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을 앞두고 대통령이 선수들에게 '지거든 현해탄에 몸을 던져라'고 말했다는 건 한참 옛날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한일전, 그것도 축구는 전 국민의 관심사다.
특히 양국의 정치적인 갈등이 맞물리면 더 그렇다.
30일 오후 11시45분(한국시간) 열릴 한국과 일본의 AFC U-23 챔피언십 결승을 앞두고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작년 12월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합의했지만 갈등은 여전하다. 합의 내용을 두고 피해 당사자들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고 일본내 일부 인사들이 합의문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빈축을 사고 있다.
◇축구를 넘어
과거에도 한일전이 축구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적이 몇 번 있다.
20년 전인 1996년 3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1996애틀랜타 올림픽 최종예선은 지금과 상황이 비슷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준결승에서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를 각각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 두 팀 모두 이미 올림픽 티켓을 땄지만 준우승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 때는 독도 문제가 화두였다.
일본 총리와 외상이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망언을 하자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주권수호'를 외치며 단호하게 맞섰다. 더구나 한국과 일본은 2개월 뒤 확정되는 2002년 월드컵 개최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었다.
전쟁과도 같았던 격돌에서 한국은 짜릿한 2-1 승리를 거뒀다.
한일전 역사상 최고 명승부로 꼽히는 2012년 런던올림픽 3·4위전를 앞두고도 독도가 이슈였다.
3·4위전이 광복절을 닷새 앞둔 8월 10일 열렸는데 경기 직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격 독도를 방문하면서 일본 여론이 들끓었다. 외신들도 "잠을 설쳐가벼 봐야 할 경기는 브라질-멕시코의 결승이 아니라 한일전이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일본을 2-0으로 깔끔하게 제압하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올림픽팀은 일본과 역대전적에서 14전 6승4무4패로 우위인데 앞선 두 번의 맞대결을 포함해 지난 1992바르셀로나올림픽 최종예선, 2014인천아시안게임 8강 등 중요한 경기는 다 이겼다. 한국이 당한 4무4패는 모두 친선경기다.
한국은 대회의 비중이 클수록 일본에 강했다. 신태용팀도 기분 좋은 역사를 재현하려 한다.
◇동아시아 자존심 세운 한일
한국과 일본은 우승 다툼과 별개로 나란히 결승에 진출하며 동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곧추세웠다.
정치학적 측면에서 아시아 축구 패권이 중동으로 넘어간 지 오래 됐다.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2011년 1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됐다. 현재 AFC 회장은 바레인 출신의 세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다.
FIFA 집행위원인 쿠웨이트의 세이크 아흐마드 알 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은 막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올림픽 최종예선이 기존의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 아닌 단일 토너먼트 대회로 바뀌고 대회 장소가 중동의 한복판인 도하로 결정된 것 모두 이들의 입김과 연관있다.
하지만 한일은 준결승에서 나란히 중동팀을 제압하며 실력 면에서는 아직도 동아시아 축구가 한 수 위라는 점을 증명했다.