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월드컵 본선에 뛸 축구대표팀 골키퍼 전쟁이 뜨겁다. 정성룡(수원), 김승규(울산)의 주전 골키퍼 대결도 치열하지만 이에 도전장을 던질 선수들의 활약도 최근 매섭다.
여기에 최근 떠오르는 골키퍼가 이범영(부산)이다. 이범영은 지난달 23일 K리그 클래식 3라운드 서울전에서 페널티킥 2개를 연달아 막아내 주목받았다. 이어 지난 6일 리그 6라운드 울산전에서 유효 슈팅 7개를 막아내는 신들린 선방 능력으로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전반 26분 한상운과 맞은 1대1 상황, 후반 19분 김신욱과의 정면 대결 상황에서 결정적인 선방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윤성효 부산 감독은 "범영이 덕분에 비길 수 있었다"며 칭찬했다.
이범영은 페널티킥 선방 능력에서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지난 2012년 8월 런던올림픽 8강 영국전에서도 승부차기에 골키퍼로 나서 5번 키커 다니엘 스터리지(리버풀)가 찬 공을 막아내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그는 "브라질월드컵 16강에 가면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찬 킥을 한번 막아보고 싶다"며 의욕을 다졌다.
- 최근 서울전 페널티킥(PK) 2개를 막은 게 화제가 됐다.
"평소에 PK를 어떻게 차는지 분석할 뿐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하는 스타일, 성격도 본다. 팀마다 키커가 2-3명이 정해져있으니 통할 때가 많다. 페널티킥 키커 킥지점까지 다가가 팔을 크게 벌리고 돌아온다. 내 몸이 크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압감을 줄 수 있다. 승부차기 때는 5번 모두 그런다. 골문에 서서도 팔을 크게 벌려 상대를 위축시킨다. 그 이후 타이밍을 잘 잡아야한다. 상대가 볼을 차는 순간까지 기다린다. 키커들이 골키퍼 움직임 보고 방향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 영국과 런던올림픽 8강 때도 그랬나.
"경기 전 라이언 긱스가 무조건 찰 거란 생각에 유투브로 찾아봤는데, 찾는게 쉽지 않았다. 5번 키커 스터러지도 못 찾았다. 경기 후 긱스의 페널티킥을 봤다. 경기 전에 봤으면 막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려면 골키퍼가 1~3번 키커 중 하나를 막아줘야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 난 대신 5번 키커를 막았다. 선수가 부담이 컸을 거다."
- 언제부터 PK에 자신이 붙었나.
"허정무 감독님이 만든 용인축구센터 1기 출신이다. 3학년 없이 2학년만으로 토너먼트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멤버가 김보경(카디프시티), 이승렬(전북) 등이 있었다. 16강부터 결승까지 승부차기로 올라갔는데 결승에서도 승부차기로 이겨 최우수골키퍼상을 받았다. 당시 어릴 때라 승부차기를 앞두고 까불었다. 골대 위에 점프도 뛰고, 골대도 치고, 상대 앞에서 춤도 추면서 과장된 동작을 했다. 골키퍼는 경기 중 골을 먹으면 욕먹는 포지션이다. 유일하게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게 승부차기다. 공격수가 골을 넣으면 가장 기쁘듯, 골키퍼에게 즐길 수 있는 게 승부차기다."
- 이범영 하면 런던올림픽의 쾌거와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아픔이 공존한다. 두 사건은 이범영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아시안게임 4강 때 승부차기를 위해 들어갔는데 교체 투입돼 3분새 결승골을 먹었다. 남모를 아픔이 슬럼프로 이어졌다.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다. 그래도 런던올림픽 때 씻어낼 수 있었다. 내게 힐링 아닌 힐링이 됐다. 아픔과 슬픔을 느끼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 청소년 대표 때부터 홍명보 감독을 봐 왔다. 어떤 감독이라고 생각하나.
"늘 한결같은 분이다. 선수를 대하는 자세가 변함 없으시다. 팀에 원칙을 만들어놓고, 규율 속에 자율을 강조하신다. 감독님께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아시안게임 4강 때 통한의 실점 후 믹스트존을 지나가는게 두려웠다. 그 때 감독님이 '범영, 고개들어. 네가 잘못한거 없으니까. 당당히 고개들고 떳떳히 나가'라고 말씀해주셨다. 침울해있었는데 실수를 인정하고 믹스트존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 김승규와 오랜 라이벌이다. 승규는 어떤 친구인가.
"한해 후배다. 어렸을 때부터 느꼈지만 능력을 갖춘 선수다. 딱 봐도 너무 잘한다. 신체적 능력, 키, 순발력, 유연성 등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완벽히 갖춘 선수다. 오랜 시간 라이벌로 지내며 배우는게 너무 많다. 그러면서 서로 발전하고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승규한테) 페널티킥은 지지 않을 자신 있다. 성실성, 멘털적인 부분에서도 자신있다."
- 정성룡도 오랫동안 대표팀 주전으로 뛰었다.
"(한참 고민한 뒤) 둘 다 훌륭한 선수다. 장단점은 많이 다르다. 성룡이형은 안정적인 플레이가 강점이다. 승규는 빠른 순발력을 지녔다. 둘 다 다른 스타일이다. 하지만 선택은 홍명보 감독님이 하는거다. 둘 중 한명이 넘버1 골키퍼가 된다면 온 국민이 믿어줘야 한다. 너무 흔들면 둘 다 심리적으로 부담을 갖고 불안해할 수 있다."
- 지난해 12월 결혼했다. 결혼이 이범영에게 확실히 좋은 영향을 끼쳤나.
"정말 가정적이었던 선배들이 '결혼하면 안정을 찾는다'고 말해줬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정말로 안정을 찾게 됐다. 책임감이 더욱 생겼다. 전에는 나 자신을 위해 뛰었는데, 가족을 위해 뛰어야 하다보니 먼지 한톨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느낌이다. 아내가 요리를 너무 잘한다. 해물탕, 스키야키, 샤브샤브, 리조또 등을 해준다. 인터넷 레시피를 보고 만드는데 정말 맛있다."
- 월드컵에 간다면 누구의 공을 한번 막아보고 싶은가.
"평소 포르투갈을 좋아했다. 포르투갈과 16강에서 붙을지, 안붙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얼마나 잘하나 눈앞에서 보고 싶고, 막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워낙 유명한 호날두가 나랑 페널티킥에서 맞딱뜨리면 어떤 방향을 선택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호날두는 페널티킥을 굉장히 세게 차더라. 좌우 가운데 다 찬다. 늘 바뀐다. 공이 사람보다 훨씬 빠르다. 미리 움직여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