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축구 감독들은 무뚝뚝하고, 지나치게 진지하고, 개성도 없고 재미도 없다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2014년 K리그 클래식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감독들 덕분이다.
부산 아이파크의 윤성효(52) 감독과 상주 상무의 박항서(55) 감독은 요즘 축구팬들 사이에서 '개그 캐릭터'로 불린다. 부산 혹은 상주의 경기장에 간다면 먼저 감독이 앉아 있는 벤치를 주목해 보라. 어쩌면 축구 경기보다 더 재미있는 장면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부적의 남자' 윤성효
윤 감독은 부산 사투리로 무뚝뚝하게 말을 툭툭 던지는 '경상도 사나이'다. 2012년 성적 부진으로 수원 사령탑에서 물러날 때만 해도 개성 없어 보였던 윤 감독은 2013년 부산을 맡으면서 달라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부적이었다. 수원 시절부터 최용수 서울 감독에게 강했던 윤 감독은 부산에서도 서울을 기가 막히게 잡았다. 이에 타팀 팬들이 서울과 경기를 할 때면 윤 감독의 얼굴을 박아 넣은 '윤성효 부적'을 흔들기 시작했고, 신통하게도 부적을 흔들면 서울을 이기곤 했다. 급기야 최용수 감독이 "윤성효 부적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윤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를 휘어잡아 단번에 강팀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산은 윤 감독 부임 후 강팀을 잘 잡는 '도깨비 팀'이 됐다. 이런 팀 컬러마저 윤 감독의 엉뚱함과 잘 어울린다.
윤 감독은 올 시즌 부산지하철의 안내방송도 맡고 있다. 종합운동장역 정차 안내를 윤 감독이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한다. 부산 홈경기 홍보 명함에는 '성효부적'과 함께 "믿어주이소"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윤 감독만 보면 팬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춘곤증' 박항서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 코치였을 때도 박항서 감독은 약간의 개그 캐릭터 느낌이 있었다. 유독 방송 카메라 앞에만 서면 서툴고 어눌한 인터뷰를 해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올해 상주를 맡은 박 감독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터졌으니, 다름 아닌 '춘곤증 사건'이다. 박 감독은 지난 3월 23일 전북 현대와의 홈 경기 도중 벤치에 앉아 조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적나라하게 잡혔다. 상주 공격수 하태균이 결정적인 기회에서 강력한 슈팅을 시도했고 중계 카메라가 벤치의 박 감독을 잡았는데, 그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해설자는 "기도하고 계신다"는 애드리브를 했다. 해당 장면 동영상은 조회수 1만 건을 넘겼다.
박 감독은 지난 9일 서울전에서 판정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던졌다가 퇴장 당해 '퇴장의 아이콘'이 됐다. 5경기 출전 정지에 벌금 500만원 징계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한우 상주 사무국장이 경기 후 "사실 박살난 휴대폰은 자주 고장나던 거라 바꿀 계획이었다. 이미 약정도 끝났다"고 '폭로'하면서 팬들에게 한 번 더 웃음을 줬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사진=박항서 감독(SPOTV+ 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