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순간이되면 ‘눈빛’이 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상시의 모습과 크게 달라서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키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고도의 집중을 위한 시간이다. 두산의 감독과 에이스, 4번 타자도 이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두산은 지난 7일 시범경기를 하루 앞두고 자체 청백전을 가졌다. 이날 경기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건국대학교 스포츠과학타운 내 이종범야구장에서 열렸다. 체감 온도 영하 5도의 꽃샘추위 속에서 선수들은 워밍업에 평소보다 많은 공을 들였다.
◇ 송일수 감독 ‘이웃집 아저씨’·‘호랑이’
송일수 감독(64)도 선수들에게 직접 캐치볼을 해주며 도왔다. 감독이 공을 놓칠때마다 어색한 한국어 억양으로 ‘미안’이라고 외치는 바람에 줄을 서서 캐치볼 하던 선수들은 웃음바다가 됐다. 송감독은 지나가는 선수를 공으로 맞추려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고, 코치들과도 시종일관 농담을 주고받았다.
지난 1월 두산 시무식 때 선수단에 흐르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에 대해 송감독의 통역을 담당하는 황인권(33)씨는 “처음에는 선수들이 감독님을 너무 어려워해서, 감독님이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셨다”며 “몰래 선수 뒤로 가서 옆구리를 찌르기도 하고, ‘나 처럼 대머리되지 않게 조심하라’며 우스갯소리도 하신다”고 전했다.
‘이웃집 아저씨’같은 친근한 모습이지만 호통을 칠 때면 ‘호랑이’로 변한다. 황인권씨는 “송감독님은 ‘기본’을 워낙 중요시해서, 워밍업 중에 장난을 치거나 나태할 경우 불호령을 내린다”고 말했다. 부상이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이나, 패배와 직결되는 부분에서 집중력을 요한다는 의미다. ‘두목 곰’ 김동주(38) 역시 “감독님이 화내시는 모습을 한번 봐야 한다. 정말 무섭다”고 말한바 있다.
◇ ‘에이스’ 니퍼트 ‘젠틀맨’·‘파이터’
백팀 선발투수로 등판한 더스틴 니퍼트(33)는 2회까지 3개의 삼진을 잡으며 기세를 올렸다. 니퍼트의 묵직한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힐때마다 ‘오’하는 탄성이 나왔다. 청백전이지만 실전처럼 양팀간의 신경전이 오고가는 가운데, 3회초 2사에서 청팀 2번타자 오재원(29)이 큰소리로 기합을 넣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오재원은 홈런을 노리는 듯 방망이를 크게 휘두르며 자극했고, 니퍼트는 오재원의 몸쪽으로 148km 직구를 꽂아 넣으며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 공을 지켜본 송일수 감독은 "そんなもん誰でも打てない"(방금 같은 공은 누구도 칠 수 없어)’라고 말했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니퍼트는 오재원을 향해 “How do you like that"(방금 공 맘에 들어?)라고 외쳤다.
올해로 한국무대 4년차를 맞이한 니퍼트는 늘 공손한 태도와 예의바른 모습으로 ‘젠틀맨’이라고 불린다. 청백전에 온 기자들에게 “추운데 왜 여기까지 왔느냐”며 “저쪽(홈플레이트 뒤쪽)에 햇볕이 잘 드는곳에 가서 경기를 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니퍼트는 훈련시 본인뿐 아니라 동료들까지 챙기며 자상한 모습을 보이지만 마운드 위에 서면 누구보다 자존심이 센 ‘싸움꾼’으로 돌변한다.
◇ ‘’4번타자‘ 칸투 ‘장난꾸러기’·‘화난 멕시코인’
호르헤 칸투(32)는 백팀의 4번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2회 첫 타석에 들어선 칸투는 청팀 선발 노경은(30)의 초구에 기습번트를 시도하며 1루로 달려나가는 시늉을 했다. 주자도 없는 상황에서 펼쳐진 ‘거포’의 갑작스런 장난에 양팀 선수들 모두가 웃음 지었다. 칸투는 1루 수비를 보며 청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때마다 마운드위의 투수를 향해 “Hit him"(맞춰버려) 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칸투는 추운날씨에 부상을 우려하여 경기에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지만(3타수 무안타) 훈련시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코치의 지시에 ‘순한 양처럼’ 따랐고, 펑고는 기본자세를 지켜가며 누구보다 열심히 받아냈다. 칸투가 예정보다 많은 개수를 받고도 멈추지 않으려하자 ‘칸투 스탑!’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두산의 관계자는 “칸투는 멕시코팬들에게 ‘Mad Mexican'(화난 멕시코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며 “농담을 좋아하고 남다른 친화력을 보이고 있지만 집중하면 누구도 말 걸기 어려울만큼 진지해진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