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 K리그 클래식 4라운드 FC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가 만났다. 이날 경기 전까지 서울은 K리그에서 1무 2패로 부진했다. 270분 동안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는 답답한 공격을 펼쳤다. 그러나 경기 전 최용수 서울 감독은 여유로워 보였다. 그는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10년 뒤 오늘을 생각하며 그때 애들을 쪼지 말 것이란 후회를 안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 감독은 부진에 늪에 빠진 선수단을 닥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풀어줬다. 보통 선수단을 질타하는 것과는 상반된 행보였다. 부산 아이파크와 3라운드에서 0-1로 패한 뒤 최 감독은 회복훈련을 취소했다. 오히려 선수들에게 휴가를 줬다. 최 감독은 "매일 보는 얼굴 봐서 좋을 것이 없다고 봤다. 가족과 함께 재충전의 시간을 하고 오라고 했다"고 떠올렸다. 선수들은 놀랐다는 반응이다. 고요한은 "솔직히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우리에게 휴가라는 상을 줬다"며 "돌아올 때는 '그래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제주 전을 앞두고 미팅은 아예 하지 않았다. 상대 선수보다는 서울이 해야할 일만 강조했다. 대신 긴장을 풀어주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예언'을 툭툭 던졌다. 고요한은 "감독님이 제주 전에서 나와 에스쿠데로 중 한 명이 헤딩골을 넣을 것이라 했다"고 떠올렸다. 둘 다 170cm의 단신 공격수로 제공권이 강하진 않은 선수들이다. 그런데 최 감독의 예언은 적중했다. 고요한이 후반 23분 머리로 서울의 시즌 첫 골을 뽑았다. 그는 골을 넣고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최 감독에게 달려갔다. 고요한은 "신기하다. 헤딩 연습은 많이 했는데 이렇게 골을 넣을지 몰랐다"고 했다.
두 번째 골을 넣은 윤일록도 최 감독에 따뜻한 배려로 아픔을 극복했다. 지난 21일에는 윤일록은 조부상을 당했다. 최 감독은 "일록이를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많이 탄 것이 티가 났다. 조용히 불러 다녀오라고 했다"고 했다. 윤일록도 "감독님만 아시는 일이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나주에 다녀오니 골까지 나왔다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 것 같다"고 눈물을 훔쳤다. 윤일록은 이날 두 번째 골을 뽑아내 팀 승리를 확정지었다.
최 감독은 "32일 만에 고비에서 반전을 이뤘다. 선수들이 이기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을 보였다"며 "오늘 승리는 선수단의 공으로 돌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