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수인데 당연히 자기가 할 일을 한 것이다. (정협이)혼자 잘한 것이 아니라 주변 형들이 잘 도와줬다."
18일(한국시간) 전화 통화에서 이정협(24·상주 상무)의 어머니 배필수(56)씨는 이렇게 담담하게 말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어느 순간에는 너무 냉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 씨는 "아들을 엄하게 키우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처음 축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는 완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정협을 알고 지낸 권진영(24·부산)은 "정협이는 부산에서 축구로 소문났던 아이"라고 얘기했다. 재능 덕에 정식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어머니 배 씨는 "정협이 아버지는 제주도에서 화물선을 탄다. 난 식당에서 일할 때였다"며 "'축구하면 돈이 많이 든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 사정에 선뜻 나서서 (축구를)시킬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이랬던 이정협은 부산 아이파크에서 '소'처럼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엄한 부모님 밑에서 우직한 성품으로 자랐던 때문인지 '소 같다'는 별명을 얻었다. 헌신적 플레이 스타일로 빛을 보지 못하던 그는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마침내 그 진가를 드러냈다.
이정협은 17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열린 호주와의 2015 아시안컵 A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결승골을 꽂았다. 첫 선발 출전에서 골맛까지 본 이정협은 자신을 파격 발탁한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을 웃게 했다. A매치 4경기 만에 2골을 넣은 그는 단숨에 공격수 갈증을 씻어줄 재목으로 떠올랐다. 국군체육부대에서 근무 중인 그는 군인과 신데렐라를 합쳐 '군데렐라'란 새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이정협의 부모님은 과거 아들이 축구선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없는 집안 살림에 270만원짜리 컴퓨터를 초등학생 아들에게 안기며 "축구보다 차라리 게임을 하라"며 관심을 돌리려 했다. "어릴 때부터 효자라 말을 잘 들었다"던 그 아들은 축구에서만큼은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배 씨는 "엄하게 키웠는데 축구는 말릴 수 없었다. 그래도 선수로 자라면서 속 한 번 썩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정협은 어려운 형편에서도 당당하고 꿋꿋하게 자랐다. '소문난 실력'으로 부산 유스팀인 동래고에 진학하며 장학금을 받으며 축구를 했다.
아들의 성장 이야기를 하면서 담담하게 인터뷰하던 배 씨도 흔들렸다. 그는 "간식도 못해주고 메이커 축구화도 사준 기억이 없다. 축구화를 형들에게 빌려서 신고 씩씩하게 뛰어다녔다"며 "카메라도 살 형편이 못 돼 아들 사진도 많이 찍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정말 효자다. 고맙다"고 했다. 배 씨는 아들의 첫 월급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2013년 부산에 입단한 이정협은 첫 월급을 받고 어머니에게 핸드백을 선물하며 "이제 힘든 식당일 그만하세요. 제가 호강시켜드리겠습니다"고 했다. 배 씨는 아들의 뜻에 따라 식당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집에서 아들을 응원한다.
프로에서 이정협은 무난하지만 튀지 못했다. K리그 통산 52경기에 나와 6골 2도움에 머물렀다. 공격수로는 초라한 성적표다. 이에 이정협은 어머니의 권유로 이름을 바꿨다. 배 씨는 "원래 이름이 정기(廷記)였다. 좋은 이름이지만 착하게 자랄 운명이라 하더라"며 "운동 선수로 강한 모습을 보이라고 '협(?)'이란 글자를 선택했다. 이름을 바꾼 뒤로 일이 잘 풀렸다"고 웃었다. 엄한 어머니인 배 씨는 아들에게 "항상 동료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