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34·두산)은 팀 불펜진의 든든한 기둥이다. 입단 2년차인 2004년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2005년 이후 팀의 마무리 투수로서 4년간 111세이브를 올리며 뒷문을 책임졌다. 이후에도 불펜의 필승조로 활약했다. 2005년 30세이브로 구원왕에 오른 그는 중간계투로 보직이 바뀐 뒤인 2010년에는 23개의 홀드를 기록해 타이틀을 차지했다. 전성기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두산의 허리를 지켜온 그에게 2012년 팀은 4년간 28억 원의 FA(프리 에이전트) 계약을 선사했다.
올 시즌 마무리 투수 이용찬(25)이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이탈했을 때도 정재훈이 있어 든든했다. 그런 정재훈에게 숙제 하나가 생겼다. 그는 어느덧 데뷔 12년 차 베테랑이자 현재 두산 투수들 가운데 최고참이다. 마운드에서 잘 던지는 것만 고민했던 그에게 책임감이 생겼다. 그만큼 부담도 커졌다. 이제 자신이 선배들에게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려 한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이 정재훈을 만났다. 두 사람은 윤 위원이 2004년 두산의 투수코치로 부임하면서 사제지간의 인연을 맺었다. 최고참 투수의 책임감과 불펜 투수 정재훈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이하 윤)="벌써 (우리 나이로) 35살이 됐어.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 정재훈은 어떤 선수였어."
정재훈(이하 정)=“역삼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했는데 그 전부터 야구를 정말 좋아했어요. 의정부 쪽에 살았는데 중학교 형들하고도 많이 했죠."
윤="아버지도 좋아하신 걸로 아는데."
정=""저도 좋아하고 아버지도 좋아하셨죠. 어느 날 야구를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역삼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죠. 그때까지만 해도 프로야구처럼 매일 경기만 하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윤="처음부터 잘하는 선수였어?"
정="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민망하지만 센스는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소질도 좀 있었고요."
윤="(김)승회랑 같은 학교였잖아. 승회는 어땠어?"
정="당시에 (김)승회랑 저랑 원투펀치였죠. (웃음) 학교 전력이 좋지 않아서 큰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재미있게 야구를 했던 것 같아요."
윤="보통 초등학교 때도 야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들을 하던데. 힘들잖아. 기대했던 것과도 많이 다르고."
정="저도 첫날부터 후회했죠. 제가 너무 뭘 몰랐어요. 경기만 많이 할 줄 알았는데 훈련이 더 많으니까요. 생각하고 너무 달라서 힘들기도 했죠. 그런데 감독님께서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설득해주셔서 지금까지도 하고 있네요."
윤="마음을 다잡은 계기가 있었어?"
정="며칠 동안은 정말 하기 싫었어요. 그런데 제가 입단하고 며칠 뒤에 성동초등학교랑 연습경기를 했는데 선배 한 명이 학교 유리창을 깨뜨리는 우월 홈런을 친 거에요. 정말 멋있더라고요. 사실 경기는 1-10으로 졌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야구를 계속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윤="초등학교 시절에도 유격수와 투수를 모두 했었나?"
정="초등학교 때는 한 투수가 3회 이상 못 던졌으니까요. 당연히 야수도 했고요. 중학교 때도 유격수와 투수를 번갈아 가면서 했죠. 어떤 분들께서 저를 야수 출신 투수라고 알고 계시는데 그건 고3 때 팀 사정상 야수로 나설 수밖에 없어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아요."
윤="고등학교(휘문고) 때부터 본격적으로 투수였다고 보면 되는 거네?"
정="그렇죠. 제가 고1 때는 3학년 선배들 중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요.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 던지는 데 눈을 떴죠. 투수가 하고 싶었어요. 성균관대로 간 것도 투수가 하고 싶어서였어요. 다른 대학에서는 모두 야수로 와주길 바랬죠."
윤="나도 당시에 신입생이었던 너를 본 기억이 나네. 당시에 성대에 좋은 투수가 많지 않았어. 그래서 감독도 고민은 했던 모양이야. 너를 유격수로 쓸지 투수로 쓸지를 말이야. 그래서 내가 반드시 투수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어. 그런데 당시 그 좋던 커브는 어디로 간 거니?”
정="그 커브가 남아 있는 게 없네요.(웃음)"
윤="주무기인 포크볼은 언제부터 던진 거야?"
정="대학교 1학년 때부터 던지긴 던졌어요. 위원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폼이 지금과 달랐죠. 당시엔 많이 와일드했어요."
윤="팔 스윙이 컸다고 할까? 내가 평가했을 때는 부상 위험이 있는 폼이었어."
정="그저 세게만 던지려고 했어요. 결국 1학년, 2학년 때 부상도 당했죠. 그래서 3학년 때부터 스스로 폼을 바꾸려 했어요. 간결하게 던지면서 타점은 높였죠. 그 전에 포크볼을 던졌을 때는 공 놓는 타점이 낮다 보니까 투구수도 많아지고 타자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죠. 그런데 폼을 바꾸고 난 이후엔 포크볼이 원하는 대로 잘 들어갔어요."
윤="당시에 네가 크지 않은 체구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내리찍으려고만 했던 것 같아. 세게 던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 말이야."
정="저도 처음에는 구속은 잘 나왔다고 만족했는데 공 빠르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한 번은 경희대와 경기에서 9이닝 동안 180개의 공을 던졌어요. 그 다음에 팔꿈치 인대가 손상돼서 또 쉬었죠. 그때 폼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커졌고 이후 직구 스피드는 이전만큼 안 나왔지만 제구력은 좋아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윤="그렇게 한 번 성장한 뒤 프로에 들어왔는데 첫 해 성적이 좋지 않았어. 부상이라도 있었나?"
정="사실 당시에 저는 (김)성배, (노)경은이, (전)병두 같은 입단 동기들에 비해 크게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정말 잘해서 동기 중에 유일하게 개막 엔트리에 들어갔죠. 그런데 삼성과의 개막전 전날 발목을 접질린 거에요. 퉁퉁 부은 발목을 코치님께 보이고 혼도 많이 났죠. 그러곤 결국 2군에 내려갔어요."
윤="1군엔 언제 다시 올라왔어?"
정="부상도 있었지만 욕심도 과했던 것 같아요. 사실 2군에 내려가서 7~8일은 걷지도 못했어요. 그만큼 상태가 안 좋았는데 열흘 지나고 다시 콜업 지시를 받은 거에요. 어린 마음에 ‘지금 못 올라가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당시 2군에 손혁 형이 같이 있었는데 ‘지금 올라갔다가 부진하면 다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라며 말렸어요. 맞는 말이죠. 그런데 그 말이 제 귀엔 안 들렸던 거에요. 결국 2~3경기 형편 없이 던지고 다시 내려왔죠."
윤="다시 2군에 내려가서는 어땠어? 부상 여파는 없었어?”
정="아무래도 무리가 있었죠. 내려온 다음날 바로 선발로 등판했는데 팔이 안 올라가는 거에요. 결국 9월까지 계속 쉬게 됐죠. 9월에 엔트리가 확대되면서 다시 등판 기회가 왔지만 이번엔 또 팔꿈치에 부상이 왔어요. 아시죠? 팔꿈치에서 종이 울리는 느낌? 그래서 다음해 막 부임하셨던 김경문 감독님과 코치님이셨던 (윤석환) 위원님께 패기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었죠. 이전 경험으로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는데 보여드린 것도 없이 아프다고 해서 죄송했어요."
윤="당시에 김 감독님과 나도 무리시킬 생각은 없었어. 네 이미지가 똑 부러지는 게 있었거든. 술을 즐겨 마시는 선수도 아니었기에 네 다짐을 믿었지. 당시에 손혁, 이경필, 구자운 같은 좋은 선수들이 버텨주고 있었고…."
정="그래도 패기 있는 모습을 못 보여드린 것 같아 죄송했죠."
윤="2005년 마무리 투수로 보직 전환을 했어. 혹시 그 전에 마무리 투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어?"
정=“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당시에 마무리는 구위가 좋은 투수들이 많았어요. 그런 선수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죠. 당시에 저는 추격조로 나서거나 선발진에 공백이 생기면 그 자리를 메우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열심히 해서 '선발 투수를 노려봐야겠다'라는 생각은 했었지, 마무리 투수는 전혀….”
윤="정작 잘 해냈잖아"
정="야구가 정말 재미있었죠. 저랑 전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지막 타자를 잡고 첫 세이브를 올렸을 때는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어요. 경기도 기억해요. 잠실 KIA전이었죠."
윤="세이브를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기분이지."
정="2005년에는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가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 경기를 마무리하고 승리를 지켜내면 마치 제가 1회부터 9회까지 다 던진 기분이었어요. 물론 실패했을 때는 타격이 컸지만 성공했을 때는 '정말 좋다'고 생각했죠."
윤="힘들거나 부담을 느껴본 적은 없어?"
정="2005년과 2006년에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2007년부터는 아웃카운트 하나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나갈 때가 있었어요. 이전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당시에 세이브를 챙겨 자신감을 심어 주시려는 배려였던 건 알아요. 그래도 마무리 투수라면 1이닝을 안정감 있게 막아줘야 하는데 코칭스태프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든 시기를 겪었죠."
윤="그래도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서 2011년 말에 두산과 4년간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했어. 중간 계투 요원으로 FA 요건을 채우는 것이 쉽지 않잖아. 부상 없이 꾸준히 잘해왔다는 증거지. 야구 인생에 큰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
정=“그런 점이 장기계약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제외한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분이 좋았죠. 그런데 이듬해 부상을 당해서 통으로 한 해를 쉬어서 정말 죄송했죠."
윤="정확하게 부상당한 부분이 어디였지?"
정="'극상근'이라고 어깨 회전근 중 하나에요. 야구선수들은 조금씩은 극상근이 손상돼 있는데 저는 한 번에 손상이 컸었다고 하더라고요. 최소한 1년 정도는 재활이 필요하다고 했었죠."
윤="마음 고생을 많이 했었네."
정="저한텐 작년과 올해 야구를 하는 것이 너무 고맙고 행복해요. 저는 정말 다시 재기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말이 1년이지 재활하는 기간은 정말 길잖아요. 다친 곳이 나아도 과연 '내가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경기 하는 선수들도 부러웠고요. 당시에 TV 중계화면으로 부진한 투수들을 보면 '나는 저런 아쉬운 감정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그렇게 부상과 재활, 재기를 반복했더니 어느덧 두산 투수진에서 최고참이 됐어. 후배들뿐 아니라 코칭스태프와의 관계에서도 쉽지 않지?"
정="본의 아니게 최고참이 됐네요. 어려운 부분들도 좀 있죠. 저는 계속 중간 위치에 있었는데 갑자기 최고참이 되다 보니 부담이 생겼어요. 팀이 부진하면 저의 책임인 것 같고 어떤 제스처라도 해야할 것 같은 거죠."
윤="'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팀을 이끌어야 해."
정="요즘엔 성적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시도라도 해야할 거 같아요. 압박이 생겼어요."
윤="나도 밖에서 보면 (정)재훈이가 비슷한 연차도 없고 나서는 성격도 아니어서 걱정은 되더라고. 바로 밑에는 누구지?"
정="3살 아래 (이)현승이가 있죠. 그래도 성격이 좋아서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잘해주고 있어요."
윤="최고참으로서의 역할도 따로 있지. 그래서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있어?"
정="위원님 말씀대로 제가 나서는 성격은 아니죠. 그래서 '최고참이면 일단 나부터 잘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연습도 열심히 하고 마운드 위에서 결과도 좋게 내는 거죠. 그랬을 때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도 효과가 클 거라고 생각해요."
윤="코치가 못하는 역할도 네가 해야한다고 봐. 원래 두산이 선배들이 후배들을 잘 아우르는 팀이잖아. 이제부터라도 그 역할을 잘해서 두산의 색깔을 찾아야겠지. 그것이 권명철 코치를 도와주는 길이기도 하고."
정="(이)재우형이 자리를 비우면서 그 전까지 최고참을 통해서만 듣던 이야기를 제일 먼저 받고 직접 후배들에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이제껏 야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야구 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야구보다 더 힘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됐죠. 아직은 최고참으로서 해야할 일들을 올해 처음 접하고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있을 거에요. 그래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죠."
윤="내년에 한 시즌 더 치르면 FA 계약도 끝나. FA도 한 번 더 해야지. 컨디션은 어때? 내가 봤을 때는 점차 나아지는 것 같은데?"
정="이제는 예전처럼 한 번에 좋아지진 않아요. 그래도 제 생각엔 큰 틀에서는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나았고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좋다고 생각해요."
윤="2007년 시즌을 앞두고 공인구가 국제 규격에 맞춰 커지면서 네가 잘 던지던 포크볼 컨트롤에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어. 좋았을 때는 떨어뜨리는 위치까지 마음먹은 대로 컨트롤이 잘 됐잖아. 그런 포크볼을 던지는 투수도 많지 않았는데 강점이 흔들렸어. 지금은 어때?”
정=”제가 원하는 위치에 공을 떨어뜨리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아요. 그런데 마음가짐을 바꿨어요. 처음에는 ‘왜 잘 안되지?’하고 고민했는데 지금은 계속 하나만 고집하면서 안되는 것에 파고 들기보다는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려고 해요. 이제 나이도 먹었고 몸 상태도 예전과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다른 구종도 던져봐요. 슬라이더도 던지고 커브도 던지죠. 물론 포크볼이 좋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사고의 유연함을 가지려고 하는 거죠. 변화를 주는 것이 스스로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서 경쟁력도 생기는 것 같아요.”
윤="중간 투수간에 경쟁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면 서로 좋은 효과가 있을 텐데."
정="저도 항상 후배들한테 '중간 투수는 혼자 잘해도 소용없다. 여러 명이 함께 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해주죠. 필승조가 흔들렸을 때 다른 선수들이 잘해서 치고 올라오면 팀도 강해지고 경쟁심 때문에 개개인도 분발할 수 있으니까요."
윤="‘나는 마무리 투수였다’는 자부심이 있나? 나중에 아들이 어떤 투수였냐고 묻는다면?"
정="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마무리 투수였으니까. 당시에 제 모습을 잊지 않아야겠죠."
윤="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동안 111세이브를 올렸어. 이제는 중간 투수로 나서고 있으니까 홀드도 많이 해야지?"
정="이제 100홀드(11일 현재 58홀드)를 목표로 해야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윤="어떤 야구선수로 기억되고 싶어?"
정="야구 선수로서는 계속 경쟁력이 있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투수는 경력이나 나이보다는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만이 갖고 있는 변화구, 또는 직구, 특이한 투구폼 등 어떤 것이든 상관없죠. '이 상황에는 정재훈을 내보내야 한다'는 인식을 주고 싶어요. 그렇게 최대한 오래 야구하는 것이 목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