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보면 죽은 제갈량이 사마의를 쫓는 장면이 나온다. 28년 만에 아시아를 정복한 한국 축구에도 이에 버금가는 유쾌한 사기극이 있었다. 부상 당한 김신욱(26·울산)이 아시아를 떨게 했다.
이광종(50) 감독과 김신욱은 적은 물론 국내 기자와 팬들을 모두 속였다. 한국은 2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북한을 1-0으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28년 만에 금메달이었다. 김신욱은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에야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후반 25분 부터 김신욱을 찾던 '분석가' 이영표 KBS 해설위원도 "이러면 김신욱은 뛸 수 없는 몸상태 같다"고 한숨을 내쉴 때였다. 김신욱은 제공권으로 북한을 괴롭혔다. 경기 종료 직전 세트피스에서 임창우(22)의 결승골로 한국은 이겼다.
북한과 결승을 마치고 김신욱은 공동취재구역에서 "사실 제가 뛸 수 있다는 건 '뻥카'였다. 다친 부위가 너무 아파서 제대로 뛸 수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뻥카'는 카드로 하는 도박에서 쓰는 말이다. 거짓을 뜻하는 '뻥'과 카드의 합성어다. 카드의 패가 좋지 않으면서 돈을 크게 걸어 상대를 겁먹게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광종 감독과 김신욱 '뻥카'는 제대로 먹혔고 한국의 무실점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사기극의 전말은 이렇다. 김신욱은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로 뽑혔다. 196cm의 장신에 득점력까지 갖춰 밀집수비를 하는 아시아팀들을 깨는데 제격인 선수였다. 이광종 감독도 "김신욱이 들어오면 밀집수비를 깨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고 말하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김신욱은 조별리그 2차전에서 부상으로 쓰러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거친 수비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이날 왼쪽 측면 공격수 윤일록(22·서울)도 인대를 다치며 전열을 이탈했다.
김신욱의 상태는 애매했다. 큰 부상은 아니라고 했다. 라오스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만 쉬면 출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6강 홍콩 전과 8강 일본전에 김신욱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 팀은 김신욱이 나올 것을 대비하고 두터운 수비벽을 구축해 놨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무게를 둔 전술을 두고 나온 것이다. 한국은 밀집수비를 뚫는 공격에서는 애를 먹었지만, 수비는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었다.
홍콩 전, 일본 전을 마치고 이광종 감독은 똑같은 말을 했다. 그는 "김신욱의 몸 상태는 나쁘지 않다. 다음 경기에서는 김신욱이 나올 수 있다. 몸상태를 보고 투입시기를 결정할 것이다"고 했다. 김신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 "회복은 끝났다. 감독님의 출격 명령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신욱은 뛸 몸 상태가 아니었다. 이광종 감독은 끝까지 그를 지켜줬고 마지막 15분을 남기고 투입해 극적인 드라마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