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박경수(30)는 2003년 성남고 졸업 뒤 계약금 4억3000만원에 LG 1차 지명 신인으로 입단했다. 공·수·주를 모두 갖춘 대형 유망주로 큰 기대를 모았다. 2005년을 제외하고 매 시즌 80경기 이상 출장했다. 그러나 유격수와 2루수를 오가며 공격과 수비, 어느 것 하나 확실한 능력을 선보이진 못했다.
박경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마친 뒤 올 시즌 복귀했다. 시즌 초반에는 백업 요원이었지만 최근에는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하며 팀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올 시즌 성적은 77경기에서 타율 0.231이지만, 9월만 놓고 보면 18타수 8안타 타율 0.444로 전체 3위에 올라있다. 양상문(53) LG 감독이 "박경수가 잘해주고 있다"고 칭찬하는 횟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06~2007년 LG에서 한솥밥을 먹은 마해영(44) 베이스볼긱 위원이 잠실구장에서 박경수를 만났다.
마해영 베이스볼긱 위원(이하 마)="몇 년 차야?"
박경수(이하 박)="12년차입니다."
마="군 복무를 제외하면 LG에서 10년째 뛰는 거네. 어때? 나는 절실함이 느껴지는데."
박="그런 것도 있습니다. 군 전역하고 첫 시즌이잖아요. 나름대로 많이 준비한다고 훈련했는데 확실히 혼자 하는 것과 단체 운동은 달라요. 그런데 스프링캠프부터 햄스트링을 다쳐 중도 귀국했는데, 곧 일본 오키나와로 합류하고선 또 다쳤어요."
마="너무 빨리 합류했네."
박="저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급했던 점도 있었죠. 2년 공백이 있었던 만큼 남들보다 더 준비했어야 하는데 다쳐서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시즌 시작 후에 보니 몸과 생각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실전감각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적응하는 데 힘들었어요."
마="입단 초기를 돌이켜보면 어떤 점이 부족했던 것 같아?"
박="그 때랑 비교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아요."
마="오만?"
박="그런 것보다 막연히 '나는 잘 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지금은 '뭘 준비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감독님이나 코칭스태프도 많이 신경 써주시고. 입대 전에는 저를 잡아서 지도하시곤 했는데, 이번 스프링캠프에는 그런 게 전혀 없는 거에요. 한편으로 서운하면서도 소외된 느낌을 많이 받았죠.(웃음) 이제는 내가 혼자 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느꼈죠. 선배들을 보면 스스로 운동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나도 이제 스스로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구나라고 느꼈어요."
마="코칭스태프의 조언을 무조건 따라갔다는 얘기야? 그러면서 고등학교 때 잘했던 박경수의 장점은 없어지고?"
박="아마추어 때랑 달리 프로에선 '이런 스타일로 가지 않으면 넌 절대 못 살아 남는다'고 주문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는데 제 것을 많이 놓쳤던 것 같아요. 그 때는 코치님의 주문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제 이해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마="거의 매년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됐어. 그런데 막힌 게 뭐야?"
박="정신적인 부분이 가장 크죠. 제 것이 없으니까 어떤 고집을 못하는 거에요. 잘 맞을 때는 좋지만 슬럼프가 길어지면 '이 폼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경기에 따라 타격폼이 많이 왔다갔다 했어요."
마="예를 들면 변화구가 좋은 투수면 찍어놓고 치자, 빠른 공 투수면 직구만 노리자 이런 식으로?"
박="그렇죠."
마="고등학교 때 다친 적 있어?"
박="없습니다."
마="프로 와서 많이 다쳤지? 이유가 뭘까?"
박="(잠시 고민하며) 준비?"
마="내가 볼 땐 준비 잘하던데. 네가 연습을 너무 많이 해. 성적이 나지 않으니까 많이 할 수밖에 없겠지. 나랑 있을 때도 오키나와에서 엄청 훈련했잖아. 저녁에 특별 타격 훈련하고 웨이트 트레이닝하고. 경기 나가면 2루수도 보고, 유격수로도 나가고. 경기 안 나가면 펑고 엄청 받았고, 그러다 경기 나가서 다이빙 캐치하다 다치고. 너무 많이 했어. 네 체력을 네가 알잖아. 몸은 피곤해도 말도 못하니까."
박="맞습니다."
마="네 절실함은 알겠는데 절대 무리하지 마. 준비는 좋은데 불안해서 너무 많이 하면 다친다니까.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는 건, 내가 대한민국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진 않았어. (이)승엽이도 있고, (양)준혁이 형도 있는데. 내가 제일 잘한 건 안 다친 거야. 100% 주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안 아파야 경기에 나가잖아. 그래야 대주자든 대수비든, 대타든 나갈 수 있지. 그러다가 기회 잡고 선발로 나가잖아. 힘들 땐 훈련은 쉬고 경기에 나가겠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전에 못했던 거잖아."
박="저는 상상을 할 수 없는.(웃음) 요즘에는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코칭스태프에서 조절해줄 때도 있고, 몸이 피곤할 땐 선수단에서 준비를 해주시더라고요. 이전이랑 달리 그런 팀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한편으론 이런 게 선수들이 정말 원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냥 쉬라고 해서 쉬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서 치료 혹은 준비에 더 할애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마="선수들이 훈련 많이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박병호(넥센)가 3년 연속 잘하잖아. 병호한테 연습량 많냐고 물어봐."
박="저도 병호랑 친하니까 가끔 연락 주고 받거든요. 병호가 '형이 꼭 잘 됐으면 좋겠다'며 '형, 너무 운동 많이 하지 말고 그 시간에 안 다칠 수 있는 보강훈련법을 찾으라'고 그래요. 아니면 상대 전력 분석이든. 그래서 물어봤어요. '내가 봤을 때 너는 이적 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달라진 계기가 뭐냐'고 물어봤는데 '형,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자신감이에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자신감. 아~ 야구는 멘틀 싸움이구나 싶었죠."
마="병호는 쓸데 없이 운동 안 하잖아. 못해도 팀에서 내보내주니까 흔들리지 않는 거고. 넌 절실해진 것도 있는데 아직도 갈등하고 있고. LG에 같이 있을 때 너를 보면 느낀점은 타석에서 수백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기억나니? '너 초구에 왜 안쳐'라고 그랬잖아."
박="기억납니다. 많이 하셨어요."
마="그때 뭐라고 답했어?"
박="하위타순이나 2번타순에 많이 들어갔으니까 출루에 신경쓴다고 그랬습니다. 선배님, 잘 치는 타자 보면 초구 실투 안 놓치고 과감하게 타격하잖아요. 저도 가끔씩 하는데 결과가 좋을 때가 있고 안 좋을 때가 있잖아요. 결과가 안 좋으면 그 타석이 너무 아까운 거에요. '너무 허무하게 죽었나'라는 생각도 들고. 정말 치기 좋은 코스에 공이 들어오면 저도 무의식중에 더 세게 치려고 더 완벽하게 하려다 오히려 결과가 안 좋아질 때가 있어요. 결국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걸 빨리 잊어야 하는데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그래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마="지금도 초구 타격을 고민해?"
박="아니요. 칩니다. 최근에 밴덴헐크(삼성)의 직구가 157㎞, 슬라이더가 140㎞대 초반 나오더라고요. 그러면 '공을 많이 보고 투구수를 채워서 빨리 내려보내자' 그러는 게 일반적인데 제 생각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렇게 되면 너무 허무하게 내용 없이 아웃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마="일단 투수는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들어오는데 그게 실투가 많아. 무조건 쳐야 돼. 투 스트라이크에서 타격하면 안타 나오나? 초구부터 방망이를 휘두르고 타이밍이 맞으면 상대가 긴장하게 되지. 그럼 변화구 승부도 하고 그러다가 투구수 많아지지. 오히려 투수가 도망가게 만들어야 하는데 (초구에 가만히 있으면 상대를) 너무 편하게 한다는 거지.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
박="아~, 진짜.(오래 뜸을 들이며) 그런 기회가 온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마="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박="(자신있게) 네."
마="돌아가면 제발 운동 너무 많이 하지 마."
박="하하하. 10년 동안 뭐했나 싶기도 하고. 만약 돌아가면 진짜 야구를 알고,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준비부터 열심히 할 것 같습니다."
마="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병호가 1학년이었나. 박병호, 정의윤 등 LG에 1차 지명된 선수들은 모두 열심히 했어. 가끔식 기사 댓글 혹은 반응을 보니?"
박="한 번 계기가 있었어요. 당시 안 좋은 평가를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신경 안 썼는데 집에서 우연치 않게 기사를 보게 됐어요. 그게 많이 본 기사 중 하나였는데 제 이름이 있으니까 보게 됐죠. 솔직히 저는 프로선수니까 결과로 평가받는 건 당연하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이 힘들어했죠. 아내도 괜찮은데 부모님이 받는 상처는 좀 힘들더라고요, 며칠 힘들었어요. 주변에서 위로해주셨고 저는 '괜찮다'고 하고. 그때 우천으로 2경기가 취소되면서 뭔가 마음이 풀리더라고요. 어쨌든 야구는 해야 되고 제가 못 이겨내면 누가 해결해줄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