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는 홍명보팀에서 주전경쟁이 가장 치열한 포지션이다. 원래는 정성룡이 부동의 주전이었다. 그러나 작년 말 정성룡이 잠시 슬럼프에 빠진 사이 김승규가 무섭게 추격했다. 이를 악문 정성룡은 올 초를 기점으로 예전의 기량을 회복했다. 지금은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은 양강 체제다.
김현태(53) FC서울 스카우트 팀장, 김성수(51) 전 울산 골키퍼 코치와 함께 두 선수의 장·단점과 향후 경쟁구도를 집중분석했다. 김 팀장은 2002 한·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골키퍼코치를 맡아 이운재(41·아시안게임대표팀 골키퍼 코치)와 정성룡을 넘버원 골키퍼로 조련했다. 김 코치는 포항 시절 정성룡, 울산 시절 김승규를 모두 지도한 경험이 있다.
▶체격조건 : 정성룡 < 김승규
정성룡은 190㎝, 86㎏. 김승규는 187㎝, 80㎏이다. 정성룡이 키가 3㎝ 더 크지만 전체적인 체격조건은 김승규가 좀 더 낫다는 평이다. 두 전문가는 “키 크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호리호리하고 날렵한 체격이 골키퍼로서 이상적인데 김승규가 그런 몸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안정성 : 정성룡 > 김승규
정성룡의 가장 큰 장점이 침착함이다. 김 팀장은 "작년에 흔들렸을 때를 제외하면 정성룡은 슈퍼세이브는 안 많아도 반대로 어이없는 실수도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김 코치도 "정성룡이 잠깐 부진했던 건 기량보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탓이 컸다. 지금은 제 자리를 찾았다. 기복이 없는 게 정성룡의 강점이다"고 진단했다. 골키퍼 코치가 벤치에서 경기를 볼 때 마음 편하게해주는 선수가 있고 반대로 언제 실수가 나올지 몰라 불안하게 하는 선수가 있다고 한다. 정성룡은 전자에 해당한다.
▶순발력 : 정성룡 < 김승규
김승규가 더 뛰어나다. 두 전문가 모두 5월28일 튀지니와 평가전을 언급했다. 선발로 나선 정성룡은 오른쪽 옆구리 아래로 오는 상대 슛을 막지 못해 실점했다. 중요한 것은 실점이 아닌 그 과정이다. 정성룡은 팔을 제대로 뻗지 못했다. 반응속도가 늦은 것이다. 김 팀장은 "운동량이 많아서 몸이 무거운 것일 수도 있으니 그 장면만 보고 판단하기는 힘들다"면서도 "순간 반응이 늦은 점은 아쉽다”고 했다. 김 코치도 "일대일이었지만 정성룡이 처리했어야 한다"고 동의했다.
▶경기운영능력 : 정성룡 > 김승규
정성룡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 팀장은 "템포 조절은 정성룡이 한 수 위다"고 했다. 김 코치도 "게임운영과 수비 리드는 정성룡이 최고다"고 엄지를 들었다. 풍부한 경험이 원동력이다. 정성룡은 A매치를 60경기(55실점) 소화했다. 김승규(A매치 5경기 6실점)보다 큰 경기를 훨씬 많이 뛰었다. 정성룡은 남아공월드컵 때 전 경기에 출전해 한국의 16강을 이끌었고 2012년 런던올림픽 때도 주전 수문장으로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훈련태도 : 정성룡=김승규
누구의 손을 들기 힘들다. 둘 다 성실하다. 김 코치는 "정성룡은 힘이 들거나 다쳐도 묵묵히 자기 운동은 다 한다"고 기억했다. 김승규의 욕심도 못지않다. 김 코치는 "작년에 울산에서 김영광(41·경남FC)이 부상당하고 김승규가 곧바로 주전으로 투입돼 좋은 모습 보인 것은 평소 철저한 훈련으로 준비돼 있었기 때문이다"고 칭찬했다.
▶책임감 : 정성룡=김승규
역시 박빙이다. 책임감은 골키퍼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척도다. 2002한·일월드컵 때 대표팀은 포지션별로 팀을 나눠 족구로 종종 회복훈련을 했다. 공격수, 미드필더 팀에 테크니션들이 즐비한데 우승은 늘 골키퍼 팀이 했다. 김 팀장은 "골키퍼에게 실수는 실점이다. 골키퍼들은 나 때문에 점수를 줘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이 몸에 배어 있고 족구를 해도 플레이에서 나타난다"고 귀띔했다. 정성룡과 김승규도 예외가 아니다.
▶킥 : 정성룡=김승규
정확한 킥은 순간적인 역습 때 힘을 발휘한다. 킥의 대명사는 이운재였다. 거리와 강약조절 모두 수준급. 10개 중 9개는 의도한 장소로 볼을 정확히 보냈다. 정성룡과 김승규 모두 킥 능력은 이운재보다 못하다. 정성룡은 롱 킥을 자랑하지만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는 게 흠이다.
▶발 기술 : 정성룡=김승규
발기술도 골키퍼에게 중요하다. 김 팀장은 "선진축구를 보면 빌드업(수비에서 공격지역으로 볼을 이동해가는 과정)에서 골키퍼를 잘 이용한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숫자싸움이니 10대11보다는 11대11이 효과적이다. 네덜란드 반 데 사르(은퇴)같은 명 골키퍼는 발 기술이 필드 플레이어 못지않게 좋았고 양 발도 잘 썼다"고 지적했다. 두 선수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 엇갈렸다. 김 코치는 "백패스를 잡아 전방으로 연결하는 능력은 김승규가 조금 낫다"고 했다. 반면, 김 팀장은 "정성룡도 예전에 비해 발 기술이 많이 좋아졌다. 게임 중 패스연결을 보면 매끄럽다. 김승규에 뒤질 게 없다"고 평했다.
▶경쟁구도는
일단 지금까지는 정성룡이 약간 앞서는 모양새다. 특히 4년 전 월드컵을 뛰어본 경험이 있다는 게 정성룡에게 큰 플러스 요인이다. 두 전문가도 "똑같은 실력이라면 경험 많은 정성룡을 쓰는 게 더 안전할 수 있다"고 했다. 10일(한국시간) 벌어지는 가나와 마지막 평가전이 중요하다. 이 경기 후 코칭스태프의 최종 판단이 내려질 전망이다. 4년 전 남아공월드컵 때 한국은 스페인과 마지막 평가전을 치렀다. 이운재가 전반, 정성룡이 후반을 뛰었다. 당시 골키퍼 코치였던 김 팀장은 스페인전 후 정성룡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이 사실을 경기 전날 통보했다. 막판까지 팽팽한 긴장상태를 이어가야 최고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 홍명보 감독도 누구를 낙점하든 경쟁구도는 끝까지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