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월드컵 역사에서 번번이 독일에 패하며 좌절한 기억이 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4강에서는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결승진출이 좌절됐다. 1986년 4강에서도 또 만났는데, 이번에는 0-2로 무너졌다. 8강전을 앞두고 공식기자회견에서 디디에 데샹(46) 프랑스 대표팀 감독은 "역사는 과거일 뿐이다.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쓰면 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5일(한국시간) 리우 데 자네이루에 위치한 마라카냥 주경기장에 프랑스의 상대로 나온 '전차군단' 독일은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경기 전 상황은 프랑스에 유리했다.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 E조에 속해 스위스와 온두라스·에콰도르를 손쉽게 제압하고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서도 나이지리아를 2-0으로 꺾었다. 반면 독일은 죽음의 G조에서 혈투를 펼치고 올라왔다. 포르투갈과 가나·미국 등 만만치 않은 팀을 상대했다. 16강에서는 복병 알제리와 연장전까지 치렀다. 이동거리도 길었다. 지난달 27일에는 적도 근처의 헤시피에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1일에 열린 16강전은 상파울루보다 남쪽에 위치한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소화했다. 독일 선수 7명이 감기 증상을 보였다. 요하임 뢰브 독일 감독도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입장에선 역대 월드컵에서 패한 기억을 되갚아줄 기회였다. 그러나 초반 경기가 꼬였다. 전반 13분 만에 선제골을 내준 것이다. 오른쪽 측면에서 프리킥을 내줬는데, 이 장면에서 독일 수비수 마츠 후멜스(26·도르트문트)에게 헤딩골을 허용했다. 이후 독일은 포백(4-back) 수비와 중앙 미드필더 두 명의 공격가담을 자제했다. 안정적인 경기를 펼치며 프랑스의 공세를 막아냈다. 그러나 프랑스도 제대로 경기를 풀지 못했다. 카림 벤제마(27·레알 마드리드)와 파트릭스 에브라(33·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활로를 뚫기 위해 노력했지만 독일의 수비벽을 넘지 못했다.
후반에 기회는 왔다. 험난한 일정을 치른 독일이 지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독일 축구 특유의 역동성이 떨어졌다. 프랑스 입장에선 기회였다. 그러나 데샹 감독은 소심한 선수운용을 펼쳤다. 첫 교체카드는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날렸다. 후반 26분 수비수 마마두 사코(24·리버풀)가 다치자 로랑 코시엘니(29·아스널)을 투입했다. 두 번째 카드가 그나마 공격적이었다. 28분에 수비형 미드필더 요안 카바유(28·PSG)를 빼고 공격적인 로익 레미(27·QPR)을 넣은 것이다. 그러나 레미는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경기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데샹 감독은 마지막 교체카드인 올리비에 지루(28·아스널)를 너무 늦게 투입했다. 후반 40분에야 부진했던 마티외 발뷔에나(30·마르세유)를 뺐다. 의아했다. 지난 나이지리아 전을 마치고 기자회견 때 데샹 감독은 "지루는 팀에 헌신적인 플레이를 한다. 수비와 공격에서 도움을 준다"며 "벤제마와 연계도 좋다"고 칭찬했던 선수다. 지루는 추가 시간이 4분이 주어져 총 9분 동안 뛰었다. 지친 독일 수비수를 상대로 공을 잘 지켜내며 기회를 만들었다. 특히 후반 추가시간에 벤제마와 2대1 패스를 통해 견고한 독일 수비라인을 무너트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짧았다.
너무 늦었던 데샹 감독의 교체카드로 프랑스는 또 독일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데샹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경기 초반 소심한 플레이를 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점점 우리 분위기로 경기를 끌고 왔지만,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28·바이에른 뮌헨)의 선방에 막혀 아쉽다"고 했다. 프랑스는 이날 경기를 주도하고도 13개의 슈팅을 날리는데 그쳤다. 유효슈팅 5개는 모두 노이어의 선방에 막혔다.
데샹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도전은 끝났지만,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 우리 선수들과 더 오래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