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긱 '꽃보다 야구'의 정순주 위원은 올해 9개 구단 31명의 선수들을 인터뷰했다. 그러나 올해 가장 뜨거운 사나이를 만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단일 시즌 200안타 고지를 정복한 넥센 서건창(25)과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올해 최고 시즌을 보낸 서건창은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다. 지난 3일 열린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에서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정순주 위원은 아쉬움을 이내 달랠 수 있었다. 이날 시상을 앞두고 있는 서건창을 만나 올 시즌에 대한 소감을 들었다.
정순주 베이스볼긱 위원(이하 정)="올 시즌을 정말 기분좋게 마무리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상식 올 때마다 준비 비용도 만만치 않겠는데요.(웃음)"
서건창(이하 서)="비용은 문제 되지 않아요. 상은 받을 때마다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가급적 잘 꾸미고 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불편하긴 해요. 엄청 부지런해야 하니까. 자기를 꾸미는 일은 일단 부지런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자들이 정말 힘들게 일 한다는 걸 알았어요.(웃음)"
정="상을 휩쓸고 있는데, 느낌이 비슷할 것 같아요."
서="신기록 달성이라는 같은 의미로 상을 주시지만, 받는 저는 느낌이 다 달라요. 과분한 것 같기도 해요. 확실한 건 그만큼 책임감도 든다는 거에요. 어깨가 무겁죠."
정="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이런 자리에 서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 있나요."
서="막연한 꿈은 꿨죠. 그런데 이렇게 빨리 현실에서 찾아올 줄은 몰랐어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것 같아요.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면 결과물을 보려고 하잖아요. 꿈을 높게 잡는 사람이 있고, 그냥 수준에서 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죠. 저는 목표는 항상 높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목표의 주위라도 따라가니까. 목표를 높게 보고 2년이 되든 5년이 되든 노력만 하려고 했어요."
정="그럼 올 시즌은 결과물을 봤다고 할 수 있나요."
서="아니요. 만족할 수 없어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다시 도전자의 입장으로 돌아갈 뿐이에요. 욕심을 가져야 해요. 기록에 대한 욕심, 팀 성적에 대한 욕심 등 전체적으로 다시 목표를 가져야 해요."
정="어떤 새로운 목표가 있을까요."
서="당장 내년 시즌 팀이 우승해야 해요. 도전자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목표는 잠깐이지만 내가 만족하는 느낌을 위해서 달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준비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면 만족하겠죠. 그러나 그건 진짜 잠깐이에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죠."
정="제가 2012년 아나운서를 시작했어요. 서건창 선수는 그해 넥센에서 데뷔를 했죠. 3년 동안 지켜봤는데 인터뷰 기술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웃음)"
서="박병호 형을 보고 많이 늘었어요. 형수님께서 (박)병호 형을 트레이닝 한다고 한다고 들었어요. 저는 따로 연습하는 건 없으니까. 병호 형, 강정호 형 모두 FM 식으로 답하죠? 저도 그걸 보고 배웠기 때문에 비슷한 것 같아요.(웃음)"
정="형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겠어요."
서="당연하죠. 야구는 시즌이 길기 때문에 어떨 때는 자기 것 챙기기 바쁘고 팀에 소홀히 할 수 있어요. 주위를 볼 여유도 없죠. 그러나 우리 팀 형들은 내 기록이 나오면 엄청 응원해줬어요. 큰 힘이 됐죠. 그런 형들이 있기 때문에 욕심을 버렸어요. 일단 팀이 이겨야 같이 발전하는 거니까."
정="넥센 선수들은 정말 끈끈한 모습이에요.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그럴까요."
서="저도 팀 내에서는 어린 편에 속해요.(웃음) 우리 팀은 어린 선수들이 야구만 할 수 있게 분위기가 딱 조성돼 있어요. 이택근 선배님이 정말 잘 이끌어주시죠. 위계질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잡아줄 때는 따끔하게 지적하세요. 이택근, 유한준, 박병호 형이 필요할 때 한 마디 해주시고, 신바람도 내주시고 그래요. 우리는 야구를 잘 하고, 지킬 것만 지키면 되는 거죠."
정="서건창 선수는 어떤 선배를 롤모델로 삼고 있나요."
서="워낙 다 좋은 형들이라....장점이 다 달라요. 눈에 보이는 좋은 점을 얻고 싶어요. 기술적인 부문은 물론 일상 생활에서 보이는 모습도 배우고 싶어요. 일례로 박병호 형은 야구장에 굉장히 일찍 나와요. 준비를 엄청 많이 해요. 그 점을 좋게 본다면 배워야 해요. 박병호·강정호 형과 나이도 비슷하고 가장 친해요. 가장 많이 배우고 있고요."
정="MVP 시상식에서 인터뷰를 할 때 제가 타격폼 시범을 시켰죠. 그때 박병호 선수가 웃으면서 꽃을 건네줬는데."
서="병호 형이 그런 면이 있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병호 형을 어렵게 대했거든요. 반대로 정호 형은 정말 가깝게 지내요. 어릴 때부터 봐왔거든요. 하지만 병호 형은 한 살 차이인데도 어려웠어요. 그러자 병호 형이 '나도 정호처럼 편하게 하라고'고 부탁하는 거에요. 지금은 둘 다 비슷해요.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정="MVP 소감에서 밝힌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다다라 한 걸음 더 나아간다)가 화제가 됐어요. '서건창 스피치'라고 불리던데."
서="주위에서 소스를 얻긴 했어요. 처음에는 문구를 보고 그냥 지나갔거든요. 부담스러웠고.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그렇게 큰 시상식에 상을 받으러 가서 너무 의미없이 소감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심심하면 별로니까.(웃음) 전날에는 고민을 좀 했는데, 무대에 올라갈 때 하기로 이미 마음 먹은 상태였어요. '백척간두진일보' 뜻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한 마디로 함축돼 있어서 택했어요."
정="신인왕을 받을 때는 조금 울먹였죠. 이번에는 담담하던데."
서="신인 때는 진짜 아무 것도 몰랐어요. 눈으로 보고 배운 것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병호 형이 MVP 받는 걸 봤잖아요. 눈으로 보고 느낀 게 있었죠."
정="서건창 선수의 어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200안타를 기록하고 나서 제가 방송 인터뷰에서 '사랑한다'를 요청했는데 해주셨어요."
서="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고생하셨는지 아니까요. 사실 학창시절에는 고생하신지는 알았지만 몸으로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나 제가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와 보니까 어머니가 '어떻게 그렇게 하셨는지', '어디서 뭐가 나와서 나를 뒷바라지 하셨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부모님이 고생하시는지 몰라요. 사회에 나와봐야 확실히 느끼죠. 어머니는 큰 반응이 없으세요.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늘 똑같으세요. 감사하죠. 제 입장에서는 편해요."
정="바뀐 타격폼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보는데."
서="타격폼의 틀을 바꾼 건 아니에요. 스프링캠프에서도 이런 느낌으로 타격을 했거든요. 완전히 틀을 바꾼다면 이렇게 좋은 성적은 힘들었을 것 같아요. 바꾼 게 아니라 교정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시즌 초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방향을 찾았어요. 중심을 최대한 아래 쪽에 두려고 노력했어요. 편한 걸 찾아보니 이렇게 됐어요. 인위적으로 폼을 만든 게 아니라 하다보니 준비 동작이 만들어졌어요."
정="처음에는 주위의 평판이 좋지는 않았어요."
서="그런 점이 혼자 할 수 없다는 거에요.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조언이 들어가면 흔들리는 걸 잡을 수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허문회 코치님이 큰 도움을 주셨어요. 제가 흔들리고 다른 걸 하려고 하면 바로 중심을 잡아주셨죠. 길게 보라고 말씀해주시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정="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가 커요."
서="제가 올해 받은 사랑과 많은 상들을 보답하려면 내년에 정말 잘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조금씩 준비를 시작했어요. 시상식이 다 종료되면 본격적으로 몸 만들기를 하려고요. 내년 시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정="참, 마지막 시상식은 골든글러브로 알고 있어요."
서="기쁜 마음으로 참석해야죠. 상을 받으면 더 좋고요.(웃음)"
서건창은 9일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2루수 부문 황금장갑을 품에 안았다. 그는 "야구 선수를 꿈꾸던 어린 시절, 이종범 선배님의 플레이에 환호하는 팬들을 보고 그런 선수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아직까지 이종범 선배님을 따라가기는 부족하다. 하지만 팬들께 그 당시 감동을 느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