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우리은행이 여자프로농구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박혜진(24·178㎝)이다.
박혜진은 올 시즌 유력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후보다. 올 시즌을 앞두고 아시아선수권 대표팀에 다녀온 박혜진은 국제무대를 경험한 후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시즌 중에는 자유투 연속 성공 45개로 종전 정선민의 42개 기록을 넘어선 신기록을 수립했다. 올 시즌 평균 13.39점을 올린 박혜진은 특히 승부처에서 한 방을 터뜨려주는 해결사 기질까지 갖췄다. 팬들은 박혜진을 남자농구의 해결사 김선형(서울 SK), 슈터 조성민(부산 KT)과 비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숙소에서 박혜진을 만났다. 강력한 MVP 후보라는 말에 박혜진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아직 MVP 자격이 없고 팀 성적이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후보로 오르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MVP 수상 가능성 높다.
"주변에서 그런 말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진짜 MVP 안 됐으면 좋겠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다. 아직 내가 받기에는 부족하고 나보다 잘 하는 선수도 많다. 신인상은 한번 뿐이라 욕심이 안 났다면 거짓말이지만 MVP는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팀 동료) 양지희 언니가 받았으면 좋겠다."
-의미 있는 한 시즌을 보냈다.
"시즌 앞두고 대표팀에 다녀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전혀 준비가 안 돼 불안했다. 의외로 초반이 잘 풀리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우리은행이 강팀이 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유투 연속 성공 신기록을 세웠다.
"덕분에 인터뷰 요청과 방송 출연이 많아졌다. 자꾸 숙소에 나만 촬영하러 오니까 미안하더라. 그런데 언니들이 '이런 기회 흔치 않으니 넣을 수 있을 때 많이 넣으라'며 격려해줬다."
-하필이면 라이벌 신한은행전에서 자유투 기록이 멈췄다.
"그때 못 넣을 것 같다는 예감이 미리 왔다. 당시 몸이 힘들어 밸런스가 깨진 상태였고 직전에 상대 선수와 충돌해 허벅지 근육이 아팠다. 자유투를 쏘러 가는데 (임)영희 언니가 '아프면 네가 던지지 말고 벤치 멤버와 바꾸라'고 하더라. 하지만 못 넣더라도 내가 던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들어갔을 땐 내 예상이 맞아서 그냥 웃음이 나오더라."
-슛이 좋은 조성민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다고 하던데.
"방송 인터뷰 때문에 (조성민의 소속팀 KT 홈구장이 있는) 부산에 간 적이 있다. 오빠가 내가 슛 쏘는 것을 보더니 곧바로 문제점을 지적하더라. 남자농구를 대표하는 슈터다웠다."
-시즌 전 아시아선수권 대표팀에 다녀온 게 도움이 됐나.
"이번에 처음 대표팀에 들어갔는데 더 빨리 들어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들과 부딪히면서 몸으로 느꼈다. 변연하 언니(KB스타즈)와 같은 방을 썼다. 실수할까봐 정말 긴장했는데 언니가 편하게 대해주고 슛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해줬다. 연하 언니는 태국까지 팬들이 따라와 간식을 챙겨주더라. 나는 얻어먹는 재미로 지냈다."
-대표팀 다녀온 후 해결사 기질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제는 내가 팀을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작년에는 외국인 티나와 영희 언니가 있어서 나는 궂은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는 외국인 수준이 작년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내가 더 책임감을 갖게 됐다."
-지난 시즌 우리은행에 위성우 감독이 오면서 팀과 박혜진 모두 한 단계 성장했다.
"예전에 내 성격은 포기도 빠르고 내성적이었다. 하지만 감독님이 오신 후 악이 생겼다. 감독님은 정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사람이다. 항상 칭찬보다는 부족한 걸 먼저 이야기한다. 경상도 분이라 그런지 성격상 오글거리는 말은 못 하시는 것 같다."
-닮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예전에는 이상민 코치님이나 전주원 코치님이었는데 요즘은 김선형이다. 속공 능력과 해결사 기질을 닮고 싶다. 전 코치님도 항상 김선형의 경기를 챙겨보라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