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구단에 입단했으나 1군 기록 하나도 없이 방출당했다. 벼랑 끝에서 잠시 방황도 있었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야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 가닥 기회인 트라이아웃, 입단테스트를 거쳐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다시 받아든 유니폼에는 신생 구단 NC 다이노스가 새겨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오로지 야구와 훈련에만 몰두해 1년이 지났고, 2군 무대에서 다시 출발했다. 앞만 보고 달리자, 난생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다. 2014시즌, 어느새 NC 공룡 군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그리고 드디어 모든 이들이 꿈꾸는 '가을잔치'에 나선다.
3년 전 야구공을 더 이상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던 그들은 이제 대망의 포스트시즌에 첫 발을 내딛는다. NC의 마무리 김진성(29), 셋업맨 원종현(27), 내야 백업이자 대주자 스페셜리스트 이상호(25)가 그들이다.
▶ 김진성
우완 투수 김진성은 2005년 SK에 입단해 1군에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고 2년 만에 방출됐다. 군 복무 후 2010년 신고선수로 들어간 넥센에서도 1년 만에 방출됐다. 몇 개월을 방황하다 2011년 6월에 열린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NC 유니폼을 입은 케이스다. 당시 김진성을 지켜본 NC 관계자는 "140㎞ 후반의 빠른 공이 인상적이었다. 트라이아웃에서 투수 중 가장 돋보였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지난해 시련도 있었다. 2012년 퓨처스리그 세이브 1위(20개)였던 김진성은 지난해 고작 2세이브만 거두고 첫 1군 무대의 쓴 맛을 보고 실패했다. 김경문 NC 감독은 올해 다시 김진성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1년의 실패를 보약으로 바꾼 그는 57경기에 나서 3승3패 25세이브로 환골탈태했다. 구원 실패는 딱 2개였다. 김경문 감독은 김진성을 마음속의 MVP로 꼽았다. 김진성은 프로 10년만에 자신의 한자 이름(珍成)처럼 NC의 '보배같은 존재로 성공'했다.
▶ 원종현
오른손 투수 원종현은 2006년 LG에 2차 2라운드 전체 11순위로 입단했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시련을 겪었다. 2008년부터 2년간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하고 신고선수로 다시 LG로 돌아갔으나 2010년 3월에 방출의 아픔을 겪었다. 또 부상이었다. 원종현은 자비로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1년 6개월 동안 재활에 매달렸다.
2011년 10월 전남 강진에서 열린 NC의 입단테스트를 통해 아기 공룡 품에 안겼다. 당시 오버스로였던 원종현은 140㎞ 초반 구속이었다. 원종현은 지난해까지 2년간 2군에서만 뛰었다. 스프링캠프에서 최일언 투수코치가 '팔 각도를 내려서 던져보라'는 조언으로 투구폼을 바꿨다. 사이드암과 스리쿼터 사이다. 직구 구속이 140㎞ 후반대, 150㎞ 가까이 빨라졌다. 1년간 퓨처스리그에서 던지면서 완전히 새 폼에 적응됐다. 원종현은 "직구 구속이 7~8㎞ 늘어났다."고 했다.
원종현은 올해 처음으로 1군에 데뷔했고, 72경기에 나서 5승3패 1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4.11로 불펜에서 첫 번째 투수가 됐다.
▶ 이상호
이상호는 영동대를 졸업하고 2010년 롯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하지만 1년 만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2011년에는 SK에 다시 신고선수로 들어갔다. 그해 말 또다시 방출됐다. 두 번째 방출을 당한 이상호는 2011년 10월 전남 강진에서 입단 테스트를 거쳐 신고선수로 NC 유니폼을 입었다. 세 번째 신고선수 입단. 당시 NC 코칭스태프는 "내야 수비는 괜찮아 보였고, 무엇보다 발이 빠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상호는 지난해 내야 백업과 대주자로 103경기에 나서 타율 0.248(125타수 31안타) 25도루를 기록했다. 올해 조금 출장 횟수가 줄었으나 95경기서 타율 0.216(51타수 11안타) 11도루를 성공시켰다. 이상호는 경기 막판 1점차 싸움에서 '대주자 카드' 1순위다. 2년간 도루 성공률은 80%로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