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첫 번째 지명권을 가진 kt는 1군 무대 경험이 전혀 없는 SK의 왼손투수 김주원(23)을 선택했다. 비록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선수들 가운데 지명을 해야 했지만 이혜천, 임재철 등 즉시 전력감이 있던 상황에서 의외의 선택을 한 것이다. 김주원은 2011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10순위로 SK에 지명됐다. 고교 시절에는 140km대 중반의 빠른공으로 주목받던 유망주였다. 2009년 화랑대기와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최우수선수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단 후 3년 동안 팔꿈치 수술과 어깨 부상으로 주로 재활군에 머물렀다. 지난해 2군에서도 단 한 경기에 출전했을 뿐이다. kt가 검증이 되지 않는 그를 지명한 것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188cm, 90kg의 체격과 빠른공을 던질 수 있는 왼손 투수에 아직 나이도 어리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김주원의 지명 소식에 처음에는 SK팬들 조차도 생소한 이름에 의아해 했다. 김주원은 2차 드래프트가 열리기 1주일 전만 해도 김민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까지 바꿨는데 새로운 각오로 야구를 하려 했다. 그런데 새 팀에서 기회를 다시 얻게 됐으니 더욱 의욕이 생긴다"고 말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그는 새로운 이름과 유니폼을 입고 전보다 다부진 마음가짐으로 야구를 하려한다. 그는 "이제는 고교시절보다 몇 단계 성장하고 싶다"며 "나의 성장으로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다"고 각오를 밝혔다.
- 보호선수명단 제외됐을 때 이전 팀이었던 SK에 섭섭하진 않았나?“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보여준 것도 없었고 오랜 시간 재활만 해왔다. 부상에서 회복하고 이제 막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있지만 팀에 섭섭하지는 않다.”
- kt가 2차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하며 입단했다. 전화외복이 됐는데 기분이 어땠나?“너무 감사했다. 처음 얘기를 듣는 순간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가 처음 됐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 kt에서는 어떤 점을 보고 뽑은 것 같나?“코치님들께서 지나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긴 하다. 체격 좋고, 왼손 투수고, 공도 빨랐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 기본적인 조건은 SK에서도 마찬가지였다.“사실 SK에는 좋은 왼손 투수가 너무 많았다. 실력을 다 보여줘도 모자랐을 텐데 팔꿈치 수술도 했고, 다 나았다 싶었을 때는 어깨에도 통증이 생겼다. 부상이 반복됐으니 가능성을 보여줄 수 없었다.
- 고등학교 시절 공을 너무 많이 던지면서 무리가 간 것이 아닌가?“사실 무등기, 화랑기 같은 대회에 출전하면 한 경기에 8, 9이닝을 던지곤 했다. 혹사라는 표현은 모르겠지만 많이 던진 것 같다. 토미 존 수술도 2011년 입단 직후에 했다. 그러나 좋은 경험이 됐다고 생각한다. 언제 다시 아플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할 생각이다.”
- 고교 때 MVP를 받을 만큼 활약한 선수였다. 프로에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김주원은 2009년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최우수선수,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마음은 급한데 몸은 따라오지를 않으니 답답했다. 원래의 실력은 보여주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혼자 울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부상을 당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들이 나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마음을 잡아갈 수 있었다.”
- 힘든 시기에 심리적으로 가장 큰 도움이 됐던 사람이 있다면.“재활군 시절 김경태 코치님이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코치님과 상담도 많이 하고 앞으로 어떻게 재기를 할 수 있을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김경태 코치님도 나처럼 왼손 투수셨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도 배울 수 있었다.”
- SK에 있을 때까지 김민식이라는 이름이었다. 개명은 왜 하게 됐나?“부모님께서 사주를 보시더니 운동선수를 계속하고 싶으면 그리고 더 잘하고 싶으면 바꿔야 한다고 하시더라. 이름이 안 좋아서 부상도 계속 생긴고 안 풀린다고 하시기에 부모님 뜻을 따랐다. 부상이 계속 있어왔던 것도 맞고 부모님께서 제가 성공하길 간절히 바라시는 것 같아서 따르게 됐다. 실제로 이름 바꾼 지 1주일이 지났더니 kt에 지명되는 좋은 일이 있었다.”
- 새 이름과 팀에서 전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훈련에 임했을 것 같다. 지난 160일간의 전지 훈련에서 얻은 성과가 있다면.“캠프 초반에는 팀 분위기에 적응을 해야 했기 때문에 피칭하는 데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투구밸런스도 안 맞고 만족스러운 투구를 못했다. 그런데 애리조나 캠프에서의 훈련을 끝내고 대만에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회복되면서 좋아졌다. 지금은 몸 상태도 너무 좋기 때문에 나 자신도 기대가 되고 있다.”
- 훈련기간도 길었고, 하루 훈련양도 많았다고 들었다.“신인 때 김성근 감독님과 마무리 훈련을 했을 때만큼 힘들었던 것 같다. 그때 야구 인생에서 가장 많은 훈련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만큼 한 것 같다. 정말 많이 뛰었고, 던졌다. 무엇보다 총 일수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쉬는 날에 몸이 피로가 회복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니 자신감도 붙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 기술적으로 연마하거나 보완한 점이 있다면.“감독님께서 투구폼을 지금보다 다이나믹하게 바꾸라고 주문하셨다. 공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전병호 코치님께 커브도 배웠다. 원래 공을 잡던 것보다 더 세게 잡고 직구처럼 던지라고 조언하셨다. 연습경기에서 실험을 해봤는데 효과가 있는 것 같다.
- 정명원 코치에게는 어떤 조언을 들었나.“정명원 코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다. ‘못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이다’는 것이다. 뭐든지 해보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했다. 안 던져보던 구종을 던져보며 나에게 맞는 것을 찾고 있다.
- kt는 신생팀이다. 이전 팀에 비해서 분위기가 많이 다른가?“솔직히 선후배간의 관계가 정말 가족적인 것 같다. 서로 대화가 오고 가는 것부터 정이 많이 느껴진다. 물론 앞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겠지만 지금은 팀이 똘똘 뭉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선수들도 그런 부분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지 서로 잘 챙겨주고 조언하는 분위기다. 사실 중간에 하차한 선수들도 있다. 그 선수들과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격려하고 있다.”
- kt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등번호를 99번을 달았다. 99번이 가장 끝번호 아닌가. 1번부터 많은 선수와 코치들이 있는데 제일 뒤에서 이들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미가 있다. 아직 저도 어린 나이지만 팀 선수들의 연령이 전반적으로 낮기 때문에 제 역할이 있다. 그래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원래 헌신적인 스타일인가?“솔선수범하고자 하는 편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먼저 나서 주도하려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먼저 하면 다들 따라올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로에서 처음 들어왔을 때 막내 생활을 하면서도 편했다. 선배들이 알아서 주도해주시는 모습들이 오히려 나에게는 잘 맞았던 것 같다.”
- 나만의 장점이 있다면.“항상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생각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나에게 좋은 부분만 가져가려 한다. 힘들어도 자주 웃는다. 힘들다고 인상 쓰면 남이 봤을 때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상을 당했을 때나 마음처럼 투구가 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못하고 웃으면 욕을 먹을 테니 그만큼 훈련을 통해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 구레나룻이 멋스럽다. 원래 스타일인가?“처음에는 기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인상이 강해 보이는 것 같아서 기르고 있다. 한화에 승민이도 비슷한 이유로 기르고 있다고 들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기르고 등판한 날에 공이 더 잘들어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실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타자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나 고등학교 때 경쟁자들 중 프로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보면 어떤가.“한화의 최영환이 개성고 동기다. 최근에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친구가 주목받고 잘해서 기분 좋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나는 일찍 프로에 들어왔음에도 대학을 진학한 영환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부상으로 보낸 시간 동안 영환이는 많이 성장한 것 같다. 그래도 좋은 자극이 된다. 나도 이제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서로 잘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나만 보여주면 된다.”
- 김민식이라는 이름으로는 자신을 알리지 못했다. 개명한 김주원이라는 이름으로는 좋은 선수로 기억되어야 할 텐데.재활이 다 끝났을 무렵에는 ‘됐다. 이제 보여주기만 하면 되겠다’다고 각오했다. 그런데 막상 kt에 와서 훈련을 소화해보니 여전히 2% 정도 모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았을 때보다 2단계, 3단계 진화한 모습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구속, 제구력, 멘탈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속은 가장 몸이 좋았을 때 나오던 144km까지 찍었다. 제구력의 향상이 가장 큰 과제다. 좋은 기회가 왔기 때문에 사력을 다하고 싶다. 내가 성장하면 팀에 도움이 될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좋은 선수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희수 기자 nahea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