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원 최영아(32) 씨는 최근 화장대를 최근 중저가 더모코스메틱 브랜드와 로드샵 브랜드로 채우기 시작했다. 더모코스메틱의 경우 합리적인 가격대에 훌륭한 제품력을 자랑하는 제품이 많고, 로드샵 브랜드 매장에서는 기초 화장품에서부터 색조까지, 유명 명품 화장품과 비슷한 성분과 효과의 '저렴이 버전'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에 효능은 비슷하다 보니 지금까지 '명품' 브랜드 화장품에 속았다는 기분까지 들 정도다.
#2. 주말 마다 등산을 즐기는 회사원 김지환(41) 씨는 더 이상 '신상' 등산복을 구입하지 않는다. 최대 70%까지 할인해 판매하는 이월상품과 신상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봄, 가을 같은 간절기 상품의 경우 신상이 나오는 주기가 짧아 더 이상 비싼 돈을 들여가며 새로 나온 제품을 살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저렴한 비용과 품질을 동시에 중시하는 '프라브족'이 떠오르고 있다. 프라브족이란 '부가가치를 새롭게 깨달은 사람들(Proud Realizers of Added Value)'이라는 말의 약자로,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명품이나 브랜드 자체에 연연하지 않고 제품의 실제 가치를 중요시하는 실속파 소비자 '프라브족'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프라브족'이 돋보이는 분야는 단연 화장품 시장이다. 랑콤, 비오템, 키엘, 슈에무라 등 수입 화장품 브랜드들이 지난 8월을 기점으로 면세점이나 백화점 제품 가격을 올리면서 비슷한 품질의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로 발길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실제로 소비자시민모임이 안티링클 화장품을 대상으로 비교 평가를 진행한 결과 유세린과 미샤가 고가의 수입화장품을 제치고 1, 2위를 기록하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시판 중인 기능성 화장품 12개를 대상으로 주름개선과 수분효과, 사용자 테스트, 제품표시 등 4개 분야에 걸쳐 소비자 평가를 진행했다. 그 결과 유세린의 '하이알루론 필러 데이 크림'이 가장 우수한 제품으로 선정됐다. 유세린은 주름개선, 수분효과, 사용자 테스트, 제품표시의 모든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어 우수한 제품력을 인정 받았다.
화장품 프라브족은 고가 브랜드 제품과 유사한 발색이나 효과를 내는 저가의 화장품을 '저렴이 화장품'에도 호의적이다. 배우 전지현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사용해 큰 화제를 일으켰던 입생로랑의 '천송이 립스틱'이 불티 나게 팔려나가자, 비슷한 발색의 아리따움 '허니 멜팅 틴트'도 덩달아 인기를 누렸다. 피지를 줄여주는 효과로 유명한 메이크업포에어 HD파우더만큼이나 이니스프리의 노세범 파우더도 수년 째 '스테디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가격은 각각 5만원과 6천원으로 거의 8배 이상 차이가 난다.
'스타' 프라브족도 있다. 최근 홈쇼핑 복귀를 선언한 스타 쇼호스트 유난희도 프라브족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 "고가의 영양 크림보다 저렴한 '파란통' 니베아 크림을 선호한다"고 말해 소비자들을 깜짝 놀래 키기도 한 그녀는 최근 발간한 저서를 통해 "명품은 값비싼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여배우 엠마 왓슨은 트위터 계정을 통해 헤어스프레이, 드라이 샴푸, 메이크업 브러시 등 대부분 중저가 브랜드인 자신의 코스메틱 제품을 공개, 당당히 '프라브족' 임을 알리기도 했다.
프라브족의 특징은 제품을 구입하기 전 검색을 통한 정보 수집이 필수라는 점이다. 한 프라브족 소비자는 "새롭게 뜨고 있는 값비싼 명품 화장품을 발견하면 바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한다. 기초 화장품에서부터 색조까지, 유명 명품 화장품과 비슷하거나 더 좋은 성분과 효과의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광고 등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에 의존하기보다는 새로운 서비스, 제품을 직접 경험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상품 리뷰에 대한 의존도도 높고, 성분 분석도 전문가 못지 않다.
'프라브족'의 출현과 덩달아 'B급 상품'도 인기다. 다양한 유통 채널의 정보를 수집, 비교 분석 후 품질과 가격을 고려해 구매하는 패턴이 B급 상품 선호로도 이어지는 것.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흠집이 있는 제품, 반품된 제품 등 필요한 제품을 값싸게 구입하려는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출시된 지 오래됐지만 제품력에 별반 차이가 없는 이월상품도 인기다.
반면 백화점 이용은 하락 추세다. 실제로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조사한 결과 2014년 상반기 백화점 이용객 10명 중 3명(31.6%)은 예년보다 백화점 이용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반면 과거에 비해 백화점을 많이 찾는다는 소비자는 15.2%에 불과했다. 백화점 이용이 감소했다고 밝힌 소비자들은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가격이 비싼데다가(69.3%, 중복응답), 모바일쇼핑과 해외직구 등 다양한 유통채널이 새로 생겨난 것(63%)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비슷한 품질에 저렴한 제품을 좇다 보니 너도나도 '미투' 제품을 쏟아 내고 있다는 점이다. 화장품은 물론이고 패션, 가전에까지 미투 논란이 거세다. 미투 제품은 소비자에게 당장은 이득일 지 모르지만, 연구 개발자들의 의욕을 꺾고, 브랜드 차별성이 떨어져 결국 시장 경쟁력도 잃게 만든다. 업계의 윤리성을 떨어트려 시장 전체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브족'의 출현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바이어스도르프 코리아 마케팅부 이마리 과장은 "모바일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보에 대한 접근과 수집이 더욱 간편해진만큼 적극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기반으로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 패턴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며 "'프라브족' 같은 스마트 컨슈머들을 사로잡기 위해선 단순히 마케팅 비용을 늘리는 것보다는 기술과 성분, 품질로 승부하고 가격은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