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의 서'의 악랄한 악인 조관웅은 시작에 불과했다. '왕의 얼굴' 이성재가 조관웅 보다 더 섬뜩하고 무서운 선조를 연기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20일 방송된 KBS 2TV '왕의 얼굴'에서는 선조(이성재)가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왕실의 보물인 '용안 비서'를 태워버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용안비서'는 선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내내 그를 괴롭혔던 문서다. '용안 비서'에 따르면 선조의 관상이 왕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이기 때문. 이에 선조는 내내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지난 19일 방송분에서는 아들인 광해(서인국)가 왕의 상이라고 하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질투심에 아들의 관상까지 바꾸려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내관이 "'용안 비서'는 선왕으로부터 전해오는 국보다. 함부로 없애버리는 것은 아니 되는 일이다"라고 만류했지만 선조는 "임금이 되는 날, 제일 먼저 그걸 불살라 버리고 싶었다. 역모에 싹이 되는 그것을 내버려둘 이유가 없다"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불타는 '용안 비서'를 바라보는 선조의 눈빛은 보는 이의 등골까지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광기에 차 있었다.
섬뜩한 선조의 모습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선조는 조선이 오랜 가뭄에 시달리자 기우제를 지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비가 오지 않자 신하들에게 역정을 냈다. 자신의 화에 못 이겨 자신 앞에 있는 신하에게 칼까지 겨누는 모습을 보였다. 단칼에 그 신하의 상투를 베어 버리는 모습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유발시켰다.
이성재는 지난 2013년 방송된 MBC '구가의 서'로 첫 사극 연기에 도전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오로지 입신양명과 출세를 위해 혈안이 된 악인 조관웅을 연기했다. 야심을 버리지 못해 더 큰 권력과 재력을 탐하며 스스로 몰락해가는 악인의 모습을 소름끼치는 연기력으로 표현해내 눈길을 끈 바 있다.
'왕의 얼굴'에서는 그가 연기하는 선조는 조관웅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끊임없는 불안과 광증에 시달렸던 선조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아들에게까지 질투를 느낄 정도로 예민하고 광기에 서린 인물이면서도 치밀한 정치적 책략으로 왕권을 지키고자 했던 강인한 군주로서의 양면적인 모습을 미묘한 표정과 말투, 목소리의 높낮이만으로 세밀하게 표현해 냈다. 앞으로 그가 그려갈 선조의 모습에 더욱 기대가 모아 진다.
'왕의 얼굴'은 서자출신으로 세자 자리에 올라 피비린내 나는 정쟁의 틈바구니에서 끝내 왕으로 우뚝 서게 되는 광해의 파란만장한 성장 스토리와 한 여인을 두고 삼각관계에 놓이게 되는 아버지 선조와 아들 광해의 비극적 사랑을 그렸다. 매주 수·목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이승미 기자 lsmshh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