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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299.밀양의 독립운동가
얼마 전 나는 경남 밀양에 다녀왔다. 밀양은 조선 독립운동의 메카였다. 석정 윤세주 선생, 약산 김원봉 선생과 김 선생의 부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차정 여사, 지강 김성수 선생, 최수봉 선생 등 무려 67명의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가 나라 안팎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을 펼쳤다.
나는 어린 시절 지강 김성수 선생과의 특별한 기억이 있다. 지강 선생은 부친인 차일혁 경무관을 친아들처럼 사랑하셨다. 선생께선 종종 우리 집에 장기간 머물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꼬마였던 내게 마치 친구처럼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나는 의열단 활동을 할 때마다 맨 마지막까지 남는 망지기를 했어. 남들이 다 물러나야 그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 내가 잡힐 가능성이 제일 높았지만, 남들이 제일 싫어하는 그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어.”
또 내가 밥 먹을 때 반찬투정을 할라치면 지강선생은 “나와 네 아버지는 식량이 없어 구더기가 버글거리는 음식도 반찬삼아 맛있게 먹었단다”하면서 뭐든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느 날에는 고문을 당했던 상처라며 끔찍한 흔적들을 모두 보여주시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천진하게 웃곤 하셨다.
평생을 아나키스트로 사셨던 지강 선생께서 제일 처음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던 장소가 바로 밀양의 춘화교회다. 평양에서 내려오신 지강선생의 부모님께서 세운 춘화교회에서 조국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불태우셨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중국 등지에서 열렬한 항일독립전쟁을 벌이셨던 지강 선생은 1933년 주중일본대사 암살계획 정보가 탄로나 18년 형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1945년 8월 15일에 석방되셨으며, 이후 제2공화국 시절엔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지만 집권당에 의해 취소되는 아픔을 겪으시고, 1966년에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밀양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김원봉 선생과 박차정 여사도 빼놓을 수 없다. 김원봉 선생은 항일무장투쟁의 핵심인물이었지만 월북한 관계로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부인만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해설을 하신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님은 “한국의 애국지사는 일본에 검거되어 재판기록이 남아야만 인정받는 아이러니가 있다. 만약 일본에 검거되지 않으면 재판기록도, 수감기록도 없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명 애국열사들이 너무나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많은 독립운동 자료를 일본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공개될 시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까지 고스란히 탄로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원봉 선생은 남과 북으로부터 소외되어 무덤조차 없는 상태다. 박차정 여사의 묘소도 현충원이 아닌 쓸쓸한 공원묘지에 잠들어 계신다. 또 두 분의 두 아드님도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하니 더욱 안타까웠다.
나는 밀양의 여정을 아랑의 전설이 깃든 영남루에서 마쳤다. 밀양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영남루에 올라 밀양출신의 독립운동가 영령들의 한이 하루빨리 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