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맏이는 책임감을 안고 산다. 고단한 길의 맨앞에 선다. 뒤에서 따라오는 동생들을 위해 흔적을 남긴다. 프로야구 9개 구단 응원단장 중 최고참이자 연장자인 KIA의 김주일(37)씨도 그랬다.
김주일 응원단장은 2002년 현대를 시작으로 야구장 응원석 앞 단상에 올랐다. 이후 두산을 거쳐 KIA의 응원단장으로 활약 중이다. 어느덧 13년차 '베테랑'이 된 그는 화려함을 좇는 후배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맏이이고 최고참이죠. 화려함보다는 즐거움과 보람을 위해 응원단장을 시작하는 후배들이 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김주일 응원단장을 만났다.
-어느덧 13년차세요. 9개 구단 중 맏이시죠. 경력도 가장 길어요.
"가장 나이가 많다는 말을 들으면 여러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제가 얼마나 오래 어떻게 이 일을 하느냐에 따라 후배들이 가는 길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고요. 동생들이 저를 보면서 '주일이 형도 저 나이에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도 잘해야지'라며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겠다는 마음도 있고요."
-여러 가지 생각 중 또 다른 것은 뭔지 궁금해요.
"한편으로는 '나이 들어서 저것밖에 못한다'는 눈총을 받을까 염려도 돼요. 일부 팬 중에는 '그 나이 먹어서 아직도 응원단장을 하냐'는 댓글을 다는 분도 계세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요. 매일 오전마다 헬스 클럽에 가서 3시간씩 운동을 하고 체력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평소에는 목소리도 작게 내고요. 대신 단상에서 더 '방방' 뛰고, 무리해서라도 큰 소리로 외치려고 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응원단장과 치어리더가 인기 있는 직종으로 떠올랐어요.
"겉보기는 화려한 직업일 수 있어요. 경기 중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응원을 이끌죠. 또 이렇게 언론사와 인터뷰도 하고요. 잘 모르는 분들은 저희가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입문하는 후배는 2~3년 안에 그만 두고 나가요. '실상을 알고 보니 너무 달랐다'는 말도 하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안에서 느끼는 응원단장은 어떤 삶인지 궁금하네요.
"저희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큰 돈을 벌지 않아요. 봄부터 가을까지 프로야구에서 응원단장을 하고, 비시즌에는 프로배구와 농구단에서 뛰어야 해요. 그렇게 해야 남들처럼 가정을 이끌고 살 수 있는 정도에요. 저희는 촉탁 계약직 신분이에요. 한 후배는 응원단장을 그만두기로 결정하면서 '내가 몇 살까지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했어요. 고용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뜻이죠. 여기에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때로는 원정길에도 올라요. 늘 최고의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갈고 닦아야 오래 살아 남을 수 있어요. 이 일은 돈이나 명예가 아닌, 즐거움과 재미를 느껴야 할 수 있어요."
-이따금 타 구단 응원단장과 모이기도 하나요?
"롯데 조지훈, 한화 홍창화 단장과는 전국 대학응원연합회 선후배 사이에요. 이따금 서울 원정길에 가면 서로 만나서 그간 말 못한 이야기나 어려움을 털어놓곤 해요. 지방 경기 때문에 9개 구단이 모두 모이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다들 얼굴도 알고 대화도 해요. 단체 카톡방도 있고요.(웃음)"
-응원단장들의 단체 카톡 방에서는 무슨 대화를 주고 받을지 궁금해요.
"옛날에는 나만의 노하우를 남들에게 알려주지 않으려는 분들도 계셨어요. 저 역시 그랬고요. 하지만 제가 맏이가 되고 나니 제가 알고 있는 걸 타 구단 후배 단장들에게도 전해주게 돼요. 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니까요. 가령 응원가에는 '안타'라는 가사가 들어가는데 그 선수가 번트를 대는 돌발상황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관중을 이끌고 응원을 바꾸는지 같은 것을 전해줘요. 저야 이제 경험이 쌓여서 그럴 일이 없지만, 2~3년차 후배들은 그런 게 고민이거든요."
-KIA가 어렵게 시즌을 통과하고 있어요. 자꾸 질 때, 단장도 힘이 들 것 같아요.
"요즘은 4연승을 달리기도 해서 응원할 때 힘이 더 나네요. 경기가 잘 풀리지 않고 연패를 할 때는 팬들께 '여러분. 공부 못한다고 때리면 엇나가기밖에 더 합니까. 이럴 때일수록 응원하고 칭찬해 주시면 팀도 삽니다'라고 부탁을 드려요. 아무리 그래도 '타이거즈'의 팬들이세요. 다들 따라 오시죠. 저는 응원단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밀당' 이라고 생각해요. 관중과 선수단을 연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해요. 연애도 5년 하면 식상해져요. 응원단장은 오죽하겠어요. 저도 응원가를 개발하고 새로운 율동과 응원 구호를 만들면서 '밀당' 중이에요."
-팬이나 KIA 선수단에 바라는 점은 없으신가요.
"이따금 욕설을 하는 분들이 있으세요. 물건을 던지시거나 장내에서 버너로 음식을 만드는 분도 있으세요. 시대가 변했어요. 프로야구는 이제 가족 스포츠로 발전했어요. 자녀들이 보고 있는데 욕을 하거나 거친 행동은 안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또 요즘 9개 구단 선수 중에 경기 뒤 관중께 성의 없이 인사를 드리는 분들이 계세요. 사실 팬들은 선수들이 허슬 플레이를 한 뒤 관중석을 향해 손 한 번 흔들어주는 모습에 보람을 느껴요. 선수들이 그런 부분에 신경을 좀 써줬으면 합니다."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씀은요.
"화려함만 따라서 이곳에 들어오면 '속빈 강정'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저희는 억대 연봉자도 아니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이 일로 유명해지겠다는 마음은 내려놓았으면 해요.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중들의 응원 방향이 달라져요. 또한 팀의 경기 결과도 달라지기도 하죠. 응원단장이 하는 일은 책임감이 필요해요. 프로의식과 사명감을 가지는 후배가 많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