 감독과 선수를 보강해 선수단 구성을 마무리지을 것"이라 밝혔다.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쇼트트랙이지만, 실업팀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선수들은 팀이 언제 갑자기 공중분해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훈련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실업팀은 특히 더 심하다. 언론과 지역민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연간 2~3억 원 수준의 저비용으로 빙상팀을 창단했다가 비효율적으로 관리하거나 또는 해체하는 지자체들이 적잖다.
이미 성남시청을 비롯해 용인시청과 춘천시청 빙상팀이 해체·재창단을 거듭했다. 과거 춘천시청 스피드스케이팅팀을 이끌다 해체의 아픔을 겪은 제갈성렬 JTBC 해설위원은 "2018 평창겨울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측에 '한국에 빙상팀이 늘고 있다'는 데이터를 제시하기 위해 지자체를 중심으로 창단 붐이 일었다"면서 "2011년에 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이후 효용성이 떨어지자 많은 팀들이 사라졌다. 목표 설정 자체가 잘못됐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평창올림픽을 생각한다면 '빙상 발전'이라는 팀 창단과 운영의 목적이 또렷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