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청용 父 동반 인터뷰] 박지성 “아빠! 90분 뛸 때 은퇴할게요”



“내 아들 일 같아서….”

두 아버지 입에서 똑같은 말이 나왔다.

이청용(26·볼턴)의 아버지 이장근(54) 씨는 지난 14일 열린 박지성(33)의 은퇴 기자회견이 남달랐다. 그는 “내 아들이 은퇴하는 것 같아 더 짠했다. 지성이 아버지는 모든 게 한 번에 없어지는 기분이셨을 거다”고 아쉬워했다.

JS파운데이션 상임이사인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56) 씨도 2011년 여름, 이청용이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박 씨는 “지성이가 다친 것처럼 안타까웠다. 청용이 아버지 심정이 어떠셨을 지도 잘 안다. 그렇게 크게 다치면 선수는 물론 가족 모두가 너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박지성과 이청용.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축구 국가대표 전·현직 에이스다. 둘은 각별한 사이다. 박지성이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활동하던 시절 후배들이 놀러오면 유일하게 집에서 재우는 후배가 이청용이었다.

박지성과 이청용을 최고의 스타로 길러낸 아버지들도 친분이 있다. 이 씨는 15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JSFC(박지성 축구센터)를 방문해 학부모들 앞에서 ‘축구선수의 부모가 된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평소 남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이 씨지만 박 씨의 부탁에 두 말 않고 승낙했다. 강연 후 두 아버지를 함께 만났다.

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이청용과 박지성이 2011년 1월 6일(한국시간) 당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공항에서 카타르 도하로 출국하기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지성이 이청용을 유독 각별히 챙긴다고 들었다.

이장근(이하 이): 지성이가 맨유에서 뛸 때 맨체스터 집과 청용이의 볼턴 집이 차로 20분 거리였다. 자주 식사를 했고, 지성이가 맨체스터 지리부터 상대팀 장단점까지 진심어린 조언을 해 줘 청용이가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둘은 조용한 성격도 잘 맞는 것 같다. 지성이가 여러 후배들과 친하지만, 청용이에게 좀 더 정이 있는 것 같다. 지성이 집에서도 청용이가 몇 번 잤나 보더라.(웃음)

박성종(이하 박): 그라운드 안팎 스타일도 그렇고, 청용이가 지성이와 가장 닮은 선수다. 냉철하고, 운동할 때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렇다.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났나. 친해진 계기가 있었나.

이: 지성이 아버지가 영국에 계실 때 청용이 엄마랑 여동생을 집으로 몇 번 초대해주셨다. 바비큐도 맛있게 구워주시고. 나는 재작년에 상가에서 지성이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아들들이 영국 가까운 곳에 살고 성격도 비슷해 공감대가 많았다. '실수를 통해 배우라'는 훈육 가치관도 비슷했다. 가끔 만나 술도 한 잔씩 한다.

박: 선수들이 가까우면, 부모들도 가까워진다. 청용이 아버지를 딱 보고 청용이가 잘 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아버지 성격이 이렇게 반듯하시니. 선수는 부모를 보고 배운다.

-박지성 아버지는 다른 선수 아버지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

박: 조언은 무슨. 그냥 사소하지만 필요한 정보들은 말해주는 정도다. 김보경(25·카디프시티) 아버지가 영국에 개소주 팩을 갖고 갔다가 공항 검색대에서 걸렸다. 팩 포장지를 포도즙으로 바꾸면 된다고 알려줬다. 기성용(25·선덜랜드)은 영국 진출 초기에 어머니가 온갖 양념과 반찬을 다 챙겼다가 수화물 초과운임을 100만원 가까이 냈다고 하더라. 영국 한인센터 가면 양념도 다 있고, 그것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는데.(웃음)

-같이 술 드시면 계산은 누가 하시나. 주량은 누가 더 센지.

이: 지성이 아버지가 많이 사신다. 많이 버시잖아.(웃음) 주량도 더 세고.

박: 무슨 소리. 지난번에 수원까지 오셨는데 몰래 계산해서 얼마나 미안했는데. 청용이 아버지도 술 잘 드신다.

이영목기자 ymlee@joongang.co.kr/ 박지성과 이청용이 2010년 5월 19일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있은 포토데이 행사에서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지성과 이청용 모두 예의 바르고 성실하다. 아들을 반듯하게 키운 비결은.

박: 본인 성격도 있겠지만, 가족들이 꾸준히 교육을 시킨다. 잔소리를 듣기 싫어해도 건방져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청용이는 반듯한지는 잘 모르겠고.(웃음) 꼿꼿한 면은 좀 있다. 자기가 세운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은 안한다. 다른 분들에게 반듯한 이미지인 건 좋은데, 그걸 유지하느라 피곤할 것 같긴 하다.

-아들 덕분에 유명해지는 바람에 말 못할 고충도 많았을 텐데.

박: 순대국도 마음대로 못 먹는다.(웃음) 예전에 강원도 어디 음식점을 갔는데 한 팬이 '진짜 지성이 아버지 맞느냐. 우리하고 똑 같은 거 먹는구나‘하며 신기해하더라. 그 다음부터는 조용한 곳만 찾아다닌다.

이: 지성이 아버지는 아들이 명문클럽에서 오래 활약했으니 대중에 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셨다. 얻는 것의 몇 배를 버리고 사셔야하니 불편한 게 많으셨을 거다. 난 이번 인터뷰가 처음인데. 사진촬영도 그렇고. 걱정이다. 나도 순대국 좋아하는데, 이제 마음대로 못 먹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박지성은 무릎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이청용도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있는데.

박: 청용이 부상 장면을 리플레이로 봤다. 내 아들이 다친 것처럼 안타까웠다. 지성이도 보면서 ‘너무 많이 다쳤다’며 자기 일처럼 발을 동동 구르더라. 청용이 아버지 심정이 어떠셨을 지도 안다. 그렇게 크게 다치면 선수 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힘들어진다. 청용이는 그때 기량과 컨디션이 정말 좋았는데….

이: 다리가 퉁퉁 붓고 고름이 줄줄 흘렀다. 그런데 얘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지성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유학 중인 친구가 맨유 경기를 보러가니 표를 챙겨달라고 부탁하더라.(웃음) 청용이는 재활 내내 인상 한 번 안 찌푸렸다. 축구를 계속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만 했다. 그런 여유가 도움이 됐다. 또 '재활 선배'인 지성이가 자주 해준 조언과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하더라.

-이청용은 박지성 은퇴를 미리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들었다. 은퇴 기자회견장에 '선배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꽃바구니도 보냈던데.

이: 청용이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지성이의 은퇴 기자회견을 생중계로 봤는데 기분이 남달랐다. 지성이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는데, 청용이가 은퇴하는 것처럼 마음이 짠했다. 청용이가 지성이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어 더욱 감정이입이 됐다. 청용이도 앞으로 6~7년 뒤면 겪을 일이다. 지성이 아버지는 모든 게 한 번에 없어지는 느낌이셨을 것 같다. 지성이가 외동아들이고, 은퇴와 함께 결혼발표도 동시에 했으니 서운함이 더 크셨을 거다.

박: 난 아직 실감은 잘 안 난다. 청용이 꽃바구니는 정말 고마웠다. 차범근 SBS 해설위원도 (차)두리 이름과 함께 '지성아 수고많았다'며 큰 화분을 보내주셔서 감동 받았다. 사실 지성이 성격상 그동안 차 위원께 자주 연락도 못 드렸는데 너무 감사했다. 역시 축구계 대선배이자 큰 어른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성이는 영광일 거다. 은퇴하는데 최고의 선배, 최고의 후배가 축하 화분을 하나씩 보내줬으니 말이다.(웃음)

-박지성 은퇴를 아버지가 처음에 만류했다고 하던데.

박: 안정된 현역선수 신분일 때 1년 정도 차근차근 은퇴 후를 준비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토니 페르난데스 퀸즈파크레인저스(QPR) 구단주도 '1년 연봉(약 40억 원) 그대로 줄 테니 있어만 달라. 와서 경기 안하고 놀아도 좋다'며 강력하게 붙잡았다. 그런데 지성이가 '아빠, 90분을 뛸 수 있을 때 물러나고 싶어요. 1년 더 선수생활을 하면 벤치에 앉는 시간이 늘어나는데 벤치에 있을 때 나오는 것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아니라 밀려나는 거에요‘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1년 더 뛰기를 내심 바라던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지성이는 에이트호번에서의 올 시즌 마지막 경기(5월4일 브레다 전, 2-0승)를 뿌듯해한다. 종료 1분 전 교체됐는데, 체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홈 팬들에게 박수 받으며 그라운드를 나올 수 있도록 감독이 배려한 거였잖느냐. 프로선수로서 마지막을 사실상 풀타임 소화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성이 말이 맞다. 아름답게 물러난 게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박지성은 7월27일 김민지(29) 전 SBS 아나운서와 결혼식을 올린다. 향후 계획은.

박: 영국 런던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몇 군데 추천받았다. 당장 정식 입학은 아니고 강의를 들으며 차근차근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신혼집도 런던에 마련해 놨다. 지성이는 공부를 할 거면 누구의 힘도 안 빌리고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청용은 결혼 안 하나.

이: 뭐. 좋은 소식 있지 않을까.(웃음)

-국민들은 이청용이 브라질월드컵 때 박지성 역할을 해줄 거라 기대한다. 박지성처럼 이청용이 주장을 맡아야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 청용이는 주장 욕심은 없다. 조력자 역할은 잘 할 것 같다. 박주영(왓포드)이나 기성용, 이근호(상주)처럼 청용이와 호흡을 맞춘 선수도 많으니 기대가 된다. 한 명이 에이스가 될 게 아니라 이 선수들이 다 합심해서 좋은 결과가 났으면 좋겠다.

박: 얼마 전 지성이에게 들으니 청용이가 한국 나이로 벌써 스물일곱이더라. 적은 나이가 아니다. 청용이가 동료들을 잘 이끌면서 좋은 모습 보일 것 같다.

-이청용은 얼마 전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 등 피해자들을 위해 써달라며 3000만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박지성도 이와 관련해 K리그와 함께 자선경기를 열 계획인데.

이: 청용이는 자기 여동생을 끔찍하게 챙긴다. 여동생보다 조금 어린 학생들이 슬픈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영국에서 듣고 정말 안타까워했다.

박: 지성이는 지금까지 아시아 지역에서 열었던 자선경기를 앞으로 더 어려운 아프리카 지역 등으로 확대하는 프로젝트를 고려하고 있다. 비록 지성이는 없지만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세월호 참사 등으로 아픔을 겪은 국민들에게 꼭 희망을 안겨드렸으면 좋겠다.

수원=윤태석·박린 기자 sport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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